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코드:픽션] 탄원서<6-끝>
글: 유염 (영림원소프트랩 고객가치실현 송유진님)
영림원 고객서비스의 최전선, 고객가치실현 송유진 님의 단편소설 <탄원서>가 6회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매일의 업무 메일에 담긴 건조한 텍스트 너머 ‘화장실 샴푸통 뒷면보다 나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유염(侑染.필명) 작가의 데뷔작 연재를 보면서, 마음 속에 있는 그 무언가를 꺼내놓을 수 있는 용기에 박수가 나왔습니다. 활자가 가진 힘에 매료된 이들이 저마다의 마음을 텍스트로 옮기는 도전으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송유진님의 후속 작품활동도 응원합니다!!
===
그의 답에 곧장 내가 이사 간 것을 알리고 집 열쇠에 대해 물었다. 물 건은 흔쾌히 택배로 받아주겠다는 설명과 함께 세운경찰서 형사 3팀앞 으로 보내라고 해주었다. “전달되면 문자 드릴게요. 그리고 사건이요.” 그는 잠시 말을 고르는가 싶더니 설명을 이어갔다. “부부간 살인 사건이지만 사연을 잘 풀어내면 꽤 감경될 것 같습니다. 여기에 가족들 선처 탄원서가 있으면 판결을 유리하게 풀어갈 수 있거 든요.”
그는 꽤나 흥분한것 같은 기색의 목소리였다. “아빠가 그걸 원하던가요?” 나는 궁극적으로 궁금해졌다.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회 나와서 다시 적응하시려면 최대한 빨리나오시는 게 좋죠.” 그가 설명을 덧붙였다.
“지금 결정하기 힘드시면 나중에 제출하셔도 됩니다. 이것도 등기로 보내셔도 되구요. 그게 자필 서명이 필요해서.” 어느덧 대화가 제법 익숙해진 그의 안내가 계속 이어졌다. “어차피 초범이고, 자수하신 데다 우발적인 사건이라 제법 감경되실 거고 탄원서 자체가 결과적으로 판결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수도 있습 니다. 아주 많아 봐야 3년이겠네요.” “제가 엄벌하고 싶다면요?” 엄마의 일기장이 떠올라 되물었다. “그래요. 아무래도 가족간이라…”
그는 의외라는 기색의 어투로 꽤 길게 생각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둘 다 제출 가능하고요. 그것도 영향은 3년 남짓일 겁니다.” 3년. 만약 10년이 선고된다면 선처 탄원서로 7년이 된다. 엄벌 탄원서를 제출 한다면 13년이 되겠지. 내가 아무것도 쓰지 않을 때 10년일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종이 한 장으로 결정된다.
내 손으로 작성하는 별거 아닌 종이 쪼가리의 무게가 구체화되어 다가온 다. 실제로 설명을 듣고 나니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이게 그 정도의 일인가? 스스로 계속 되뇌었다. 서로 진짜 연을 끊으려면 그에게 자립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 할까? 아니 오히려 감방에서 최대 한 쉬게 하는 것이 맞을까? 나는 스스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오… 늘은 아닌 것 같네요.”
짤막하게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통화를 끊어 버렸다. 숙제를 처리하고 나니 새로운 숙제가 생겨나 버렸다. 그 날은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걸었다. 계속.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결론을 내릴 수도 없었다. 나에게 조언을 해줄 이도 떠오르지도 않았다. 오롯이 나 혼자 결정해야 했다. 그날은 그렇게 계속 걸었다. 얼마간의 일상을 보내는 동안 탄원서는 방학 동안 미뤄진 그림일기처 럼 계속 나에게 매달려 있었다.
그 사이 형사는 나에게 계속 연락을 보 내왔고, 종국에는 나의 신상정보만 채우면 되는 빈 양식까지 보내주었 다.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 홀로 남아 양식을 띄워보았다. 모니터에는 [탄원서]라는 문서 제목의 끝에 매달려 있는 커서가 나를 계속 재촉하듯이 깜박였다.
공판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형사가 설명해 준 탄원서에 대한 안내가 계속 맴돌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엄마를 죽인 것이 아빠를 엄벌할 일인가? 그것이 잘된 일인가? 그와의 기억. 그녀와의 기억을 계속 꺼내 보았다. 엄마와의 기억이 아주 진창의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도 나에게 웃어주던 때가 있었다. 비록 흐릿했지만 엄마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결국 그날도 양식을 채우지 못한 채 모니터로부터 도망쳐 버렸다.
어느덧 9월이 되어 버렸다. 지독하게 더웠던 지난 2주의 시간이 벌써 뿌옇게 흐려졌다. 날씨는 화창하고 바람도 제법 선선한 기운을 품고 있 었다. 하지만 나는 해결되지 않는 물음 속을 끝없이 헤매고 있었다. 그곳은 밤처럼 어둡고 흐린 미로였다. 누가 더 잘못한 걸까? 누가 먼저 잘못한 걸까?
오늘만큼은 결심 하고 집을 박차고 나와 학창 시절에 살던 동네를 걸어 보았다. 모처럼 할애한 시간이었다. 미로를 탈출하듯 계속 걸었다. 하지만 탈출구는 쉬이 나타나지 않았다. 고민에 지쳐 결정을 내릴까 싶다가도 엄마의 일기장이 불쑥 나타나곤 했다. 나는 이 물음에 끝을 낼 수 있을까? 오늘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끝)
연재를 마치며…
지면이 허락한다면 이 소설의 몇가지 TMI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결말은 본래 세 가지로 계획했었습니다. 선처 탄원서를 쓰는 것, 엄벌 탄원서를 쓰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도망치는 것으로 구상했었습니다. 하여 세 가지 버전을 작성하고 독자의 선택대로 해당 페이지로 넘어가는 방 식인 인터랙티브 소설을 차용하고자 하였으나, 막상 결말 직전까지 써 보니 결말을 모두 포함해 버리면 중편 소설이 되어 버리고, 동시에 세 가지뿐 아니 라 상상에 따라 더 다양한 결말이 가능할 것 같아서(예: 자식이 아버지를 살해, 아버지의 탈옥 등…)
초보 작가의 혜택인 열린 결말을 차용하여 독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하게끔 구성했습니다. 독자의 선택이 정답입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엄마 캐릭터가 살해당할 만큼의 일을 벌여 야 개연성이 생기기 때문에 계속 ‘이게 그 정돈가?’ 생각하면서 써 내려갔던 것 같습니다. 사건의 개연성과 캐릭터 간의 갈등이 합당하게 느껴지도록 쓰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작중 인물들의 이름은 가급적 성별이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설정 하였으나, 화자인 주인공만큼은 아들인지 딸인지 모호하도록 중성적인 이름 으로 구성했습니다. 제가 원한 것은 독자 본인을 넣어 보면서 읽어 내려가는 것이었는데, 몰입을 위한 장치가 잘 적용되었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 파일들 다운로드해서 활용하세요~~
Copyright ⓒ 영림원소프트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