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지식 칼럼] 프로세스 통합 다시 보기

 

정인호 PM, Management Contents.

 

대부분의 컨설턴트는 프로세스 통합의 의미와 가치를 잘 알고, 시중에는 전문가를 자처하시는 분들도 매우 많습니다. 프로세스 통합에 대해서 바로 떠오르는 문구들을 나열해 본다면, 아마 대부분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즉, 부서의 Silo를 해소하는 것, Cross Functional Process의 구현, Process Value Chain의 최적화, 외에도 많은 표현들이 있을 것입니다. 10억원 이상 정도의 규모가 있는 프로젝트를 한다면 위의 테마들은 필수적인 사항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중소기업으로 내려와서 생각을 해 보면 위에 언급된 프로세스 통합의 개념들이 적용되기에는 정보의 정합성 유지를 위한 부담이 과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표준 프로세스를 도입하고 운영하는데 필요한 조직 구성이나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많은 중소기업들이 투자 규모의 차이는 있으나, 정부의 기업 정보화 자금 지원을 받아서 ERP, MES등 경영관리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관리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이 지원 자금으로 표준 프로세스를 장착한 ERP를 도입하여서 운영 문화를 개선하고자 하지만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는데 이러한 경우에 해결 방안은 무엇이 있을지, 중소기업이 부족한 역량의 공백을 어떻게 채워서 통합 프로세스의 다리를 건너갈 수 있을 지 한번 상상해 보기로 합니다.

그 상상 중의 하나로, 추상적이고 원론적이기는 하지만 여백의 활용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여백이란 관리 역량의 한계로 인하여 생기는 관리의 공백 영역을 말합니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TOC (Theory Of Constraints, 제약 이론)가 제약을 활용하는 것처럼, 중소기업의 제약 중의 하나인 그 공백을 활용하자는 것입니다. 즉, 표준 프로세스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현장 수불에서 회계 수불까지 입력이 요구되는 다양한 전표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밀한 관리를 위해서는 기본적인 전표 처리 이외에 다양한 관리 항목을 추가로 입력하고 후속 프로세스에서는 그 입력된 정보들을 활용합니다. 생산 공정에서는 공정 사이사이의 수불과 실적 정보들을 기록하며, 품질을 위해서는 별도의 정보들을 기입합니다. 그런데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그 정보 기록을 위한 설비나 인력을 추가로 투입할 여력이 부족하므로, 그렇다면 이렇듯 꽉 짜여서 빈틈없이 흘러가야 할 프로세스의 어디에 여백을 두고 여하히 그 여백을 건너서도 정보가 흘러갈 수 있도록 할 것인가가 핵심 성공 요인이 되겠습니다.

수영을 오래 하면서도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습득해야 할 기술 중에 슬라이딩이 있습니다. 초보자들은 물에 떠서 동시에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 발로 킥을 많이 하지만 금새 지치게 됩니다. 그런데 고수들은 발차기 횟수도 많이 하지 않지만 한번의 킥에서 얻은 추진력을 팔을 젓지 않고도 상당한 거리를 갈 수 있도록 살리는 Sliding 기술, 즉 미끄러지는 기술, 새들이 날개를 젓지않고도 멀리 날아가는 활공 능력과 같은 기술을 체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력과 정보 수집 역량이 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프로세스 중간 중간에 이러한 슬라이딩공간을 삽입할 수 있다면 작은 인력과 최소한의 정보력으로 프로세스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술의 구현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사실 이미 여러 곳에서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핵심은 자율성에 있습니다. 여백은 자율이 숨쉬는 공간입니다. 각 생산 공정을 일일이 관리 하는 것 보다는 관리의 맥을 짚어서 어떤 핵심 공정만 관리하고 나머지 공정은 여백 상태로 두면서도 전체 공정은 무사히 돌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TOC의 DBR (Drum-Buffer-Rope) 이론이 말하듯이 막힌 곳만 뚫어주면 공정은 이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Toyota의 JIT 역시 유사한 개념입니다. 즉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배가 고픈 공정이 그 앞 공정을 찾아서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는 간판을 돌리는 것입니다. 정보화를 통하여 일일이 모든 공정을 관리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비용으로 적정선의 관리 역량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초기에 아무 것도 없는 공백에서, 전체 프로세스 공간 어딘가에 여백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무의미한 상태의 공백을 유의미한 여백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버려진 공간에서 유용한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이며, 활동 계획과 보고로 빼곡히 들어찬 막힌 공간을 숨쉬는 자율 공간으로 전환하며, 마치 강을 건너는 긴 다리의 중간 중간마다 여유 공간을 두듯이 그런 여백을 만들고, 자율적인 업무 활동으로 보고 체계를 줄여서 신속한 의사 결정을 이룸으로써 고객 만족에 필요한 리드 타임을 단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제조 기업은 이미 그러한 역량을 현장에 접목하는 곳들도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본 어떤 제조업체에서는 공장의 제조 현장 수불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면서도 잘 운영되는 당황스러운 상황도 보았습니다. 즉 작업 지시서 외에 현장의 수불 정보를 전혀 관리하지 않다가 최종 출하 공정에서만 관리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 구매 입고와 생산 출하만 관리하는 모습이었습니다만, 수십년의 생산 관리 경험을 바탕으로 알게 모르게 그러한 생산 현장에서의 여백 관리의 노하우를 습득하고 서로 신뢰를 가지고 있는 생산 팀들이 서로의 작업과 공정을 잘 이해하면서 Push-Pull 공정을 잘 구현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초과 재고가 없을 수 없지만, 가성비 측면에서는 성공한 사례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사실 그 기업은 과거에 정보 수집 시스템과 인력을 추가로 투자해서 다년간 선진 생산 관리 체계를 운영하다가 다시 위와 같은 지금의 여백 관리 체계를 도입하였다고 하니 아마도 이미 체득한 역량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생산 역량과 품질이 유지되는 것 같기는 합니다.

사실 이러한 여백의 활용은 클라우드 ERP 시스템 영역에서도 교육 컨설팅 부문에 적용되면 성공할 여지가 많을 것 같습니다. 동일한 ERP 시스템이라도, 도입 기업의 역량을 분석하여 그들이 부족한 부분과 관리 역량의 공백을 프로세스에 잘 배치한다면, 기존의 시스템을 수정하지 않고도 잘 쓸 수 있는 여지가 상당 부분 증가할 수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더불어서 클라우드 ERP 사업 이야말로 이러한 고도의 중소기업 여백 활용 기술을 기반으로 한 진단 컨설팅 및 운영 지도 역량이 필요하며, 초기에는 일일이 개별 기업을 상대할 필요도 있겠으나, 처음에는 좀 느리게 확산되겠지만 아주 많은 양의 성공 사례가 아니더라도 그 신뢰와 성공의 확률이 어느 정도 담보된다고 알려지게 되면, 각 중소기업의 클라우드 ERP 발전 Roadmap을 통하여, 어느 시점에 (시스템 신뢰도 지표가 그 위험의 계곡을 넘어가는) 이르는 순간 폭발적인 수익과 안정적인 사업 모델로서 수많은 중소기업들의 지속적이면서도 안정적인 파트너로서 그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바람직한 사업 모델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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