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중 가장 참혹했던 장진호 전투에서 배우는 리더십”

 

2021. 07. 01

 

장진호전투< 장진호 전투에서 얼어 죽은 미군들>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을 격퇴시킨 한국전쟁의 영웅 맥아더 장군은 평양을 버리고 북한이 임시 수도로 정한 강계를 점령하려는 공명심에 불타 서부 전선을 맡은 8군 사령관과 동부 전선을 맡은 10군단장한테 크리스마스를 집에 가서 보내자고 하며 최대한의 속도로 국경선까지 진격하라는 명령을 1950년 10월 24일에 내렸습니다.

맥아더의 Yes맨으로 불리우는 에드워드 알몬드 10군단장은 인천상륙작전의 선봉으로 성공적으로 작전을 완수한 미국 해병대의 핵심 부대인 해병 1사단을 장진호 방면으로 전진시킬 것을 올리브 프린스 스미스 사단장한테 명령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중공의 저우언라이 외상이38선을 넘어 진격하면 참전할 것이라는 경고를 무시했고, 11월 1일 서부 전선에서 중공군 포로 16명을 인계 받았는데도 심문을 소홀히 했고, 미 기병1사단 8연대가 10월 28일부터 4일간에 걸친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사실상 전멸당하다시피 되었던 상황이었는데도 도쿄의 미국 정보 참모 월로비 소장은 북한에 들어와 있는 중공군은 1만6500명에서 3만 4천 명에 불과하다는 발표를 했고, 실제로는 30만 명의 중공군이 들어와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스미스 장군은 장병들이 적진으로 공격할 때 교량이 있으면 반색했지만 퇴각하는 적이 교량을 폭파하지 않았다는 것은 매복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중공군의 포위를 뚫을 수 있는 힘은 병참에서 나온다는 생각 하에 장진호 동쪽의 하갈우리에 병참용 수송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활주로를 건설했고, 창고를 지어 충분한 탄약과 필수 소모품을 비축해 두었으며, 신속한 진격 명령에도 불구하고 명령 불복종에 가까울 정도로 느리게 진격해 갔습니다.

 

실제로 중공군 9병단 15만 명의 병력이 장진호 주변을 에워 싸고 미군이 들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다시 말해 장진호 전체가 미군을 사지에 물아 넣을 중공군의 대함정이었던 것입니다. 중공군의 원래 목표는 미해병 1사단을 전멸시키는 것이었지만 스미스 장군의 탁월한 영도력으로 미군은 비록 패퇴해 철수하였으나 오히려 타격을 더 입은 쪽은 중공군이었습니다.

 

장진호 전투가 끔찍했던 또 하나의 배경은 해발 1,200미터의 험한 산악 지형에다가 아침 기온이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며 전투 기간 중 제일 추운 날 영하45도까지 내려 갔던 추위와의 전쟁이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전투에서 죽은 사람 수에 맘먹는 동사자와 전체 병력의 대부분이 동상에 걸렸으며, 격발 장치가 얼어 붙은 카빈 소총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C레이션 깡통을 모닥불에 덥히면 아래는 타고 위는 얼어 붙었고 이를 억지로 먹은 많은 장병들이 심각한 장염과 특종설사에 시달렸습니다. 설사를 하면 항문까지 동상에 걸렸던 강추위와 싸워야 했던 것입니다.

 

1950년 11월26일부터 12월 13일 사이 18일 동안에 치뤄졌던 장진호 전투 결과 미1사단은 전사 609명을 포함한 전사상자 4,000여 명 이상의 피해를, 중공군 9병단은 전사 25,000명 등의 37,500 여 명의 전사상자 피해를 입었습니다. 근 10 배의 병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적에게 7배 이상의 피해를 입혔던 장진호 전투는 미군의 후퇴로 졌지만 내용 상으로는 이겼던 육이오 전쟁 중 가장 참혹한 전투였습니다.

스미스 사단장이 ‘역방향 기동 작전’이라고 명명한-‘후퇴’는 사기를 떨어뜨리는 표현이라고 안 쓴- 철수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중공의 9병단을 묶어 두게 되었고, 그 덕분에 나머지 지역에 퍼져 있던 10만 여 명의 연합군 병력의 흥남 철수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을 태우러 왔던 수많은 함정들이 있었기에 10만에 가까운 민간인들을 자유 대한의 품으로 철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님도 계셨던 것입니다.

 

맥아더 사령관의 의사 결정을 보면서 조직을 이끄는 수장은 자신의 명성이나 이상을 좇는 공명심이 아니라 진실한 가치(Real Value)에 근거한 보다 큰 목표를 비전으로 세우고 이의 달성을 위해 조직을 독려해 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재삼 깨닫게 됩니다.

스미스 장군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것은, 상부의 명령을 중요시 하지 않고 진정으로 아랫사람들을 위해서 최선의 방안을 찾는 자세와 ‘항상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라’는 평소의 신념대로 조직을 이끎으로써 오천 분의 일이라는 승률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데 앞장 섰고, 사단 전멸의 위기 속에서 희생을 최소화 하면서 흥남 철수 작전을 완수할 수 있었던 성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Y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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