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꽃의 귀족: 배롱

 

 국민대학교 경영대학 남영호 교수

여름철에 온갖 꽃이 피어난다. 그래서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름철이 매우 바쁘다.
그렇지만, 여름에 나무에서 피는 꽃은 매우 드물다. 초화 (草花), 즉 그해 한해 피었다가 가을에는 죽어가는 풀꽃들이 잔치를 벌이지만, 교목, 관목 등 나무는 이미 꽃을 피었고 열매을 맺으면서 가을을 준비하기 때문에 여름에 나무에서 피는 꽃은 귀하다.

 

많은 종의 나무들이 자신의 후대 번식을 위하여 봄에 꽃을 피운다. 그 반면 무더위가 시작되면 대부분의 나무들은 내년의 새로운 화려함을 약속하면서 열매를 준비한다.
봄의 쌀쌀한 기운 속에서도 산수유를 필두로 매실나무, 개나리, 조팝나무, 목련, 벚나무가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나면, 이어서 라이락, 박태기, 명자나무, 이팝나무, 산딸나무 등 온갖 나무들이 제각각의 방식으로 꽃을 피운다. 라이락이 가지 끝에서 꽃이 나오는 반면, 박태기는 긴 줄기에 밥풀데기가 붙은 것처럼 짙은 보라색 꽃이 닥지닥지 붙어 나온다 (밥풀데기->밥태기->박태기로 변했단다). 그 반면 산딸나무는 나무 꼭대기에서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운다. 특히 산딸나무의 십자가형 꽃은 나무 위에서 볼 때 특히 아름답다. 생물학적으로는 꽃받침 4장이 십자가처럼 벌어진 것이지만 우리 눈에는 그저 아름다운 꽃일 뿐이다.

 

계절이 여름으로 접어들면 꽃이 귀해진다.
그런데 이렇게 꽃이 귀한 여름에 신나게 피어나는 나무 꽃이 몇 종류 있다. 능소화가 나팔모양의 연주황색 꽃을 피고지고 하면서 넝쿨을 뻗어나간다. 무궁화도 빼놓을 수가 없다. 무궁화꽃 한송이는 하루가 생명이다. 아침에 피어서 저녁에 떨어지지만, 무수한 꽃송이가 피고지고 하므로 우리 눈에는 무궁화는 끝없이, 무궁 (無窮)하게 꽃을 피우는 것으로 보인다. 끈질긴 생존력의 과시하면서 우리와 친근하다 못해 國花가 되었다.

 

그런데 초여름에 꽃이 피어서 여름 내내 버티는 또 다른 끈질기고 화려한 나무가 있다.
바로 배롱나무이다. 흔히들 목백일홍 또는 백일홍나무라고 부른다. 여름철 백 일 내내 피어서 백일홍이다. 백일홍의 소리가 변해서 배롱으로 되었다고 추정한다. 물론 백일홍이라는 국화과의 한해살이풀도 있으니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花無十日紅 (아무리 예쁜 꽃도 십일을 가지 못한다)이란 말이 무색하게 여름 내내 피어있다. 그래서 木백일홍이라고 부른다. 꽃이 한 번에 피고 지는 것이 아니고 조금만 꽃송이들이 뭉쳐있으면서, 차례로 피고지면서 마치 오랫동안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본인은 가끔 배롱 같은 여인을 만나면 좋을텐데 라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배롱나무는 알면 알수록 그리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아름다워지는 나무이다. 꽃송이의 화려함은 말할 것도 없고, 나무 수형, 즉 나무의 생김새는 진짜 일품이다. 잘 기른 배롱나무를 보고 있자면 밸리댄서들이 군무를 추고 있는 형상 같다고 할까, 아니면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면서 팔을 흔드는 록 콘서트장과 같은 분위기이다. 물론 어린나무로서는 이런 형상이 나올 수 없다. 배롱나무는 가지치기에 잘 반응하는 나무이어서 장기간 가꾸면 이렇게 된다.
나무의 수피의 아름다움도 시간이 걸린다. 나무의 피부가 살살 베껴지면서 나무껍질의 연한 붉은 색 속으로 하얀 속 피부가 들어나는 것이 일품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답고 매끄러운 피부로 바뀐다. 일본 별명이 ‘사루스베리 (猿滑り)’ 즉 원숭이도 미끄러워서 떨어지는 나무인 것을 보아도 매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놈의 북방한계선은 서울보다 훨씬 남쪽이다. 중부지방에서는 기르기가 어려운 나무이다.
배롱을 기르려면 우선 장소를 잘 택해야 한다. 겨울에 바람을 막을 수 있고 건물의 복사열을 받아서 기온이 3-4도 이상 높은 곳이어야 하며 초겨울에 밑동부터 잘 싸주어야 한다. 이런 보호장치가 안된 지역에서는 가지 끝까지 잘 싸주어야 한다. 워낙 추위에 약한 나무이어서 겨울에 보호를 제대로 해주기 않으면 꽃을 피우는 말단 가지들이 동사하기 때문에 새순이 나온다해도 아름다운 꽃을 볼 수가 없다.

 

어느 해 늦가을에 광화문 교보빌딩 앞의 배롱나무를 짚으로 싸는 현장을 본 적이 있다. 인부 열 명 정도가 달라붙어서 꼼꼼히 싸주는 것을 보면서 역시 귀족 나무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하동과 순천지방을 여행하면서 이 생각이 일시에 지워졌다. 이 지방 국도변에 줄지어 심겨져 있는 가로수 나무가 바로 배롱나무였다. 색깔도 흰색, 자색, 진한 분홍색, 연한 분홍색 등 형형색색이어서 운전하는 내내 감탄사를 연발한 기억이 생생하다. 동시에 ‘배롱은 귀족 나무’ 라고 인식하고 있던 나 자신이 우스워진 기억이 난다. 중부지방 기후에 맞지 않는 나무에 꽃을 피우려고 서울에 있는 호사가들이 나무를 싸주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면 아름다운 수형과 수피를 가진 배롱나무의 꽃을 감상할 수 있지만 저작권 문제로 여기에 게재할 수는 없고 여러분들 각자 검색해서 멋진 사진을 감상하기 바란다. 여기에 실은 사진은 본인이 최근 우림블루나인빌딩 정원에서 찍은 배롱 사진이다. 끽연자들이 뿜어내는 담배연기를 묵묵히 들이마시고 있는 배롱나무를 보면서 귀족은커녕 푸대접받고 있는 배롱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담양 명옥헌의 배롱을 감상할 분은 아래 주소로 들어가기 바란다.

https://ko.wikipedia.org/wiki/%EB%B0%B0%EB%A1%B1%EB%82%98%EB%AC%B4#/media/File:Lagerstroemia_indica_in_Damyang_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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