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림원 차세대리더포럼] 두 번째, 김경일 아주대 교수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강연 요약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

 

강연 요약  |  고객가치마케팅WG 윤완석

 

강사는 인지심리학자이다. 인지심리학 전공생들은 신입생 세미나를 할 때 배우는 사람이 있다. 바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베네딕트 컴버베치가 연기한 ‘앨렌 튜링’이다. 그는 세계2차대전에서 독일군의 암호 생성기 이니그마의 암호를 풀어낸다. 앨렌 튜링은 최초로 AI의 기초를 다진 사람이다. 앨렌 튜링은 인지심리학자이다. 컴퓨터공학과랑 인지심리학이랑 똑같다.

강사는 오늘 아침에 ‘한국인들은 마스크를 잘 쓰는데 왜 서양인들은 지독히도 마스크를 안 쓰는가’에 대해서 외국 연구자들과 온라인으로 세미나를 하고 왔다. 이것은 학문적으로, 이론적으로, 경험적으로 한 3~40전부터 증거가 나왔다.

한국사람들은 보통 사람의 눈을 잘 쳐다보지 않지만, 어떤 사람의 기분을 파악할 때는 눈을 쳐다본다. 그러나 서양사람들은 입을 보고 파악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마스크를 써도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략 파악이 가능하다. 하지만 서양사람들은 어렵다. 서양인들은 자기가 강도로 오해 받기 싫어서 마스크를 안 쓰다고 한다.

인간은 고등동물이다. 다른 어떤 동물보다 눈에 흰자위가 많다. 인간은 싸울 때 불리한 눈으로 진화되었다. 한국인들은 인간의 협동체계를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비밀인 동공과 흰자위의 배치를 보면서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인지심리학자들은 게임을 많이 하는데 자기가 한 실험을 통해서 게임을 하나 만드는 것이 소원 중의 하나이다. 패러독스 게임이라는 것이 있다. 인지심리학자들이 숫자를 많이 다루다 보니, 돈도 많이 다루게 되어 노벨경제학상을 받는 경우가 가끔 나온다.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린스턴 대학의 대니얼 커너먼이 지은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고 하는 책이 있다. 완벽한 오역이지만 너무 잘 지은 제목이다. 원제는 『Think fast and slow』이다. fast는 직관이고, slow는 심사숙고이다.

아래의 게임에서 여러분은 어디에 거시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이론이다.  조망이론(Perspective Theory)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이론이 뒤집어진다.

이 인간이 획득할 때 절대 모험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한다. 이 실험에서는 B가 모험이다. 인간은 이런 상황에서 절대 모험을 하지 않는다. 그래 결과는 A를 고른다는 것이다. 원래 이 실험에서 사용한 금액은 1억원이 아니라 100만원이었다. B는 500만원.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하면 결과가 안 나온다. 백프로 B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실험을 위해서 100배 올린 금액이다. 그런데도 80%가 모험을 위해서 B를 찾는다. B를 고른 사람들이 A를 고른 사람들 보다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다. 고등학교에서 이 실험을 하면 100% B가 나올 때도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사람들은 B를 고를까? 바로, 한국사람들의 낙천성이 지극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낙천성 연구를 해보면 한국이 전세계 꼴등이고 아프리카 나이지리아가 1등이다. 낙천적이라는 것은 적게 가져도 쉽게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눈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낙천적인 것이 아니라 게을러 보인다. 뇌 자체가 다른 것이다. 사람에게 축복감을 느끼게 하는 뇌 신경전달 물질, 아난다마이드가 세포 단위 면적당 생산량 자체가 다르다. 나이지리아 1등, 한국 76등이다. 하드웨어 자체가 행복에 불리한 뇌이다.

나이지리아 사람들은 3시간만 일하고 받은 급여가 적어도 행복한 반면, 한국사람들은 3시간만 일하는 게으른 사람들로 생각된다. 메커니즘이 다른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가져야 행복해지는데 아프리카 사람들 눈에는 욕심꾸러기로 보인다. 여기서 문화적인 오해가 생긴다. 게으르다, 욕심꾸러기다, 적게 일하고, 많이 일하고.

한국사람들은 아이큐가 높다. 그리고 낙천성 떨어져서 열심히 산다. 왜? 많이 가져야 그만큼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고 낙천성 떨어지는 사람들의 사고 구조가 단순할까? 복잡하지 않을까? 명확할까? 꼬여 있을까? 당연히 복잡하고 꼬여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꼬여있는 사고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한국사람들이다. 그래서 설득이 되지 않는다.

로버트 치알디니는 설득의 심리학 저자이다. 살아있는 심리학자의 책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 350만부가 한국에서 팔렸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4만5천부가 팔렸다. 그 중에 3만5천부를 제일교포가 샀다고 한다.

일본의 출판계는 ‘설득’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안 팔린다고 한다. 왜 그럴까? 한국사람들의 심사가 복잡하고 꼬여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사람을 묘사할 때 ‘단순하다’고 하면 굉장히 부정적인 뜻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나 남미에서는 사람이 단순하다는 뜻은 멍청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명확하다는 뜻이다. 영어권에서도 ‘Straightforward’하다고 하면 최고의 찬사이다. 그래서 아프리카나 남미는 색도 기본색을 많이 입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혼색, 복합된 색을 많이 입는다. 색에 대한 선호도 꼬여 있다. 언어도 굉장히 꼬여 있다. ‘빈정상하다’, ‘마뜩잖다’, ‘삐지다’ 등은 번역도 어렵다.

bilingual인 친구들에게 ‘너 삐졌지?’하면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한다. ‘삐지다’에 대해 완전히 동의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bilingual인 5명의 친구들을 칸막이에서 각자 시험 보듯이 해서 ‘삐지다’를 영어로 번역하게 했더니 5명이 다 다른 단어를 쓴다. ‘삐지다’는 서양에서 문화적으로 합의가 안된 단어이다. 옛날 사전에는 ‘angry’로 번역되어 있었다.

화난 부장님은 김대리가 오지 못하도록 밀어낸다. 그러나 삐진 부장님은 오히려 김대리의 주변에 맴돈다. 그러나 김대리가 삐진 것을 눈치 못 채면 그제서야 빵 터지는 것이 ‘angry’이다.

이렇게 꼬여 있고 심사가 복잡한 한국인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유태인들이다. 유럽은 시민사회가 강하고 정부의 힘을 대폭 축소시켜 놨다. 미국과 일본, 중국은 시민사회가 약하고 정부가 굉장히 강하다. Pandemic을 만난 유럽은 통제가 안된다. 정부가 강한 미국, 일본, 중국은 뭔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 오해가 있다. 전세계에서 한국은 유일하게 시민도 강하고 정부도 강하다. 개인도 강하다. 다 강하다. 강자와 강자가 만나면 소통이 안된다. 설득이 안된다. 복잡하고 강하고 또 ego가 강한 사람들이다.

한국은 철저히 고맥락 사회이다. content 위주로 가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은 분위기를 맞춰야 한다. 그리고 분위기를 맞추면 알맹이 없는 얘기를 한다고 한다. 한국은 콘텐츠, 맥락, 진정성, 분위기 다 맞추기를 바란다. 굉장히 기준이 높다. 대표적인 고맥락 사회가 한국인과 유태인 사회이다. 굉장히 힘든 사회이다. 그것의 긍정적인 면이 열심히 일하고 높은 생산성을 내는 것이고, 부작용은 늘 갈등과 소통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보자. 영희 아빠는 영희에게 이번 시험에서 90점 이상 맞으면 제주도 여행을 보내준다고 약속한다. 반면 철수 아빠는 이번 시험에서 90점 이상 맞지 못하면 해병대 캠프에 보내겠다고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두 이야기의 본질은 90점이다. 그러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소망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 두려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단순함의 미학이 있는 남미나 아프리카에서는 두 분위기가 다른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고맥락 사회에서는 영희 아빠의 분위기로 얘기해야 될 때 철수 아빠의 분위기로 얘기하면 큰일난다. 그 반대로 철수 아빠의 분위기로 얘기해야 할 때 영희 아빠의 분위기로 얘기하면, 진심을 담으면 담을수록 상대방이 나를 더 의심하는 상황이 생겨난다.

 

 

영희 아빠의 분위기는 듣는 사람의 접근 동기에 호소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회피 동기는 철수아빠가 건드리는 동기이다. X기준은 시간이다. 왼쪽은 현재 오른쪽은 미래이다. 오래 해야 되는 일, 길게 해야 하는 일일수록 영희 아빠의 분위기가 사람의 마음을 연다. 반면 급하게 막아내야 하는 일은 철수 아빠의 분위기가 효과적이다.

 

 

사람들은 미래를 경고하면 안 듣는다. 지금을 경고해야 한다. 그래서 지구온난화 캠페인을 아무리 해도 안 듣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미래를 경고하는 광고로 잘못 만드는 실수를 자꾸 한다. 예로 지구온난화 광고이다. 북유럽은 이런 광고를 잘 한다. 한국은 사람한테 기부를 잘 하고 북유럽 사람들은 사람이 아닌 특정한 현상에 기부를 잘 한다. 북유럽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 지구온난화 캠페인을 자주 한다. 그리고 경고하지 않는다. 오늘 당신이 만끽한 이 아름다운 날씨를 500년 후 자손에게 똑같이 경험하게 해주고 싶지 않습니까?라고 하면 ARS를 누른다. 이렇게 길게 가져가야 하는 것은 영희 아빠의 분위기로 얘기해야 한다. 명의들은 지금 당장 투약하고 치료해야 하는 환자에 대해서는 구슬리지 않는다. 여기서 명의들은 철수 아빠의 분위기로 얘기한다. 능력 차원의 신뢰를 왼쪽에서, 동반자라는 차원에서의 신뢰를 오른쪽에서 쌓아야 하는데, 우리가 이것을 거꾸로 해서 어그러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아라는 개념이 또 있다. 외국심리학자들이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계속 많아지고 있는데, 그것이 나와 우리이다. “우리 와이프’라고 하는 어이없는 표현을 우리는 왜 쓸까? 혼자 사는 자기집에 놀러 오라고 할 때도 “우리 집에 놀러 와’ 라고 한다. 서양 언어뿐만 아니라 아시아 언어도 “my school”, “my company”, “my country”라고 한다. 왜 “우리”를 자아로 쓸까? 중국어도, 일본어도 그렇지 않다.

한국문화는 “관계주의문화”라고 해서 “집단주의문화” 완전 선을 긋는다. 이 두 문화는 극단적인 차이가 있다. 집단주의는 집단이 곧 나다. 집단주의에서는 집단이 무너지면 내가 같이 무너진다.  우리나라는 다르다. 집단이 무너져도 가족도 있고, 직원도 있고, 친구도 있다. 곧 나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가 있기 때문에 집단이 무너졌다고 관계를 그냥 소멸시키는 것을 무책임하게 여긴다. 일본에서는 집단이 무너지면 나도 깨끗이 소멸시키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관계주의문화는 자아가 굉장히 복잡하다.  지금 이 강의는 이 이후로는 없어지는 강의이다. 그래도 우리 강의라고 하고, 고등학교 동창회에 가서는 고등학교 동창이 우리이다. 중학교 동창회에서는 우리가 또 달라진다. 버스 2대가 달리다가 서로 충돌을 해서 싸움이 벌어지면, 승객들이 우리 기사한테 왜 그러냐고 한다. 자아가 수백 개이다. 굉장히 독특한 문화이다. 성격이 행동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문화이다. 성격은 심리학에서 사람의 행동을 가장 안정적으로 얘기해주는 변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성격대로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관계주의 한국에서는 그렇게 못산다. 나는 누군가의 부하이기도 하고 상사이기도 하고 형이기도 하며 동생이기도 하고 스승이기도 하고 제자이기도 하고 갑이기도 하고 을이기도 해서, 그때그때 자아가 바뀐다. 외국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다중인격이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한국사람을 보면 종잡을 수 없다고 하고 한국 사람이 일본사람을 볼 때 맹목적이라고 한다. 서로 자아가 너무 다르다. 지금까지는 관계주의에 대한 연구가 없었다.

관계주의는 부락에서나 가능하지 5천만 전체가 관계주의를 갖는 곳은 없다. 흔적을 찾아보면 중세유럽의 왕세에서나 찾을 수 있다. 관계주의 한국에서는 세대차이가 없다. 온라인으로 플랫폼을 옮겨 갔을 뿐이다. 관계주의의 강도는 1도 떨어지지 않다. 기성세대는 ‘관계주의적 집단주의’이고 요즘 아이들은 ‘관계주의적 개인주의’라고 할 수 있다. 관계주의는 공통 플랫폼이다. 공통 플랫폼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계주의적 언어를 하면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다.

 

 

‘원숭이’, ‘곰’, ‘바나나’를 묶는다면? 우리나라는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는데 서양에서는 이런 사고가 굉장히 신기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의 관계를 존중하면서 이야기하면 굉장히 분위기가 좋아진다. 말의 어휘를 바꾸는 것보다 말의 프레임을 바꾸면 효과가 좋다. 그 세대를 존중하며 이야기하라. 관계주의를 언급하는 화법은 “인용의 화법”이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인용의 화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4성 장군이 이등병을 바로 칭찬한다. 그것이 오히려 더 멋진 장면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상대와 나 사이에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건너뛰고 이야기를 하면 관계주의적 화법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회사에서 사장님이 과장이나 부장이 없을 때 대리를 칭찬했다고 하면, 과장과 부장이 외근에서 돌아와서 이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마음이 복잡해진다. 사장님이 왜 내가 없을 때 오셨을까? 무슨 이야기를 하셨을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을 칭찬할 때 그 관계를 배려해서 칭찬하는 것이 좋다. “그 분이 그러는데 너 이런 거 되게 잘 한다고 그러시더라.” 이런 습관을 가져라. 인용했기 때문에 아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관계 속에 인용의 힘이 있다. 오늘부터 습관을 바꿔보자. “누가 그러는데 너 이런 거 되게 잘 한다고 하더라”라고 인용을 하면 신기하게도 나를 중심으로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인플루언서들을 살펴보자. 놀랍게도 그들은 긍정적이고 좋은 평가를 자주 인용하여 사용한다.

또 한가지, 한국에서 또 다른 현상이 하나 있다. 장기에서 훈수 두는 사람이다. 훈수는 번역하기가 힘들다. ‘assist’, ‘help” 둘다 좀 이상하다.

한 팀이 며칠간 고민하고 있는 문제인데 다른 팀의 팀장이 지나가면서 한마디 하면서 지나간다. 이런 것이 훈수다. 서양이나 일본에서는 훈수 문화가 없다.

훈수는 굉장히 재미있는 메커니즘이다. 지나가는 사람이 한마디 툭 건드려서 그 문제에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통찰이 확 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기업은 굉장히 창조적이고 역동적이다. 우리가 느낄 때는 굉장히 수직적이고 답답할 수 있겠지만, 유태인 심리학자들이 볼 때는 ‘어떻게 문제를 남이 해결하고 가냐’라고 느낀다.

창의성이라고 하는 분야에서 개인주의인 서양은 너무나도 갖고 싶은데 못 갖는 문화이다. 한 개인, 한 팀이 어떤 문제를 고민할 때는 같은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제대로 보기 쉽지 않다. 그럴 때 옆에 지나가는, 조망적 관점에서 보는 사람이 짚어주는 것이다. 그 훈수문화를 어려운 말로 ‘우연한 창발성 조건’이라고 한다.

한 리더가 자기의 부하들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남의 부서의 부하들도 슬쩍슬쩍 챙긴다면, 이 훈수 문화가 잘 발생한다. 그리고 부하들도 타 부서의 리더에게도 예의를 보이면 좋다. 수직적, 수평적 조직보다는 대각선적 관계가 좋은 팀이 같은 기량과 같은 인풋으로도 성과가 가장 좋다.

사냥을 잘 하는 사자의 경우도 그렇다. 사냥 능력이 그렇게 좋지 않은 팀이지만, 다른 무리에게도 사냥에 도와준 대가를 챙겨준 무리는 점점 사냥을 잘 하게 된다. 그것은 사냥을 하는 운동신경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팀이 사냥을 할 때 옆에서 지원해주는 사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 사냥에 훈수를 둔 사자의 무리에게는 전혀 피해가 없다. 짧은 시간 슬쩍 훈수를 두고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받는 팀에게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사자 왕이 여기서 나온다.

 


호모사피엔스는 30만년이지만, 아프리카에 가면 6백만년 된 사자의 화석이 종종 발견된다. 사자는 다산 하지도 않고, 채식을 하지도 않아 멸종하기 딱 좋은 종이다. 하지만 사자가 멸종하지 않고 지금까지 초원에서 쨍쨍하게 살아남아 있을까? 바로 훈수를 두는 대각선적 관계에서 승진시키고 왕을 시킨 것이다.

조직에서 나에게 의사결정권을 가졌을 때, 성과에는 보상하고, 보상을 분배하라는 것이 인지심리학자들이 하는 말이다.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계속 프로모션을 주고 성과를 분배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결국에는 훈수 문화가 사라지게 된다.

관계주의 문화에 대한 어려움이 하나 있다.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난다. 그래서 힘든 것도 사람 때문에 힘들다.

 


뼈 부러지거나 살점 떨어져 나갔을 때, 진통제를 복용하면 그 진통효과가 관자놀이 쪽에 있는 곳으로 간다. 그래서 진통제는 다 거기를 진정시킨다.

사람때문에 고통스러울 때는 뇌의 어느 부분이 담당을 할까? 놀랍게도 같은 곳이다. 사람때문에 힘들 때 진통제를 복용하면 효과가 있을까? 있다. 그렇다고 이때 복용을 하면 잘못하면 오남용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사람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을 뼈가 부러지거나, 살 점이 베었을 때와 동급으로 본다. 사람때문에 힘들 때는 정신력으로 이겨내려고 하는 무모한 짓을 하지 말고, 몸을 돌봐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정신력에 강박증이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이 와서 한 것은 체력훈련이었다. 정신력과 체력은 같은 건전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전원공급장치가 똑같은데 어떻게 정신력으로 싸우나?

사람때문에 크게 고통 받은 날은 3가지를 꼭 해야 한다. 좋은 음식을 먹고, 마사지를 받아 혈액순환을 돕고, 잠을 자야 한다. 그 3가지는 사람마다 순서가 다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나의 판단능력을 지키는 메커니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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