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Letter : “죽어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2016.02.01)”

“죽어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2016.02.01

 

피터 드러커 교수가 13살 때 다니던 학교의 종교 수업 중에 필리글리 신부님으로부터 받았던 이 질문이 60주년 동창회에 모였던 모든 친구들이 한결같이 말한 것처럼 자신들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너희들이 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너희들이 50 세가 되었을 때도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인생을 헛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합니다.

 

우리 모두 이 질문에 대해서 한번은 깊이 있게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 소중한 한평생 동안 무엇을 이루고 가고 싶습니까? 여러분의 묘비명에 한 줄의 기록으로 남겨진다면 어떤 사람이었다고 쓰여지고 싶습니까? 가족과 친지들한테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려지기를 바라면서 이 세상을 하직하겠습니까?

 

먹고 노는 일이 좋을 것만 같지만 한 평생 먹고 놀기만 한다면 얼마나 무의미한 삶을 살고 가는가가 후회가 되어 죽을 때 많이 허무할 것 같습니다. 가치 있는 삶을 살다 가고 싶다면 인생의 목적을 명확히 하는 일만치 중요한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한 얘기가 생각납니다,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은 죽음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사는 목적가 없는 삶인 것이다”

 

영혼의 차원에서 사람은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건 필요하고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깊은 욕구가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의식이 다양한 욕망으로 뒤 덥혀 왔기에 여러 가지 이유와 변명들이 뒤섞이면서 그 상황을 태만하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자주 생깁니다. 그러나 남들한테 무시 받는 존재가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참으로 참기 어려운 수모임에 틀림 없습니다.

 

현대 문명의 요즈음 환경이 사람들한테 끝없이 욕망을 부추기며 ‘에너지를 산일(散逸흩어져 빠져 없어짐)시키는 시대’가 되게 하면서 보통 사람들이 가치 있는 일을 꾸준히 지속하기 힘들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예부터 ‘인생의 위대한 일은 고독 속에서 탄생한다’는 말이 있어 온 것은 바로 이 에너지를 산일시키지 않고 축적해 갈 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드러커 교수의 거의 모든 저서를 국내에 번역하여 드러커 교수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전 대구대학교 총장 이재규 교수께서 드러커 교수께 드린 질문 “한국에서는 교수 정년이 65세라 간혹 70세 가량의 교수가 명예교수 자격으로 강의하는 경우도 매우 드문데, 교수님께서 93세의 연세에 강의를 하시니 아마 최고령의 강의 기록이 아닐까요?”에 대한 드러커 교수의 답은 더욱 놀라게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미국에서는 90세를 넘긴 교수들이 꽤 있어요. 한때 하버드 법대 학장을 지낸 파운드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대학에서 97세까지 가르치고 은퇴했는데, 은퇴 며칠 후 작고했습니다.” 이렇게 죽기 바로 전까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 받는 일일까요. 한 분야에서 평생의 공력을 쌓아 왔기에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고 훌륭한 사람들만이 멋진 삶을 사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탈무드에 나오는 다음의 이야기를 보면서 느껴집니다.

 

예배당을 짓기 위해 석공 세 사람이 뜨거운 태양 아래서 열심히 돌을 쪼고 있었습니다. 하는 일은 같지만 세 사람의 얼굴 표정이 제 각각이었습니다.

첫 번째 석공은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고 입에서는 한숨이 새나왔습니다. 두 번째 석공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이 없었습니다. 세 번째 석공의 얼굴에는 활력과 생기가 넘쳤습니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이를 이상하게 여겨 그들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첫 번째 석공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죽지 못해 이 일을 합니다. 이렇게 뼈빠지게 일해도 나에게 돌아오는 몫은 형편 없거든요. 그저 사는 게 원수입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두 번째 석공이 말했습니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 있나요? 저는 그저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일합니다. 그냥 시키는 일만 탈 없이 하면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세 번째 석공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 일이 참 좋습니다. 내가 정성을 다해 돌을 쪼면 아름다운 교회가 세워집니다. 얼마나 기쁘고 보람 있는 일입니까?

 

우리들은 매일의 삶을 위의 세 사람 중 어떤 사람에 가깝게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요? 어떤 사람의 사고가 희망에 넘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일까요? 누가 더 멋진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건가요? 죽을 때 누가 더 자신의 삶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떠날 수 있을까요?

 

어찌 보면 삶의 진리는 단순한 곳에 숨겨져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자신의 잡다한 욕망을 떨쳐 버리고, ‘지금, 여기에서, 정성을 다 하는 삶’에 충실함으로써 누구나 더 중요한 일을 해 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잘 할 수 있는 고유의 잠재 능력을 갖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그 능력을 우리 사회가 제대로 발현하게 해 주지 못하고 제도의 틀 속에 억압해 넣어가며 작은 인간으로 만들어 갑니다, 그 오랜 교육 기간을 통해서.

 

다가오는 새해를 맞아명리학에서는 새해의 기운이 들어오는 시작을 입춘일(2 4)로 잡습니다永林院 식구 모두가 인생의 큰 목표를 수립하고,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으로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또한 죽기 직전까지 큰 목표와 부합되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몸과 마음을 닦아가는 일을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Y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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