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인사이트] AI 에이전트 시대, 기업의 ‘일머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AI 에이전트 시대, 기업의 ‘일머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일을 다시 정의하고 지식을 연결하고 AI와 함께 실행하는 조직으로

 

안경애  영림원소프트랩 콘텐츠실장

 

기술 변화를 지켜보다 보면 처음에는 도구처럼 보였던 것이 어느 순간 일의 방식을 바꿔놓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PC가 그랬고, 인터넷이 그랬고, 스마트폰과 클라우드도 그랬다.

AI 에이전트도 비슷한 경로로 가고 있다. 다만 이번 변화는 훨씬 강력하고 직접적이다.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함께 일하고 판단을 돕는 ‘또 하나의 주체’가 조직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앤트로픽이 최근 공개한 보고서(Agentic coding and persistent returns to expertise)는 이 변화를 흥미롭게 조명한다. 보고서는 AI 코딩도구인 ‘클로드 코드’를 통해 작년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이뤄진 약 40만 건의 작업 대화를 분석했다. AI 에이전트가 실제 업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들여다본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AI와의 협업 과정에서 사람은 ‘무엇을 할지’에 해당하는 기획 결정의 약 70%를 맡고, AI는 ‘어떻게 할지’에 해당하는 실행 결정의 약 80%를 담당했다. 사람이 방향을 잡으면 AI가 실행하는 명확한 분업이 이루어진 셈이다.

 

<자료: 앤트로픽, ‘Agentic coding and persistent returns to expertise’(2026.6)>

 

일을 다시 정의하고

 

여기서 기업이 던져야 할 첫 질문이 나온다.

우리는 AI에게 맡길 일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많은 기업이 AI 에이전트를 도입하면 업무가 빨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물론 빨라질 수 있지만 핵심은 속도가 아니다. AI는 막연한 지시보다 목적과 맥락과 기준이 분명할 때 훨씬 일을 잘 한다. 결국 AI를 잘 쓰는 능력은 프롬프트를 잘 쓰는 게 아니라 자기 일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구조화하는 능력이다.

 

결론은 코딩 실력자보다 일의 목적과 방향을 분명히 알고 체계적으로 기획해 실행에 옮기는, 이른바 ‘일잘러’가 AI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한다는 사실이다.

사용자가 자신이 풀려는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을수록 작업 성공률은 급격히 올라갔다. 초보 사용자의 작업 성공률은 15% 수준에 그쳤지만 해당 분야에 대한 높은 전문성을 갖춘 숙련자의 성공률은 무려 91%에 달했다. 작업 도중 오류에 맞닥뜨렸을 때도 초보자는 쉽게 중도 포기했지만, 전문성을 가진 이들은 AI를 다그쳐가며 임무를 완수했다.

 

이 현상을 기업 조직에 대입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회사는 집단적인 ‘일머리’를 갖추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일머리는 AI 에이전트 시대에도 통하는 방식인가?

<자료: 앤트로픽, ‘Agentic coding and persistent returns to expertise’(2026.6)>

 

 

지식을 연결하고

 

AI 에이전트가 조직 안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조직의 지식이 AI가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정돈되어 있어야 한다. 고객 응대 경험, 실패 사례, 의사결정 기준, 각종 회의 기록 등 데이터화되지 않은 경험과 지식이 부서별로 흩어져 있으면 아무리 똑똑한 AI도 조직의 프로세스 안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답을 내놓을 수 있어도 그 답이 우리 회사의 방식과 목적에 맞는지는 다른 문제다.

 

개인은 이 전환을 비교적 빠르게 시작할 수 있다. 평소 반복해서 하는 일을 쪼개고, 필요한 데이터와 판단 기준을 기록해서 AI에게 맡길 실행 단위를 정리하면 된다.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와 목적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이 일을 왜 하고, 결과물의 기준은 무엇이고, 내가 반드시 판단해야 할 부분은 어디이고 AI가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인지에 스스로 묻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결국 AI를 계기로 일의 재설계가 일어난다.

 

문제는 이 방식이 회사 단위로 넘어가면 결코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현재 AI 에이전트로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곳이 대개 스타트업이나 몸집이 작은 조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군더더기가 없으니 인간과 AI가 협업하는 구조를 처음부터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A사 대표는 매일 아침 회의를 열고 여기에서 오간 대화 내용을 텍스트로 바꾸어 회사의 지식 저장소에 쌓는다. 회의록 외에도 메신저 대화, 고객 피드백, 업무 지시 등 가능한 모든 것을 기록한다. 회사가 일하는 방식을 AI가 읽고 활용할 수 있게 바꾸는 과정이다.

 

이렇게 지식을 쌓은 결과, 아침마다 대표가 아닌 AI가 팀원들에게 그날 우선적으로 처리할 업무를 제안한다. 부서와 직무의 경계도 낮아졌다. 비개발자 직원이 에이전트와 대화하며 사내 시스템 코드를 직접 고치는가 하면 견적서 발행, 세금계산서 발급 같은 일도 AI를 활용해 처리한다. 자연스럽게 직원들의 역량과 다루는 업무의 폭이 커졌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Y컴비네이터의 게리 탄 CEO가 최근 공개한 ‘G브레인’도 같은 맥락이다. G브레인은 AI 에이전트에게 장기 기억을 부여하는 오픈소스 지식 시스템으로, 국내외 기업들이 자사 안에 G브레인을 심는 시도를 하고 있다.

 

 

AI와 함께 실행하는 조직으로

 

그런데 업력이 긴 회사일수록 잘 돌아가던 과거의 프로세스가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 조직에는 부서별 이기주의, 경직된 보고 체계, 성과 평가 방식, 닫힌 데이터 권한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훌륭한 기업일수록 성공을 이끌어온 확고한 방식이 있고 그 덕에 지금의 규모와 질서를 유지해 왔지만, 인간의 노동 구조에만 최적화된 그 ‘과거의 성공 방식’이 AI 에이전트 시대에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그런 만큼 기업의 AI 도입은 개인의 생산성 향상이나 특정 부서의 프로젝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조직 전체의 존재 목적과 일의 본질을 다시 정의하는 거대한 밑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가치를 위해 존재하는가? 어떤 일은 인간이 결단해야 하고 어떤 일은 AI에게 맡길 건가?

흩어진 지식을 어떻게 꿰어서 집단지성과 집단지식을 살아 있는 자산으로 만들 것인가?

 

어쩌면 AI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보다, 옆자리 동료나 타 부서와 지식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훨씬 고통스러울 수 있다. 당장 하지 않아도 회사는 굴러가니 모두가 회피하고 싶은 숙제다. 하지만 지금 앞서 나가는 소수의 기업들이 맛보고 있는 과실은 이 피곤한 과정을 기꺼이 감내한 조직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AI와 개인, 그리고 조직에 쌓인 집단지식이 하나의 흐름으로 맞물리고 지속적인 학습으로 이어질 때 그 결과는 부분을 더한 것보다 훨씬 클 것이다.

 

앤트로픽은 코딩 분야에서 일어난 현상이 지식노동 전체에 다가올 거대한 변화의 예고편일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AI 에이전트의 활약 무대는 산업 전 영역으로 무섭게 확장되고 있다.

 

과거에도 새로운 기술과 패러다임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BPR(업무재설계), PI(프로세스혁신)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룰을 깨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 다만 단순한 기술적 도구가 아니라 함께 배우고 판단하며 성장하는 존재를 조직에 편입시키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다.

 

변화의 난이도가 높은 만큼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 주어지는 보상도 드라마틱할 것이다. AI라는 획기적인 도구로 어떤 결과물을 빚어낼 것인지 전사 차원에서 치열한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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