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말들 – 강혜성, 『애초에 하늘을 날던 물고기』 대외협력WG 김효선 | 시인들 2023’봄여름호

영림원소프트랩 대외협력WG에는 숨은 문인이 있다. 대외교육기획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효선 님이다.

법무법인 세종 HR팀에서 근무하던 중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 진학했고 석사 학업 완수를 위해 퇴사를 결심한다.
문학 석사를 마치고 영림원소프트랩 대외협력WG에 합류했고 그 해 겨울 <시와 사상>에서 문학 평론으로 등단한다.
현재는 주중에는 교육기획자로, 휴일에는 글쟁이로 창작을 병행 중이다.

앞으로 김효선 님의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시와 소설, 문학 평론의 세계로 여러분들을 초대한다.

 

 

 

그 여자의 말들 강혜성, 『애초에 하늘을 날던 물고기

 

 

당신이 여성이라면, 여성으로 태어나 길러온 당신의 정체성(正體성)은 특별하다. 명확한 정체와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하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는 여성 주체라면 그의 목소리는 더욱 특별하다. 여성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그것의 정체를 알아가는 과정은 한 여성이 세상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지에 대한 좋은 답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그래서 문학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를 찾아내고 읽어내는 것은 삶의 이치를 확인하는 길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여성 창작자가 그의 창작물 안에서 ‘여성’에 대한 소재를 다루거나, ‘여성’의 어조로 말하지 않으며, 독자도 항상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여성 문학가에게 문학을 통해서 자신의 여성 정체를 발견하고, 특정한 페르소나에 자신을 투영함으로써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요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그 감정은 해야 할 일을 해냈으며, 그것이 옳고 바른 일임을 직관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오는 쾌감과 충만함이다.

강혜성은 그의 첫 번째 시집『애초에 하늘을 날던 물고기』에서 ‘여성’을 말한다. 그의 시집은 한 편의 여성 판타지이다. 시 속에 담긴 시인의 여성에 대한 생각들은 조금씩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단 하나의 결론을 향해 가는 한 편의 거대한 서사이다. 이 이야기들은 4부에 걸쳐 각자 다른 음색과 정서를 보여주며, 반전과 속임수를 거듭하던 서사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작자의 목소리는 농익어 간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었으며, 그의 어머니이기도 했던 이 비련의 주인공이 부르는 낮은 음색의 블루스는 가슴 깊은 울림으로 부서져 내린다.

시인은 몇 가지 톤의 목소리를 상정하여 다른 음색의 시편들을 펼치고 있다. 그 목소리를 세 가지로 구분하자면 첫 번째(①)는 무력한 여성의 비애, 두 번째(②는 무력한 화자(여성)의 일상이 전복되는 상상, 마지막(③)은 모성을 향한 원초적 기억이다. 이 세 음성은 시집 안에서 비교적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보편적인 인간 심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①-②-③, 아니면 ①-②-③-①-②-③…(반복)의 순서로 읽는다면, 독자가 시의 논리와 화자의 창작 심정(心情)을 납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구멍이 많은 여자가 구멍 난 시를 노래하고 구멍 난 가슴을 울리고

굴속으로 숨어들어 가 십자가를 그어도 아이를 낳을 순 없어요

강혜성, 「비밀」 中

 

화자의 심정은 주로 여성이 느끼는 무력함에 대한 슬픔의 표시(①)로 드러난다. 출산의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여성의 자궁에서 빛이 난다는 표현은 그가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여 ‘출산’의 소임을 해냈다는 사실에 대한 반어로 읽을 수 있으며, 그것이 비극임을 알려주려는 듯 출산과 동시에 ‘비둘기의 날갯죽지가 부러지고/토끼의 빨간 눈이 터지고/거북이의 작은 발가락들이 잘리’고 만다(「비둘기의 날갯죽지, 토끼의 눈과 거북이 발」). 그럼에도 ‘붉은 눈물을 흘리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흐느끼며 기억을 버리는 일’ 뿐이다(「벌레 먹은 망상」). 여기서 화자는 여성으로서 정체의 범위를 스스로 국한시키면서 모든 것을 감정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식탁보 위에 꽃물이 배어 나왔다

처음 죄를 지은 아이처럼 몸이 떨렸다

그건 마치 주홍글씨를 연상시켰다

가슴에 첫 낙인이 새겨진 날

단죄의 벌처럼 배가 몹시 아팠다

버려진 음식을 주워 먹었다

그래야만 원죄의 주술이 풀릴 것 같았다

강혜성, 「초경」 中

 

시인이 드러내는 슬픔과 무력감에 대한 감정은 주로 여성을 죄인으로 여기는 ‘원죄(原罪)’ 의식에서 기인한다. 이 시집에서는 총 다섯 편(「모과나무 밑의 욕망」, 「동백리 가는 길」, 「사족」, 「목소리」, 「천마도)」에 걸쳐 ‘뱀’을 등장시키고 있으며, 세 편의 시(「뱀만이 아는 진실」, 「초경」, 「하수구2」)에서 ‘원죄’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한다. 시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뱀’은 구약 성경에서 이브에게 선악과를 권한 탐욕과 유혹의 상징물인‘뱀’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에게 ‘뱀’이라는 대상은 인간의 욕망과 ‘원죄’를 드러내는 동시에 독자에게 ‘그것이 그렇게 나쁜가?’에 대한 판단을 요청하는 시적 도구이다.

 

화형식 전의 마녀처럼 분노하고 원망하고 배설하고

배설물로 당신의 마지막 그림을 그려요

강혜성, 「디멘치아」 中

 

‘원죄’ 의식으로 억압된 여성 심리는 여성의 ‘신체’를 ‘훼손’하고 ‘배출’하며, 금기에 저항하는 일탈(逸脫)의 상상(②)을 통해 환기된다. 금기를 깬 욕망으로 은유되는 ‘뱀’은 ‘자신의 다리부터 잘라내기 시작(「사족」)’하고, 앨리스의 환상 서사 속 ‘하얀 순결’의 ‘꽃눈’은 추락하며, ‘세 동백꽃 모가지’는 ‘댕강댕강’ 잘린다(「앨리스의 사월」). ‘뼈와 내장이 뒤섞여/부글거리며 가스 빠지는 소리를’ 내고, ‘실핏줄이 터지고 살갗이 벗겨지며 몸이 녹아’내린다(「발효」). ‘술 먹은 여자의 토사물처럼’ 낱말들이 분절되며 ‘하나이던 너와 나’는 ‘절단’되고 ‘세척’되며 ‘발골’된다(「해체」). 화자는 직접 말한다. “토하세요, 당신의 슬픔을 다 토해내세요/그러면 시원해질 거예요”(「하수구1」). 억눌린 여성의 말들은 마치 ‘방언(放言)’처럼 시의 언어로 배설되고, 쏟아져 나온다.

 

부드러운 당신의 속살 속에서 깜깜한 어둠의 껍질을 벗겨냅니다

당신과 나의 은밀한 사랑이 어느 봄날 꽃으로 피어나

또 다른 문을 두드리고 또 하나의 아픈 균열을 어루만집니다

강혜성, 「틈」 中

 

“해변에 부서지면서 유형 무형의 영토를 만들어 가는 것, 그 생성과 지움은 쾌락의 한 순간이다. 거대한 우주인 파도의 육체가 보여 주는 것은 바로 여성적 글쓰기의 본질, 여성 육체가 이루어 나가는 글쓰기의 관능성이며 매혹이다. 여성 육체의 관능성은 남성을 즐겁게 해주는, 텅빈 욕망의 관능성이 아니라 비검열된 관능성, 아직껏 보지 못했던 글쓰기의 관능성을 통해 되보여져야 한다.”[1]

전위적으로 분출된 금기행위들은 가장 원초적인 여성의 감각(③)에서 기인한다. 이 기이하고 불안한 꿈틀거림은 생물의 최초 움직임을 닮아있다. 이 움직임의 근본(根本)을 향해 가면 ‘양수 속에 들어가/웅크려 잠(「자장가」)’에 드는 태아의 마음처럼 고요하고 부드러운 양태(樣態)가 있다. 시인은 이 모습을 통해 여성의 본래성(本來성)을 보여주려고 한다. 위에서 심범순·조영복이 말했듯이, 이 파도의 출렁거림처럼 무궁무진한 감각의 향연은 ‘남성을 즐겁게 해주는, 텅빈 욕망의 관능성’이 아니라 지금껏 본 적 없으면서도 가장 ‘본래적’인 모습으로 그려질 것이다.

그리하여 시집의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독자는 시인의 궁극적인 서정(抒情)인 ‘여성 이야기’와 그 근원을 향해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다. 그곳에는 ‘어머니’가 있고, ‘달빛을 가득 품은 그녀의 둥그런 몸뚱이(「우리 여기서 잘까」)’가 있다. 바람이 불고 ‘가슴 무너지는 소리를 내는 소낙비(「바람 부는 대로」)’가 뜨겁게 내리며, ‘깃털을 부비며 서걱대는 새(「새는 죽어 갈대가 된다」)’가 날아오르는 풍경이 있다. 시인은 이 고요하고 원초적인 움직임을 통해 위로와 화해를 요청한다.

 

어머니 잠이 와요

따뜻한 욕조 속에 무거운 몸이 천천히 풀어지듯

이젠 나의 품에서 자려무나

너의 눈물을 그만 쉬게 하려무나

강혜성, 「자장가」 中

 

『애초에 하늘을 날던 물고기』에서 시인은 여성의 정체를 가진 화자의 언어로 말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여성주의 문학으로 읽을 수 있으며, 이 작품의 독해는 여성으로서의 정체를 찾아가는 과정에 다름없다. 시인은 원죄의 프레임을 뒤집어 쓴 ‘뱀’, 시 속에서 그것으로 은유되는 ‘여성’은 사실‘애초에 하늘을 날던 물고기’였다고 털어놓는다. 인간을 고통 속에 살게 한 장본(張本)이자, 원죄(原罪)의식적 프레임을 씌운 ‘뱀’이 아닌, 부드럽게 물속을 유영하던 물고기, ‘손에 잡히는 예리한 감각’으로 ‘출렁이던 물의 시간을 기억「물의 기억」’하는 물고기였다고 한다. ‘몸속에 꿈꾸던 비늘’, ‘햇빛에 부서지는 은비늘’은 ‘뱀’의 그것과 닮았으나, 실은 ‘다프네처럼 아름다운 물고기(「모과나무 밑의 욕망」)’일지도 모른다고 시인은 말한다.

첫 시집치고 꽤 강렬하다. 시인은 시집 제1부의 첫 번째 수록 시에서부터 공표한다. “당신의 자궁은 존재하지 않아요(「화원에서 잃어버린 꽃말」)”! 그는 ‘화원에서 잃어버린 꽃말을 애타게 찾는’ 남자에게 알려준다. ‘자궁은 낙원’이며 ‘낙원이 자궁’이고 ‘자궁은 낙원이 아님’을. 이것은 출산을 체험하는 여성의 몸의 고통에 주목한 주디 시카고의 <출산의 눈물(1982)>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금기에 도발하며 가부장적 태도에 도전하려고 했다.[2] 시카고가 그랬듯이 강혜성은 가장 원초적인 여성의 감각을 하나하나 불러일으키는 ‘자신만의 말’로 ‘자궁’으로서의 여성의 의미에 재차 물음을 던진다.

버지니아 울프는, “어떤 주제가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일 때 (성(性)에 관한 문제는 어느 것이나 그렇지요.) 진실을 밝히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일”[3]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다만 자신이 주장하는 견해를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는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그리하여 청중이 강연자의 한계와 편견, 그리고 특유한 성격을 관찰함으로써 그들 나름의 결론을 이끌어낼 기회를 줄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사실보다도 허구가 더 많은 진실을 내포할 것입니다. …”

소외되고 무력했던 여성의 역사는 길지만 그에 비해 여성주의 서사의 역사는 짧다. 여성주의 담론은 세기를 거쳐 오면서 그 시대상에 따라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서사는 계속해서 논쟁적이고 도발적이다. 이 서사는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어왔으므로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 결론이 없다. 따라서 아마도 여성주의는 하나의 논리 정연한 결론으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울프가 말했듯이, 여성의 이야기는 듣는 자와 말하는 자, 주변 관찰자들의 적절한 교류와 소통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느리지만 견고하게 설득해나갈 것이다. 이 다정한 ‘말’을 듣는 사람들은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절망에 빠진 자는 위로받을 것이며, 더 나은 열정을 얻을 것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금기의 프레임 안에 무력하게 살아온 한 시대 여성의 ‘말’들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이제 다음 ‘말’은 누구의 몫인가?

 

 

 

 

[참고 문헌]

심범순·조영복, 『깨어진 거울의 눈 – 문학이란 무엇인가』, 현암사, 2000, 314쪽.

정윤희, 『젠더 몸 미술』, 알렙, 2014, 32쪽~51쪽.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민음사.

[1] 심범순·조영복, 『깨어진 거울의 눈 – 문학이란 무엇인가』, 현암사, 2000, 314쪽.

[2] 정윤희, 『젠더 몸 미술』, 알렙, 2014, 32쪽~51쪽.

[3]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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