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쓰는 글 | Chapter 1] 이터널 선샤인 – 마케팅 오지연

Schubert · 4Impromptus, Op.90, No.1 | words & design · 마케팅 오지연

오래전 끝난 인연을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과 즐거운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좋았는데 왜 멀어졌을까, 시간상 가장 가까운 기억인데 생각해 내는 데 오래 걸린다.
한 시절을 떠나보내며 나는 약해져 있었다.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차라리 다 잊고 싶다며 울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실연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억을 통째로 들어낼 수 있다면?
잊고 싶은 대상과 연관된 물건을 모아 내기만 하면 기억을 전부 삭제해 주는 곳이 있다면,
우리는 이용할까?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두 주인공은 그랬다.

이별 후 홧김에 연인에 대한 기억을 지운 클레멘타인, 그녀를 따라 자신도 기억을 지우려 하는 조엘.
그는 작업을 위한 수면 상태로 들어갔고, 최근 기억부터 거꾸로 지워가는 일이 순조롭게 시작됐다.
잦은 다툼으로부터 기억을 거슬러 올라 행복한 시절로 접어든다.

어느덧 그녀와 함께 모든 것이 완벽했던 순간에 다다르고
겨울밤, 아무도 없는 꽁꽁 언 호수 위에서 둘은 나란히 누워 하늘을 보고 있다.
“지금 죽어도 좋아”
“이런 순간을 늘 꿈꿔 왔어”
“비로소 내 자리를 찾았어”

이 순간이 지워지려 하자 조엘은 이것만큼은 남겨달라고, 지우기 싫다고,
심지어는 다 취소해 달라며 미동도 없이 감은 두 눈 속에서 외치고 애원하고 고통스러워 한다.
그리고는 옆에 누워 있던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 그녀를 만나기 전, 그녀에게 언급한 적 없던 기억으로
도망치고, 장치에는 오류가 난다.

그는 이미 끝난 사람과의 기억을 왜 그리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을까?
아직 잊지 못해서? 재회를 기대해서?

죽어도 좋을 행복, 가장 크게 동요한 순간, 내가 가장 내가 되는 경험.
가장 깊은 행복의 순간은 곧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언 호수 위에 나란히 누운 너와 나의 경계는 허물어졌을 것이다. 너는 나를 경험한 또 다른 나다.
상실이 고통스러운 까닭도 여기에 있다. 또 다른 나였던 존재를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만이 갖고 있는 내 존재의 일부가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를 탠저린이라 부르던 사람이 사라지면 나는 더 이상 탠저린일 수 없다.
너를 잃음으로써 나는 네 것이었던 나의 한 부분과도 이별해야 한다.
너와 나의 구분이 사라졌던 찰나의 행복, 너를 지우는 것은 나를 지우는 거였다.

다시 지금의 나를 본다.
행복은 이처럼 가장 강해서, 좋지 않은 결말보다 고마움이 먼저 떠올랐나 보다.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도, 차라리 모르고 살았을 것도 안 될 일이었다.
나를 울게 한 시간이 나였다.

상처받기 싫어 사랑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결국, 사랑앞에서 힘을 잃는다.
혼자의 경계를 넘어 사랑하는 이와 함께일 때만 이룰 수 있는 행복,
진정한 내가 살아나는 순간을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건 감수할 만한 거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하고 그 순간을 그리워하며 그 순간에 삶의 이유가 있다.

Schubert · 4Impromptus, Op.90, No.linCMinor

조엘이 번쩍, 눈을 뜨면서 시작되는 듯한 슈베르트 즉흥곡 Op.90 No.1은
딱 한번 행복하다.(조를 바꿔 한 번 더 나오긴 하지만).
헌데 그 짧은 행복이 강렬하게 아름다워서 마음에 박혀버리고 만다.

부드러운 거대한 파도가 가슴을 삼키고 지나가는 듯한 행복.
그 순간을 위해 긴장하고 탄식하며 희망을 보다가 이윽고 짧은 행복에 도착하고는 이내 소멸한다.

파도가 지난 자리엔 파도의 흔적만 남는다.
사랑이 지난 자리엔 사랑의 흔적만 남는다.

나의 이터널 선샤인
찰나의, 그러나 가장 강렬한
행복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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