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인사이트] 명상과 성찰로 ‘생각의 주도권’ 지키는 기업들
명상과 성찰로 ‘생각의 주도권’ 지키는 기업들
AI, 인간 지성을 점령하기 시작하다
콘텐츠실장 안경애
엔비디아와 쌍벽을 이루며 AI 기술로 현실세계의 문제를 푸는 팔란티어.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원조 기업에서 ‘AI에이전트 플랫폼 기업’을 선언한 세일즈포스.
두 기업은 각 영역에서 글로벌 1등이자 과거에 없던 시장을 연 개척자라는 것 외에 또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명상과 마음챙김을 회사 조직문화 안에 깊이 녹여넣어 회사가 직원들의 내면까지 돌본다는 점이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CEO가 직접 이를 주도한다.
속도가 경쟁력인 시대에 직원들에게 “멈춰라. 그리고 차분히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이야기하는 두 기업. 역설적이게도 혁신의 속도와 방향성에서 세계 어떤 기업에도 뒤지지 않는다.
인간 사고를 점령하기 시작한 AI
왜 가장 빠르다는 기술기업들이 느린 성찰을 강조할까? 그 답은 AI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역설적인 위기, 바로 ‘AI의 인간 사고영역 점령’ 조짐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일부 연구자의 테스트 결과 AI 모델이 2026학년도 수능 수학 시험에 만점을 받았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이를 계기로 AI시대의 인재상뿐만 아니라 인재를 키우고 평가하는 방식의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집단 부정행위다. 한 조사에서는 시험을 본 대학생의 절반 이상이 “AI를 이용해 커닝을 했다”고 답했다.
AI라는 편리한 도구를 받아 든 사람들이 모르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인지적 ‘고된 노동’, 즉 막막한 고민을 극복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지적 과정을 건너뛰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응용언어학자 김성우 교수는 이를 ‘생성 없는 생성’이라 지적한다. AI가 결과물을 ‘생성(Generating)’해주는 편리함에 기댈수록, 인간이 더 지혜로운 존재로 성장하는 ‘되어감(Becoming)’의 과정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고의 주도권을 기계에 내주는 행위, 즉 ‘사고의 외주화’를 막는 것이 AI 시대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글로벌 기술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명상과 철학을 가르치는 것은 단순한 휴식이나 웰빙,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AI에 종속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질문할 수 있는 ‘정신적 근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이다.
<알렉스 카프 CEO가 팔란티어 직원들에게 태극권을 가르치는 모습.>
명상으로 ‘질문하는 힘’을 키우는 기업들
기술기업 리더들에게 마음챙김은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고, 남들이 못 보는 기회를 읽어서 세계 최초 제품을 만드는 집중력을 키우는 전략적 활동이다.
명상과 태극권 가르치는 팔란티어
대표적인 인물이 팔란티어 CEO 알렉스 카프다.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신고전사회이론을 전공한 철학박사인 그는 ‘웰니스’를 중시하며 20년 이상 매일 기공과 태극권을 수련해 왔다. 사무실에 태극검을 두고 명상과 무술을 통해 마음의 평정심과 균형, 집중력을 키운다. 특히 혼자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원들에게 직접 태극권과 명상을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AI와 데이터로 국방과 안보 문제를 푸는 기업의 CEO가 왜 명상을 가르칠까. 그 답은 팔란티어의 또 다른 파격적인 실험에서 찾을 수 있다. 회사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고등학교 졸업생들을 선발해 월 780만원을 주는 ‘능력주의 펠로십’ 프로그램을 파격적으로 운영한다.
이 프로그램에 선발된 인재들은 입사 후 4주 동안 코딩이나 데이터 분석이 아니라 서양 문명, 미국 역사 등 인문사회학을 공부한다. 카프는 명상과 인문학을 통해 단순히 정답을 찾는 ‘문제 해결사’가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질문 설계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세일즈포스 본사 각층에 마련된 마음챙김존. 직원들은 디지털기기 없이 명상과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명상과 요가가 문화가 된 세일즈포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CEO는 10년 이상 매일 아침 명상을 실천하며 이를 리더십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특히 회사의 조직문화와 공간 구성에도 적용했다.
세일즈포스는 본사가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타워의 모든 층에 디지털 기기를 반입할 수 없는 ‘마음챙김 구역’을 설치하고 최상층에는 ‘오하나 플로어’를 뒀다. 360도 전망의 이 공간에는 명상실, 요가 공간, 성찰구역이 마련되어 있다. 세일즈포스는 이 공간을 통해 ‘오하나(Ohana)’ 정신, 즉 서로를 가족처럼 돌보는 공동체 의식을 키우고 명상을 그 정신적 토대로 삼는다.
세일즈포스는 온라인 웰니스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명상, 요가, 스트레스 관리 등의 학습 모듈이 있으며, 직원들은 업무 시간에도 자유롭게 학습할 수 있다. 베니오프 CEO는 마음챙김이 ‘초심자의 마음’을 유지해 끊임없이 혁신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AI 시대 ‘사고의 외주화’ 위기와 기업의 대응 전략 비교
| 분류 | AI 기술의 역설적 위험 | 기업의 전략적 대응 | 핵심 목표 |
| 위험의 본질 | 지적 ‘되어감’ 과정 상실 (생성 없는 생성) | 주체적 사고를 위한 ‘정신적 근력’ 강화 | 주체적인 ‘질문 설계자’ 양성 |
| 징후 | 인지적 ‘고된 노동’ 회피 및 부정행위 | 명상/마음챙김으로 인지 기능 개선 (판단력, 정보 처리) |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 개선 |
| 필요성 | 정답보다 ‘옳은 질문’과 기술의 방향성 결정 | 성찰/인문학으로 윤리/철학 기반 혁신 유도 | 혁신의 속도와 방향성 확보 |
마음챙김 전담 임원까지 둔 SAP
기업용 솔루션 시장의 강자 SAP는 아예 ‘최고 마음챙김 책임자(Chief Mindfulness Officer)’라는 C레벨 직책을 두고 있다. 이 역할을 맡은 피터 보스텔만은 사람들의 마음을 끊임없이 흔들리는 ‘스노우 글로브’에 비유한다. 외부에서의 디지털 알림과 내부에서의 걱정과 불안이 쉬지 않고 내면을 휘젓는다는 것이다.
보스텔만은 사람의 마음 상태를 ‘의식의 선 위와 아래’로 설명한다. 선 위에 있을 때는 개방적이고 호기심 많으며 배움에 열려 있는 상태다. 선 아래에 있을 때는 생존 본능에 지배받는 상태다. 우리는 하루의 약 70%를 선 아래에서 보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를 극복하고 명료함을 찾는 과정이 명상이다. SAP의 명상 프로그램은 이틀간 진행되며, 업무 시간 중 활용 가능한 명상 가이드, 수주간 진행되는 명상 챌린지도 운영한다.
이 프로그램은 1만7000명 넘는 직원이 수료할 정도로 인기가 높으며 대기자가 줄을 잇는다. 사내에 마음챙김 트레이너를 육성해 현재 그 수가 90명이 넘는다.
마음챙김을 외부로도 전파하는 구글, SAP
이들 기업의 특징은 내부의 성공적인 문화를 외부로 적극 전파한다는 점이다. 구글의 엔지니어 차드맹 탄이 개발한 ‘SIY’ 프로그램은 사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후 비영리 기관(SIYLI)으로 분사되어 전 세계 기업과 조직에 전파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첫날의 마음챙김과 자기인식 활동, 둘쨋날의 공감과 의사소통, 감성지능 리더십 과정으로 구성된다. 매일 15분간 집중력과 공감, 회복력을 키우는 28일 챌린지 프로그램도 있다. 이 프로그램은 SAP을 비롯, 링크드인, 넷플릭스, 딜로이트, 도이치텔레콤 등 글로벌 기업에 채택됐다.
SAP 역시 자사의 명상 프로그램을 지멘스, 슐럼버거(SLB) 같은 고객사에 교육 서비스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이는 건강한 조직문화가 B2B 상품이자 서비스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뿐 아니라 그 기술을 활용하는 사람의 마음과 문화까지 파는 셈이다.
글로벌 기술기업의 ‘사고의 주도권’ 확보 방안
| 기업 | 핵심 활동 | 프로그램 및 특징 | 주도자 |
| 팔란티어 | 명상 & 태극권/기공 수련 | △ CEO 직접 교육 △ 인문사회학 중심 교육 병행 | 알렉스 카프 CEO |
| 세일즈포스 | 마음챙김 공간 조성 & 교육 | △ ‘마음챙김 구역’ 및 명상실 설치 △ ‘초심자의 마음’으로 혁신 유도 | 마크 베니오프 CEO |
| SAP | 체계적인 명상 프로그램 운영 | △ ‘최고 마음챙김 책임자(CMO)’ 직책 운영 △ ROI 200% 이상의 성과 입증 | 피터 보스텔만 CMO |
| 아마존 | 글쓰기를 통한 깊은 사고 강제 | △ 파워포인트 금지 △ 6페이지 산문 정독 후 토론 |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 |
글쓰기로 깊은 사고 강제하는 아마존
명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고의 깊이를 강제하는 기업도 있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는 회사 전체에 파워포인트 사용을 금지하고 6페이지 분량의 산문(Narrative)을 쓰도록 한다. 회의는 참석자 모두가 30분간 이를 정독한 후 토론하는 방식이다.
완전한 문장으로 글을 쓰게 하는 것은 깊은 사고를 유도하는 방법이다. 피상적인 단어들로 된 PPT와 달리 문장을 쓰려면 논리에 빈틈이 없고 막연하던 생각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작성자는 더 깊이 사고하게 되고 다른 이들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방식이 집단지성을 키운다는 점이다. 모두가 같은 정보를 깊이 있게 이해한 상태에서 토론하면 회의의 질이 달라진다.
“마음챙김은 ROI 높은 투자”
초불확실성의 시대, 직장인의 정신 건강은 조직의 몰입도와 성과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다 AI의 부상으로 개인의 질문하는 힘과 일을 대하는 태도, 윤리와 철학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마음챙김은 기업의 전략적 활동의 일환이 됐다.
명상은 뇌의 전두엽 피질 활동을 강화해 판단력과 복잡한 정보 처리 능력을 개선하며, 이는 전략적 의사결정 능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단순히 심리적 위안을 넘어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 개선을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들은 명상과 마음챙김 프로그램을 통해 스트레스 감소, 생산성 향상, 이직률 감소에서 유의미한 통계적 효과를 확인했다.
세일즈포스는 명상 도입 후 직원들의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이 21%가량 향상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SAP 역시 200% 이상의 ROI를 보고했으며, 직원들의 참여도와 집중력이 가시적으로 향상되었다고 밝혔다. 전략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명상 프로그램 도입 후 임원들의 정보 처리 및 복잡한 의사결정 능력이 25% 향상되었다고 보고했다. 하루 5~10분 정도의 간단한 마음챙김 훈련만으로도 주의력과 집중력이 강화돼 안전사고나 불량률을 줄이는 데 큰 효과가 있다는 보고도 있다.
<영림원소프트랩의 내면성장 앱 ‘에버온사람’>
플랫폼으로 문화를 만드는 영림원
한국의 대표적인 ERP 기업 영림원소프트랩은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되 독자적 방식을 택했다. 명상 프로그램과 공간 조성에서 한 단계 나아가, 디지털 플랫폼으로 한국 조직문화의 위계를 허무는 ‘수평적 마음챙김’을 실천한다.
그 중심에는 국선도와 태극권 수련, 호흡명상을 30년 넘게 이어오며 독서토론과 함께 사내 문화로 정착시켜 온 권영범 대표의 철학이 있다. 영림원은 사내 태극권 교육부터 독서토론 활동, 풍성한 식단의 사내 식당, 근무시간 중 운동을 장려하는 ‘오운영 제도’ 등을 통해 직원의 내면과 신체를 단련해 왔다.
특히 최근에는 기술기업답게 플랫폼을 통해 문화혁신을 돕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익명 소통 앱 ‘에버레스크(EverAsk)’를 통해 직급과 관계없이 누구나 질문하고 답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든 게 대표적이다. 한국 조직문화의 가장 큰 장벽인 위계를 익명성으로 무력화하고 자유로운 질문과 공감이 흐르게 한 것이다.
익명 게시판은 회사에 대한 불만이나 건의사항 일색이 아니다. 최근 에버레스크에 올라온 사내 이벤트 ‘복면영림왕’ 공지는 순식간에 200여 명의 조회와 활발한 댓글을 끌어냈다.
얼굴 걱정 없이 목소리로만 승부하는 사내 복면가왕 경연대회로, ‘퇴근요정’, ‘보고서 킬러’ 같은 익명 닉네임으로 참여할 수 있다. 회사의 2030 목표를 기원하는 ‘4ACE 데이’에는 프로젝트 현장의 고객들과도 간식을 나누며 “영림원 너무 좋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앱이 집단지성과 수평적 소통, 응원과 공감의 장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의 내면 성장도 돕는다. 내면성장 앱 ‘에버온사람’은 인문학적 질문과 삶의 철학, 감동적인 인물들의 스토리, 마음에 울림을 주는 에세이 등을 통해 직원들의 성찰을 돕는다.
내부 직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캐릭터가 있어서 확실히 따뜻하고 귀엽네요”,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할 때 자연스럽게 읽게 됩니다. 특히 에세이는 마치 회사 선배가 조용히 조언해주는 느낌이에요”라는 피드백이 이어진다.
영림원소프트랩의 문화혁신 활동
| 영역 | 활동 및 플랫폼 | 내용 및 특징 | 기대효과 |
| 수평적 소통 | 익명 소통 앱 ‘에버레스크’, 분기별 전사행사 Y-데이 | 익명성으로 위계 무력화, 자유로운 질문/공감 유도 | 수평적 문화 및 집단지성 구축 |
| 내면 성장 | 내면성장 앱 ‘에버온사람’ | 인문학적 질문, 에세이 제공으로 성찰 유도 | 구성원의 내면 성장 및 단련 |
| 신체 단련 | 오운영 제도 | 근무 시간 중 운동 장려로 심신 단련 | 심신의 균형 및 몰입도 향상 |
| 미래 공간 | 파주 글로벌 R&D센터 | 휴식, 명상, 운동이 어우러진 창의/혁신 복합 공간 | 미래를 향한 연결 및 영감의 거점 |
쌓인 경험을 밖으로 전파하는 영림원
구글과 SAP가 그러했듯 영림원도 축적된 기업문화의 노하우를 비즈니스 모델로 확장하고 있다. 33년간 ERP를 통해 기업의 ‘일하는 방식’을 혁신해 온 경험에 더해 기업이 문화와 집단지성의 토대 위에서 성장하도록 돕겠다는 비전이다. AI 시대에 기술 도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조직의 혁신 문제를 ‘사람과 문화’로 풀겠다는 것.
특히 내년 5월 오픈할 파주 글로벌R&D센터를 통해 물리적 공간에도 이러한 철학을 심는다. 이 곳은 단순히 일하는 곳이 아니라 휴식과 명상, 운동, 일상이 어우러진 복합 공간으로, 미래를 향한 창의와 혁신이 피어나는 거점이자 직원들이 서로 연결되고 영감을 주고받는 공간으로 지어지고 있다.
사내 앱을 통해 쏟아진 직원들의 기대와 질문들은 이 공간이 탑다운 방식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참여로 함께 만들어지는 공간임을 시사한다.
<영림원소프트랩 전 직원이 매분기 회사의 주요 변화를 공유하는 ‘Y-데이’ 전경.>
바로 지금이 멈추어 생각할 때
기술은 정답을 빠르게 주지만, 그 정답이 옳은지 판단하고 경계 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AI 시대, 기술에 사고의 주도권을 내주는 순간 인류는 걷잡을 수 없는 퇴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개인의 내면 성장에서 시작해 조직의 공감 문화와 집단지성으로 확장되고, 다시 그것이 개인의 성장을 자극하는 선순환. 바로 이것이 팔란티어, 세일즈포스, 그리고 영림원이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문화 혁신의 본질이다.
속도의 시대에 잠시 멈춰 서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묻는 기업들. 역설적이게도 가장 느려 보이는 이 질문이야말로 AI 시대를 살아갈 인류가 반드시 던져야 할 가장 본질적인 물음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