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코드:픽션] 탄원서 <3> – 글 : 유염(송유진님)
“아마 돈문제일 겁니다.”
나의 대답을 기다리던 형사의 눈을 처음으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 건물과 집으로 귀가하는 동선을 차례대로 고했고, 내가 확인하고 싶은 부분도 물었다.
“저기요… 혹시 제 회사에도 연락이 가나요?” 쉼 없이 키보드로 뭔가 작성하던 형사는 손을 멈추고 의외로 내 물음에 순순히 답을 해줬다.
“CCTV 확인하는 거는 건물만 보면 돼서요. 뭐 연루되어 있지만 않으면 연락 갈 일은 없을 겁니다.”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된 채 말을 이어갔다.
“구체적으로 부모님 금전 관계에 대해 아시는 거 다 얘기하세요. 본인도 혐의 벗어나시려면 최대한 협조하셔야 합니다.”
거의 협박처럼 느껴져 본 것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돈으로 싸운 일은 너무 많아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대학시절에 접어들면서 엄마의 편집증적 증세에 망상, 환청까지 더해져 축복금의 규모나 가족들을 대하는 태도가 급진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찾아본 것이지만 산후우울증이 치료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병세가 발전된 모양이었다.
나와 아빠를 항상 의심하기 시작했다. 본인을 죽인다거나 해할 것이라는 망상에 시달렸다.
비록 지금은 현실이 되었지만.
나와 아빠는 딱히 대화를 하며 지내지 않았지만, 항상 우리 둘이 어떤 작 전을 짠다고 말했다.
이성적으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은 엄 마는 스스로를 방에 가두고 기도원 사람들을 만날 때만 밖으로 나왔다.
거실에서 슬쩍 보이는 방안 모습은 신문지로 방의 모든 면을 도배하듯 덧 붙여놓은 모양새였다.
창문도 모두 가려놓아 대낮이었지만 상당히 어두웠 다. 어느 날은 집에 있는 날붙이를 모두 그 방에 가지고 들어가 밥을 해먹을 수 없었던 날도 있었다.
반대로 기도원 사람들을 상당히 신뢰하였다.
엄마가 감기에 걸렸던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신경이 쓰여 약국에서 약을 사두었는데, 내가 사둔 것은 먹지 않고 기도원에서 받아온 약만 먹었다.
병원약도 아니었기에 당연하게 감기는 열흘을 꼬박 다 앓고 나은 듯했다.
“이게 다 뭐야?” 집에 치약과 세제들이 박스째로 잔뜩 들어차 있었다.
“손대지 마.” 나를 경계하는 눈초리로 박스들을 챙기며 쏘아붙였다. 당시 대학생이 었던 나는 얼추 그것들의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다단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물품들이었다. 박스에도 익숙한 기도 원의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바로 또 아빠와의 싸움이 시작 되었다. 역시나 이제는 다단계냐는 소리가 밖에 새어 나왔다. 나는 그날 따라 지긋지긋한 느낌이 들어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이때까지 내가 기억하는 것들을 모두 형사에게 쏟아내었다. 남에게 말 하는 것은 처음이라 어쩐지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형사는 처음과 사뭇 다른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밖에서 들어온 여자에게 파일을 건네받고 한참을 읽더니.
“더 진술하실 내용 있으십니까.”
형사가 물어본 얘기는 모두 한 터였다. 나는 대답은 하지 않고 머리를 가로저었다.
“건물 CCTV랑 교통카드 사용시간 확인되셨고요. 뭐 생각나는 거 있으 시면 아무 때나 전화하세요.”
나에게 명함을 한 장 건네며 처음과 다르게 상당히 누그러진 어투로 말했다.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저기 피해자 아, 그러니까 어머님은 세운병 원으로 이송되셨고요, 그쪽 장례식장 사무실 가서 안내받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거가져 가시고요.”
작은 종이 팸플릿을 하나 건네주었다. 유광으로 코팅되어 있는 종이에 노랗게 특수청소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나는 가라는 소리에 대번 인사도 하는 듯 마는 듯이 도망쳐 나왔다. 꽤 늦은 시간이었고 몰려오는 피로감에 아빠 쪽은 쳐다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경찰서 앞 쓰레기통에 받은 명함과 팸플릿을 대충 구겨 넣었다. 잠시 서서 생각에 빠졌지만 역시 갈 곳이 없어 결국 안내받은 병원으로 향했다.
애석하게도 가족이라는 명목 아래 사건에 연루되어버려서 시신을 무연고 자로 처리할 수는 없었다. 경찰 조사를 마치고 도착한 장례식장은 늦은 시 간인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상당히 붐볐다.
복잡한 도로에 차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이물질인 나는 그 속에서 천천히 접수실로 찾아가 가장 저렴한 공간과 절차를 물었고 가장 빠르게 발인이 가능한 일자를 골랐다.
가장 저렴한 호실은 상당히 여유가 있었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돈이 빠듯한 삶이라니, 이 정도면 팔자려니 해야 할까.
접수실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그룹이 더 있었는데, 형제로 보이는 그들 이 곧잘 서로를 의지하며 논의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계속 눈이 갔다.
우리 집도 가족이 더 있었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복작거리는 우리 집을 상상해 보았지만 이내 머리를 진저리치듯 휘저었 다. 숟가락이 많을수록 더 빠듯한 법이었다.
나는 배정받은 장례식장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휴대폰을 꺼내 들고 문자를 작성하였다.
팀장님, 죄송하지만 어머니가 금일 돌아가셔서 경조휴가를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운병원 장례식장 319호실입니다.」
「내가 기안 올릴 테니 걱정 말아요. 급한 업무 갖고 있던 게 있나요?」
「넵 어제 김대리님께 받아서 작업하던 파일이 있는데, 저희 팀 공유폴더 에 있습니다.」
「그래요. 그건 내가 김대리랑 얘기해서 처리할게요. 연차가 더 필요하면 미리 연락 주고 잘 보내드리고 복귀하세요.」
「감사합니다.」
간결한 문자로 회사는 사건이라는 느낌 없이 평범하게 마무리되었다. 오히려 친척들이 걱정이었다.
경찰에게 전해받은 엄마의 물품에서 휴대 폰을 찾아 연락처를 열었다. 연락처 목록에는 가족과 삼촌, 막내이모를 빼 면 전부 모르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문자와 카카오톡에는 우리 가족들보다 모르는 이름의 사람들과 더 친밀한 느낌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삼촌과 이모에게만 문자를 돌렸다.
이내 막내이모에게만 답장이 왔다. 「연락하지 말거라.」
아, 내가 모르는 일이 또 있구나. 나는 차라리 잘 되었다 싶어 이내 휴 대폰을 덮었다.
잠시 다른 연락처에도 연락을 해야 할까 싶었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이내 실소가 나와버렸다. 따지고 보면 원인제공자들인데 연락을 할 생각을 잠깐이라도 했다는것에 스스로가 우스웠다.
319호 장례식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했다. 여러 사람이 북적거리 며 오가는 보통의 호실과는 거리 자체도 떨어져 있어, 마치 장례식이 진 행되지 않는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복도에는 저 멀리 붐비는 장례식장에서 파생된 소리들이 산발적으로 반향되어 웅웅대는 진동뿐이었다. 가족이 셋뿐인데다 친척 간 교류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겠지.
적막함을 깨뜨린 것은 수사를 받던 아빠의 연락을 받고 찾아온 고모들이었다. 의외로 연락을 하고 있었던 점. 정상적으로 형제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퍽이나 놀라웠다.
텅 비어 있던 함에 첫 조의금이 들어갔다. 상주로서 인사도 나누고 휑 하던 영정사진 앞으로 처음으로 꽃도 놓였다. 그래도 장례식장으로써의 기능이 처음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이내 고모들은 하소연하듯 나에게 푸념과 참견을 마구 쏟아냈다.
나는 오래간만에 들리는 대화다운 대화 속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소리들을 맞으며 생경한 안정감을 느꼈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평범한 가족 같았다.
다음날 회사에서 근조화환이 도착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무난한 것이었지만, 드디어 평범함을 갖추게 된 것 같아 홀로 감격스러워했다.
319호실은 그제야 밖에서도 장례식을 치르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장례식은 회사 동료 몇 분의 방문을 끝으로 소박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나마 고모들이 자리에 있을 때 왔던 것이 너무나 다행이었다. 조금은 평범한 가족처럼 보였으리라.
회사에는 최대한 사건임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사인도 지병으로 대충 둘러댔다. 발인날 아침 사망진단서를 확인하고 화장장으로 이동하여 접수하고 대 기하면서 멍하니 둘러보았다. 화장장에는 모두가 각자의 모습으로 슬퍼 하는 가족들과 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 다음 회에 계속 –
Young.March 2026년 3월 오디오파일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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