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코드: 픽션] 탄원서 <5>
[소스코드: 픽션] 탄원서 <5>
글: 유염 (영림원소프트랩 고객가치실현 송유진님)
”아… 네 맞아요.”
불편하다는 기색을 표하였는데 전혀 전달되지 않은 것인지,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아무렇게 앉게 되물어왔다.
”사건에 대해서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 출석 가능하십니까?” 이미 조사가 끝났는데 뭘 또 물어본단 말인가. 그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느낌 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의심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는 얼굴들, 강압적 으로 묻는 어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괜히 위축들게 하고, 다시는 하 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사실 그냥 끊고 싶었지만 앞서 보내온 문자도 그렇 고 포기할 사람 같지 않았다.
”어… 전화로 해도 될까요?” ”됩니다. 지금 가능하십니까?”
내가 협조할 것 같았는지 아까 보다 누그러진 어투였다. 살짝 친절하게 느껴 질 만큼.
”예. 말씀하세요.”
”우선 통화는 지금부터 녹음되고요 원하시면 언제든지 중단하실 수 있습니 다. 저는 형사 김재준이고요, 피의자 자녀 박정민 씨 맞으십니까? 사건을 목격 하신 당일에 부모님 동선이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녹음도 하고 이런저런 고지도 하는 것이 꽤나 본격적이다. 이전에도 경험했 지만 강압적인 목소리는 영 적응이 안 되어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저 협조하는 사람인데 나한테까지 이럴 필요가 있나 싶은 마음이 한 켠에 있었 다. 하지만 형사 입장에서는 단순히 피의자의 가족에 더 가깝겠지.
”네 맞습니다. 동선이요… 그 부분은 조사 때도 말했지만 저는 아는 것이 없 습니다. 그날은 제가 평소에 퇴근해서 귀가하던 시간이었고요 특별히 누가 어 딜 간다거나 방문한다는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
”뭔가 기억나시는 건 없으시고요? 사소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것도 꽤나 고역이다. 대답을 하지 않으니 질 문이 계속 이어졌다.
“마지막 대화중 기억나시는 게 있으실까요?”
나는 체념하듯 입을 열었다.
“저하고는 거의 대화할 일이 없어서… 부모님은 원래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평 소에도 서로에게 욕을 하시거나 죽이네 살리네 하는 얘기는 거의 매일 했었습니 다.”
특별히 기억을 짜낼 필요도 없이 평소의 상태를 설명했다.
”평소와 다르거 최근에 사이가 더 악화되는데 계기가 된 일이 있었을까요?” 이것도 전에 물어본 내용이다. 그날만 유일하게 달랐던 점을 찾는 거였을까. 당일 에는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역시 그것뿐이었다.
”아마 엄마가 몰래 제 명의로 사채 받은 것을 아빠가 알게 되신 것 같습니다.” ”그걸 다른 분이 시켰을까요?”
형사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필시 내가 처음으로 다른 정보를 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한마디로 뭔가 달라지는 것인지 나로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아뇨. 아마 자의로 하셨을 겁니다. 그 무리에 인정받으려고요.”
나한테 들키기 전까지도 비밀이었다. 한마디로 명의도용과 불법대출. 나는 어차 피 그때에도 불법이니 취소할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천천히 해결하려고 했었지만 아빠는 아니었나 보다. 뭔가 원천적인 해결을 바랐거나, 더 이상 감내할 무언가가 끊어진 것일까.
“그 무리라 하심은?”
“으… 전에도 말했지만 상당히 열성적인 사이비교 신자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상당히 진저리치듯 말해 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 다. 그 어떤 경로를 통하든 전혀 상관없는 인물이 되고 싶다.
“이전에도 피의자나 피해자가 흉기로 위협하거나, 위협받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 신가요?”
형사의 목소리가 아까와 다르게 사뭇 누그러졌다. 더 이상 취조하는 듯한 어투가 아니었다. 평이하게 질문하는 듯이 묻기 시작했다.
“실제로 칼을 들고 협박했던 쪽은 엄마였습니다. 너무 잦아서 나중에는 무시할 정도였어요.”
칼을 든 채로 문을 열지 말라고 소리치던 모습. 누군가가 자신을 쫓아온다고 스스 로를 방에 가두고 신의 계시가 들린다고 주장하던 망상증 환자가 눈앞에 선연했 다.
“주로 거론된 협박 사유도 아십니까?”
“특정 일자에 외출하지 말라 같은 주로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는 내용이었어요. 그리고 누군가가 자기를 죽이러 오니 문을 열어주지 말라거나…”
너무 다양해서 다 나열할 수도 없었다. 내 대학 시절에는 MT도 가지 못하 게, 자신을 죽일 작전을 짜러 가는 것이 아니냐며 싸놓은 짐가방을 밖에다 풀고 내 옷가지를 하나하나 즈려밟으며 방해하던 모습마저 스쳐 지나갔 다.
“흠… 피의자가 자수한 것도 그렇고 조사도 순순히 받으시던데 혹시 국선 변호사로 연결된 거는 알고 계셨습니까? 따로 사선 의뢰하실 데는 없으신 거죠?”
형사 사건이라 변호사가 무조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명확한 자수사건에 사선이라고 뭐가 다를쏘냐.
“네. 없습니다.”
“아,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내가 너무 단호하게 말했는지. 되레 사과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나도 목소리가 많이 누그러졌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혹시 저희 서로 출석은 못 하시는 건가요?”
내게서 더 얻어낼 정보가 있다고 판단하였는지 상당히 친절한 어투였다. ”예. 그건 어렵겠네요.”
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다시 떨떠름해진 어투로 대응하였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재판에서는 증인으로 소환되시면 그건 출석하셔야 합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통화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사건 진행에 궁금한 것 있으시면 이 번호로 전화 주시면 됩니다. 녹음도 종료합니다.”
이렇게까지 말해줄 줄은 몰랐는데 처음 생각과 다르게 대화하듯이 흘러 가 스스로도 의외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예, 수고하세요.”
마지막 인사까지, 장례 후 조용히 지내던 한때, 별안간에 생겨난 이질적 인 통화였다. 그 후 다시 나의 생활은 별일 없이 이어졌다. 주간 업무보고 와 팀 회의 모두 무난하게 마무리되었고, 아침마다 커피를 사기 위해 들르 는 편의점 매대에 놓인 신문에는 한미 정상회담 같은 뉴스가 1면을 장식 하고, 매일 관성적으로 SNS의 숏츠를 무표정한 채로 넘기는 나날들이었 다.
집은 다행히도 조건이 맞는 곳이 구해져 급하게 이사를 하였다. 원래 살던 집은 어차피 아빠의 마지막 자산이었다. 이사는 간단하게 내 짐만 들고 나오면 되었고, 냉장고도 깨끗이 비워 주었다. 어차피 최소 몇 년 간은 아무도 오지 않을 터였다.
회사 근처로 새로 잡은 월셋집은 작고 언덕에 있었지만 조용한 주택가 로 아주 마음에 들었다. 운좋게 집주인은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는 어르 신으로 오며 가며 얼굴을 서로 익힌 상태라 보증금을 거의 없다시피 해 주어서 괜찮은 조건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새로운 나의 보금자리에서 홀로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과정이 너무 나 행복했다. 그 어떤 싸움이나 갈등, 서로를 욕하는 언사를 듣지 않아 도 된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널어둔 빨래마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 갔다. 항상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일상의 궤가 돌아가니 집에서 나의 것이 아닌 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전 집의 열쇠. 어떻게든 이 이물질을 처리해야 할 터였다.
해결하지 못한 채 남겨진 숙제였던 집 열쇠는 의도치 않은 곳에서 해결 되었다.
퇴근길 작은 파출소를 보고 얼마 전 통화 했던 형사가 기억 났다. 김재 준이라고 했던가. 문자함을 거슬러 올라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짧은 통 화음 끝에 익숙한 목소리로 인사말이 들려왔다.
“예 형사 3팀. 김재준입니다.”
나는 길게 통화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용건을 이어갔다. “박정민입니다. 문의드릴 게 있어서요.”
휴대폰 너머 와글와글 소리가 잠시 들려오더니 대답이 들려왔다. “예예. 바로 말씀하셔도 됩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저기 혹시 아빠한테 제 소식이나 물건도 전달해 주실 수 있으신 건가 요?”
나는 가장 궁금했던 질문부터 꺼냈다. 마치 숙제처럼 느껴져 해치우고 싶은 까닭이었다.
“아, 됩니다. 어떤 것들 전달해드리면 될까요?”
– 다음 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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