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코드: 픽션] 탄원서  <4>

[소스코드: 픽션] 탄원서  <4>

글: 유염 (영림원소프트랩 고객가치실현 송유진님)

 

오묘하고 역한 냄새에 밥 먹을 기분도 나지 않았다. 그래도 드디어 끝냈다는 생각에 깨끗해진 거실에 드러누워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이 적막한 집.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고 싸움도 없는 집. 고요함. 평화로운 느낌이라는 것이 이런 걸까.

처음 느끼는 알 수 없는 만족감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집이구나. 이게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구나. 더 이상 집에 오면서 불안하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낯설지만 희망적인 기분에 휩싸인 나는 그제야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나도 평화로울 수 있겠구나. 이렇게까지 끝장을 봐야만 얻어낼 수 있었던구나라는 생각에 긴 한숨을 토해내듯 꽤나 오랫동안 울고 말았다.

 

한차례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한 나는 홀린 듯이 곧장 일어나 거실 뿐만이 아닌 집안 전체의 대청소를 시작하였다. 곧장 냉장고로 가 상해 버린 반찬들을 확인했다. 만들어두고 얼마 먹지 못해 아까웠지만 차례 차례 버리고 설거지를 해놓았다. 앞으로는 일인분만 하면 되겠구나 하며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방에서 엄마의 물품과 아빠의 물품을 분류하고 박스에 옮겨 담기 시작 했다. 방을 가득 채운 신문지들을 걷어내고 찾아낸 엄마의 물품에는 몇 개의 옷가지와 신과 구원을 찾는 책들이 전부였다. 버리지도 못하고 태울 곳도 없어 우선 두기로 했다. 그중에서 낡은 공책이 하나 눈에 띄었다.

 

아빠는 흔히 말하는 워커홀릭이다. 빈번하게 야근을 하였고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주말과 공휴일도 가리지 않았다. 딱히 돈을 위해서도 아니었던 것은 확실했다. 내가 지금 회사에 합격한 날 술에 취해 돈을 더 받지도 않으면서 회사에서 얼마나 헌신적으로 일했는지 자랑스레 연설하던 것이 동시에 떠올랐다.

 

[육아일기 (임지선)] 남의 일기를 궁금해하는 취미는 없었지만 도대체 언제부터 사이비에 빠지게 된 것인지 궁금하기는 했었기에 몇 장 넘겨 보기 시작했다. 앞부분은 평범한 기대감과 설레하는 보통의 산모와 다를 것이 없었다. 뒤로 몇 장 더 넘기니 잠을 못 자 힘들고 집에 아무도 없어 외롭다는 문구가 점점 늘어 갔다.

 

여기저기 들리는 울음소리와 혼잡한 말소리 드문드문 들리는 위로의 말들이 너무나 어색했다. 그것은 나에게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저 울부짖는 사람들의 표정과 얼굴이 나를 향해 너는 왜 슬퍼하지 않니? 라고 묻는 것만 같았다. 물음에 도저히 답할 수 없었던 나는 장례식장의 접수대에서처럼 또다시 스스로 이물질이 되었다.

화장장에서 마지막 고별의 시간이 주어졌다. 종교가 있으시냐는 물음에 하마터면 실소가 나올 뻔했다.

 

그걸 종교라고 불러야 하나요? 따지듯이 묻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이내 전혀 상관없는 사람임을 깨닫고는 스스로 정신 차리려는 듯 세차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런 것은 없다는 표시임과 동시에 나에게 하는 경고였다. 저 사람은 아무런 관련도 없다. 미친 사람이 되지 말자고 계속 되뇌었다. 유골함에 옮겨진 그것은 정말 작고 하잘 없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남에게 헌신했을까. 내가 언젠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이해해야 할까.

납골당도 가장 저렴한 구석의 꼭대기층으로 안치되었다. 이것이 우리 가족이 결제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죽음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홀로 사건 현장을 정리해야 했다. 현관에는 노란 폴리스라인이 붙었던 자국이 작게 남아 있었다. 끈적하고 노란색인 그것만이 이곳이 사건 현장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거실은 굳어버린 핏자국과 생전 처음 맡는 악취로 가득했다. 피가 상한 냄새일까?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창문을 열고 청소하기 시작했다. 경찰서에서 특수청소 안내를 받았지만 장례식을 치르느라 더 이상 돈이 없었다.

 

나는 뜨거운 물을 받아 거실에 부어가며 장판에 눌은 피를 불려 걸레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그것은 사건 현장을 치운다는 느낌보다는 어질러진 집을 청소하는 감각으로 전환되었다. 언제나 어지르는 사람과 치우는 사람이 따로였지. 툴툴거리며 평소처럼 부부 싸움의 흔적을 지워 나가기 시작했다. 얼추 보이는 것들은 청소가 되었지만 집 전체에 진동하는 냄새만은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눈으로 일기를 계속 훑어보다 정민엄마라고 부르는 것도 아닌 임지선 씨라고 불러줬다며 좋아하는 문구가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이거구나. 이후로는 육아일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나를 나로 다시금 살아갈지. 임지선이라고 불러주는 그 고마운 존재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더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나가는 내용이 줄지어 있었다.

 

집에서 홀로 외로워하던 엄마에게 너무나 감사한 사람들. 삶의 의미와 나를 다시 찾게 해 주는 감사한 신. 5천만 원을 헌금한 날 총회장님이 나를 직접 만나 주셨고 친히 나만의 자리를 주시고 직함도 직접 내려 주시니 이것이 영광이며 감사하다는 내용이 모두 담겨 있었다.

 

무한히 맹목적으로 변해가는 문장들은 나에게 제법 신선한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만약 아빠가 집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산후우울증이었던 엄마를 보듬었다면 여기까지 오진 않았겠구나. 더 앞서가 조금만 서로 솔직하게 심정을 나누었다면 서로를 마냥 무시하고 넘어가지는 않았으리라 이 또한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여 있어 어느 것이 먼저다 쉽게 결론짓기 어려운 사건이 되어 버린 것이다. 혀끝에서 쓴맛이 올라와 더 이상 읽기 힘들어진 나는 이내 내려놓고 나머지 박스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건을 버리지 않는 성정의 아빠는 쓰레기인지 사용하는 물건인지 경계가 모호한 것들이 많았다. 어차피 공간만 차지하게 될 것이 자명하여 대부분은 단호하게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누렇게 변색된 오래된 고지서와 각종 서류들을 하나하나 버리기 시작했고, 그 속에서 새것으로 보이는 종이가 눈에 띄어 집어들었다.

 

이번에 엄마가 내 명의로 몰래 받은 대출 문서였다. 역시 아빠도 이걸 보았군.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눈앞으로 다가온 나는 남겨진 휴가를 확인했다. 회사에서 받은 경조휴가는 5일이다. 오늘로 4일째. 남겨진 하루 안에 그녀가 나에게 남긴 불법 대출을 해결해야 한다. 남겨진 짐들은 차치하고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가정법원에 방문하여 상속포기부터 신청하였다. 언제나 나에게 돈을 받아내려고만 했던 것을 돌이켜보면 드라마처럼 숨겨진 뭔가 는 없을 것이 분명했다.

 

접수 후 곧장 금감원에 민원을 넣고 이어 경찰에는 명의도용 신고를 접 수하고 대출해준 대부업체에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까지 정신없이 처리 했다.

 

오후가 되어 편의점에서 첫 끼니인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였다.

아 집으로 찾아오겠다. 혹여나 대부업체나 돈이 반환된 것을 알게 되었 을 때 사이비 사람이 집 주소를 알아내 찾아올 것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는 샌드위치의 마지막 조각을 입에 대충 구겨넣고는 빠르게 회사 근 처로 새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차피 계속 같이 살기는 어려울 것 같아 분리할 생각이기도 했다. 그날 오후에는 내내 부동산을 돌며 보증 금이 가장 적고 가장 빠르게 이사할 수 있는 집을 찾기 시작했다.

이후, 일상은 예상 외로 빠르게 돌아왔다. 회사에 복귀하여 평소와 같이 업무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일인분의 식사와 일인분의 집안일만 수 행하면 되었다. 하루하루를 나 하나만 생각해도 된다는 것이 예상치 못 한 큰 여유가 되어주었다.

그즈음이었다.

「참고인 자격으로 추가 조사를 받으셔야 하니 출석 부탁드립니다. 세운 서 형사 3팀 김재준 형사.」

 

난 문자를 빠르게 눈으로 훑었고 이내 무시하고 말았다. 이전에 받았던 명함의 이름과 달랐고 꼭 가야 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난생처음으로 맞이하는 평화로운 일상을 다시 그들에 의해 영향 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안온한 일상이 갖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바람을 묵살하듯 곧이어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의심스러운 기운을 가득 담아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세운서 형사 3팀 김재준입니다. 피의자 박혁구 씨 자녀분 되시죠?”

문자를 보내고 바로 전화를 하다니. 악랄하기 그지없는 타이밍이었다.

이전에 버린 명함의 이름과도 달랐고, 목소리도 조금 더 젊었다.

 

– 다음 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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