[사잇이야기] 전략사업부 김정숙님, 5%의 차이가 쌓여 만들어진 내공, 영림원의 상생 생태계를 기획하다.

사잇이야기는 개인의 내면 성장을 돕는 ‘에버온사람’ 앱과 연계하여 영림원 구성원들이 일상과 일,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입니다. 일곱 번째 주인공은 영림원의 파트너 생태계를 끈끈 하게 이어가고 있는 전략사업부 김정숙 님입니다. 지난 호 송병헌 님의 바통을 이어받아, 26년 ERP 여정과 늦깎이 대학원 수험생으로 살아가는 치열하고도 유쾌한 일상을 전합니다.

인생의 첫 번째 변곡점: “네가 우리 회사에서 업무 이해도가 제일 높아”

제 커리어의 시작은 한 전자부품 제조회사의 구매팀이었습니다. 당시 팀장님이 대표이사님께 사내 시스템 교육 업무를 덜컥 받아왔 고, 그 교육 자료를 신입사원이었던 제가 한 땀 한 땀 만들게 되었습니다. 워낙 일 가져오는 걸 좋아하시던 팀장님 덕분에 얼떨결에 숙제를 받아온 셈이었는데, 그 자료가 대표이사님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1999년 말, 전 세계가 Y2K 이슈로 시끄러울 때 대표이사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뜬금없이 한마디를 던지셨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전체 업무 이해도가 가장 높은 사람이 김정숙님이 니 ERP 도입을 맡아서 해보세요.” 그렇게 20대 때 ERP 도입을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계약 기 간은 고작 4개월이었고, 현업부서 담당자들은 시스템을 제대로 쓰 지도 못하는데 영림원 컨설턴트들은 계약 기간이 끝났다고 철수해 버렸습니다. 무능한 담당자로 남고 싶지 않았던 저는 회사에 보고한 후 영림원으로 매일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죠. “다 안 가르쳐줘도 좋으니 나만 이해시켜라. 우리 회사 사람들은 내가 다 교육하겠다”며 회의실에 앉아 개발자들을 붙잡고 늘어졌습 니다. 담당 개발자들이 내려올 때까지 버티니 ‘회의실에 마녀가 또 왔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습니다. 나중엔 두달 동안 완성한 교육 매뉴얼을 보더니 “이 자료 우리도 활용해도 되겠느냐”고 묻더군요.

그렇게 구축한 시스템이 중소기업 ERP 도입 우수 사례로 선정되면서 제 인생에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대표이사가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께 직접 성공사례 보고를 하게 된 거죠. 대기업 대표 로는 삼성전자가, 공기업 대표로는 한국전력이 왔고 중소기업 대 표로 우리 회사가 뽑힌 것입니다.

영림원과 함께한 찬란한 데뷔 무대

행사 준비를 위해 청와대에 갔다가 돌담길을 걸어 나오는데, 발이 땅에 닿지 않고 살짝 떠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기억은 내 평생 가져가겠구나’ 싶었던, 제 인생의 가장 찬란한 정점이자 첫 번째 변곡점이었습니다. 그날 회사가 9시 뉴스에 나 오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출근하니 회사 전체가 술렁였고 당시 월 급의 반에 달하는 엄청난 금일봉을 보너스로 받기도 했습니다. 그게 인연이 됐을까요? 몇년 후 이직을 고민하던 중 권영범님이 부르셨습니다.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나요?”

“결혼한 여자가 이런 데까지?”

그렇게 2005년 영림원 컨설팅본부로 운명처럼 입사하게 되었는 데, 당시 컨설턴트를 체계적으로 키울 여력이 부족했습니다. PL 같은 중간단계를 거치지 못한 채 미처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곧바로 현장 PM으로 투입되어 평택을 비롯한 전국의 제조 공장들을 돌며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척박한 공장 현장에서는 “여자 PM이, 그것도 결혼한 여자가 이런 지방까지 도는데 남편이 뭐라고 안 하냐”는 식의 가부장적인 시선과 막말이 쏟아지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받아쳤습니다. “그런 질문을 하시는 의도가 뭔가요? 제가 여자라서 야근이나 주말 출근을 안 할까 봐 걱정되시는 건가요?

저는 개인이 아니 라 영림원의 대표로 온 겁니다. 일이 필요하면 야근이든 주말 출근이든 제가 알아서 책임집니다.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 다.” 그렇게 호기롭게 뱉어놓은 말을 지키기 위해 새벽까지 공장 불을 끄고 나오며 잠을 아껴 일했습니다. 그야말로 생존이 중요한 시기였어요.

”저는 영림원을 대표해서 나와있는 겁니다“

고객사 불 끄고 퇴근하는 일상…잠이 정말 고팠죠

도저히 일이 안 풀릴 때는 본사에 SOS를 쳐서 송민영 님을 PL로 지원받기도 했 습니다. 당시 차가 없던 민영 님을 제 차에 태우고 매일 새벽 2시까지 일하다가 “집에 가지 말고 우리 집에서 자고 바로 출근하자”라며 집으로 데려가 잠만 겨우 재우고 다시 새벽같이 공장으로 달려가기도 했습니다. 둘다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상황이었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어요. 송민영님은 당시 몇달 만에 몸무게가 15킬로그램이나 줄었다고 해요. 워낙 잠이 부족하니 점심시간에 밥을 굶어가며 잠을 보충했거든요. 전쟁과도 같은 시간이었죠. 보람보다는 독기와 생존 본능으로 버텼던 날들이었지만 그 고생에 비례해서 업 무를 치열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어떤 회사에 가든 화장실만 가보면 그 회사의 문화와 여성 직원에 대한 배려 수준을 읽을 수 있어요.

영업기획의 틀을 만들다

컨설팅 현장을 거쳐 2009년 회사에 영업 지원 조직이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박 윤경님과 함께 팀을 세팅했죠. 영업 대표들이 힘든 고객을 만나 쩔쩔맬 때 박윤 경님이 나서서 화 한 번 내지 않고 조근조근 대화로 푸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곤 했습니다. 당시 저의 핵심 무기는 ‘기획력’과 ‘기록력’이었습니다. 고객사 현업들이 모여 각자 자기 부서의 요구사항을 쏟아낼 때 모든 맥락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습니 다. 회의 한 타임이 끝나면 제가 정리한 엑셀 파일은 기본 300줄이 훌쩍 넘었습니다. 회의 종료 5분 전 그 내용을 바탕으로 “오늘 말씀하신 요구사항이 이거 이거 이거 맞으시죠? 이 범위 내에서 제안을 구성하겠습니다”라고 현장에서 컨펌을 받았습니다.

300줄짜리 요구사항 정리 파일은 고객사 담당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사막의 오 아시스’ 같은 자료였습니다. 고객사 내부에서도 회의 내용을 그만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제안서 작성 시 핵심 소스가 되 었습니다. 고객의 가려운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고 영림원의 전문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이 프리세일즈 과정이 많은 수주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파트너와 손잡고 데스밸리를 건너다

2018년, 김현주님과 저를 중심으로 ‘전략사업부’가 만들어졌습니다. 제로 상태에서 파트너 생태계를 구축 해야 했죠. 영림원을 중심으로 함께 ERP 사업을 펼치는 동반자들을 확장해서 영림원 ERP의 생태계를 넓 히는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영림원 파트너들의 초기 ‘데스밸리’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퇴직 후 전 재산을 쏟아부은 대표님들이 2~3년 동안 성과 없이 집 몇채를 밀어넣기도 했습니다. 전략 사업부는 파트너사들이 홀로서기 할 수 있게 밀착 지원체계를 만들었습니다. 파트너사 컨설턴트들이 기능을 잘 몰라 밤낮없이 전화해도 귀찮아하지 않고 다 받아주었고, 역량이 부족해 계약을 놓칠 위기에 처한 파 트너사들을 위해 다른 역량 있는 파트너사를 설득해 공동 팀을 짜주기도 했습니다. 경쟁사의 파트너였던 곳들을 우군으로 영입하고 정교한 ‘타깃 세미나’를 기획해 수주로 연결하기도 했습니다. 파트너사 대표님들이 고마워하는 이유가 바로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연대감 덕분입니다.

자체 ERP를 가지 고 있던 기업이 기존 시스템을 내려놓고 영림원 ERP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렵게 영림원 생태계에서 첫발을 내딛은 파트너들이 조금씩 자리잡아 가는 모습을 보면 보람이 큽니다.

늦깎이 대학원 생활…헬스로 다지는 체력

지금은 업무와 병행해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데요. 원래 혼자 공부해서 자격증 따는 게 취미입니다. 제조관 리사, 물류관리사, 개인정보관리사 등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며 성장의 희열을 느끼곤 했지요. 그러다 문득 스스로 하는 단편적인 공부 말고 무언가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형식의 학문을 배우고 싶다는 목마름이 찾아 왔습니다. 감사하게도 회사에서 지원하는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육 대상자로 선발되는 기회를 얻었습니 다. 퇴근 후 헬스센터에서 운동을 마치고 씻고 나오면 밤 10시가 됩니다. 몸집이 크지 않아도 체력에서 밀리지 않는 비결이죠. 매일은 아니지만 그때부터 자정까지 딱 2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합니다.

나이 탓인지 흡수력이 예전 같지 않아 스트레스 받기도 하지만 하루하루를 배움으로 채워 나가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95%에 5%를 더하는 정성을 이어갈 겁니다“

남들보다 5%만 더…잊지 않는 나만의 삶의 태도

제 삶의 신조이자 일의 철학은 ‘딱 5%만 더 하자’는 것입니다. 평범하게 노력해도 95%까지는 누구나 갈 수 있습니다. 투입하는 시간도 비슷하죠. 하지만 일의 경지를 바꾸고 고객에게 강한 감동을 주는 것은 마지막 남은 5%를 더하는 정성입니다. ‘과연 이 방향이 최선일까? 한 번만 더 들여다보자. 이렇게 정리해서 전달해주면 상대방이 더 편하지 않을까?’라는 마지막 5%의 치열한 고민. 그 작은 차이가 결국 일의 생명력을 불어넣고 나만의 스타일을 완성한다고 믿 습니다. 비록 매 순간 100% 실천하기는 힘들더라도, 그 마지막 5%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매일 밤 책상 앞에 앉고 현장으로 나아갑니다.”

에버온사람에서 얻은 마음 충전

내면성장 앱 ‘에버온사람’ 콘텐츠 중 ‘하늘을 꿈꾼 불굴의 여인’이란 제목으로 소 개된 아멜리아 에어하트의 글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에어하트는 1932년 여성 최초로 대서양 단독 횡단에 성공하고 수많은 비행 기록을 세운 미국인 여성 비행사입니다. 1937년 7월 2일 적도 일주 비행 중 남태평양 상공에서 실종되어 40세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지요. 새로운 경험을 하고 무엇 인가에 도전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지금의 상황, 내가 가진 조건을 먼저 떠올리며 멈칫할 때가 많습니다. 돌아보 면 도전할 이유보다 하지 않을 이유를 더 많이 찾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에어하트의 이야기는 완벽한 조건이 갖춰져야만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하고 싶다’는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붙잡는 의지, 그 마음이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하는 것이지요. 언젠가가 아 니라 지금, 작은 도전부터 시작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다음 주인공은? “박윤경님이 궁금해요”

다음 ‘사잇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경영을 더 잘하게 사업본부’를 이끄는 박윤경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박윤 경님은 개발자 출신으로 2005년부터 영림원에 몸담으 며 여러 영역을 거쳐 지금은 ERP 사업 전체를 이끌고 계십니다. 고객과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내부와 외부의 요구사항을 맞춰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 다. 영림원의 미래와 AI 시대의 비전까지 함께 고민해 야 하니 책임의 무게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박윤경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끝까지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영림원의 가치는 무엇인 가요? 또, 고객과 내부 구성원 사이에서 여러 목소리를 조율해야 할 때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마음의 중심을 잡으시는지요?

마지막으로, 개발자에서 시작해 ERP 사업 전체를 책임 지는 자리까지 오시며 스스로 지켜온 철학과 삶의 방식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AI 시대에 영림원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윤경님의 이야기를 통해 일의 무게를 견디는 마음, 사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태도, 그리고 영림원의 내 일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함께 만드는 우리들의 이야기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나누다 보면 일터가 일만 하는 곳이 아니라 함께 성장 하는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도 기다리겠습니 다. 직접 글을 쓰거나, 콘텐츠실이 이야기를 나눈 후 정리해 드리는 두 가지 방법 중 선택하세요!

*이번 호 사잇이야기는 콘텐츠실이 김정숙님과 이야기를 나눈 후 정리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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