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있는 음악실] 12월, 겨울 피아노 협주곡

 

어느덧 겨울입니다.

사연있는음악실 연재를 시작한 게 따뜻한 5월이었는데 시간이 참 빠르게 갑니다.

 

언어는 각 나라의 문화와 환경마다 다르게 형성된다 합니다.

우리나라가 색에 대한 표현을 노랗다, 노르스름하다, 샛노랗다 등으로 굉장히 다양하게 하듯이 추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에스키모인들은 눈의 종류와 상태를 구분하기 위하여 약 스물 네 가지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어떠한 요소의 정수는 그것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듯합니다.

결론은 겨울이니까 겨울국에서 만든 음악을 소개 드리겠습니다.

폭발하듯 휘몰아치면서도 연말의 화려함과도 어울리는 이 곡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입니다.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1

 

러시아를 대표하는 음악가 차이콥스키, 오랜 기간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고독한 삶을 이어갔던 그는 스스로를 엄격하게 몰아세우고 비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차이콥스키

첫 번째로 작곡한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었던 차이콥스키는 1874년 크리스마스에 자신의 스승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에게 가져갑니다.
그러나 루빈시테인은 피아니스트도 아닌 제자가 피아노 곡을 쓰면서 자신에게 의논도 하지 않았던 것에 분노하고 ‘구제불능의 곡’이라는 최악의 혹평을 쏟습니다.
차이콥스키는 그의 처사에 격분하여 작품과 함께 가져갔던 헌정사도 찢어버리고 본인의 음악을 존중해 온 독일의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에게 헌정합니다.


루빈시테인-뷜로

 

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했던 뷜로는 1875년 가을, 보스턴에서 이 곡을 초연하여 크게 성공합니다.
이후 3년이 지나 루빈시테인은 차이콥스키에게 사과하여 다시 좋은 관계가 되었으며, 두 번째 피아노 협주곡은 루빈시테인에게 헌정되었다고 합니다.

음악이 무수히 많은 만큼 곡을 만들기 전, 만드는 중, 만든 후에 생겨난 무수한 일화들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아마추어가 쓰는 사연있는 음악실이 매월 사연을 이어갈 수 있는 거겠죠.

 

음악 칼럼니스트 박제성은 ‘철인 3종경기에 맞먹을 만한 강인한 지구력과 원자폭탄과 같은 폭발력, 목가적이고 가요적인 정서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러시아적인 멜랑콜리가 이 곡의 매력이다.’ 라고 합니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곡이기에 피아니스트의 능력과 오케스트라의 서브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피아니스트라면 연주할 수 있어야 하고, 피아니스트의 수준과 가능성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기도 하는 이 곡은 중국의 스타 피아니스트 랑랑에게도 아주 특별합니다.

중국에서 공부를 하다 청소년 시절 차이콥스키 국제 청소년 콩쿨에서 우승한 랑랑은 미국 커티스 음대에 들어갑니다. 다른 피아니스트 청년들과 비슷한 커리어를 쌓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특별한 일이 생깁니다.
1999년 세계 음악 축제 중 손꼽히는 라비니아 페스티벌에서


Ravinia Festival

 

이때 랑랑은 이 곡을 정말 잘 연주할 사람이라는 추천을 받아 무대에 오르게 되고 성공적으로 연주를 마친 그는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대타로 무대에 섰다가 스타가 된 유자 왕과 같은 케이스인 거죠.
유자 왕의 이야기는 9월 사연있는음악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랑랑은 이 사건을 인생 최고의 행운이라 말하며 지금도 정상급 피아니스트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총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레코딩 기술과 연주력의 한계로 현재 수준의 찬사를 받지는 못해왔지만 1930년대 전설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연주를 통해 진정한 대 명곡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서주로 시작되는 1악장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대결하는 듯 조화를 이루며 풍부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냅니다. 이후 자장가처럼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관악기의 멜로디로 2악장이 시작되고 아이가 꿈 속에서 뛰어노는 듯한 템포에서 다시 전원적인 평화로움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아노협주곡의 역사상 가장 정열적이고 스펙타클한 악장으로 꼽히는 3악장이 나옵니다.

마치 화산이 분출하는 듯한 강력한 에너지로 청중을 압도하면서도 러시아의 정서를 물씬 풍깁니다.
이 곡의 진가는 좋은 연주자의 공연을 직접 가서 들을 때 더욱 빛을 발합니다.

 

연주 때마다 반 미쳐있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표정과 가끔씩 보여주는 기이한 모습들로 팬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는 매력적이고 뛰어난 피아니스트 랑랑의 연주로 들려드리겠습니다.

 


지휘 파보 야르비, 파리 오케스트라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여러분의 2017년의 마무리 또한 찬란하길 바랍니다.

 

참고자료
네이버캐스트
위키피디아
이미지 출처
차이콥스키
루빈시타인
뷜로
라비니아 페스티벌
랑랑
12월 썸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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