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코드: 픽션] 송유진 님의 단편소설 <탄원서 2>

 

고객가치실현팀 송유진 님은 필명 ‘유염’으로 충격적인 도입부가 인상적인 소설을 연재합니다.

 

“자 내리세요.”

어느덧 경찰서에 도착했다. 낯선 사람들이 나에게 길을 인도했다. 그것은 결코 친절함이 아닌 연행에 가까웠다. 형사 3팀. 팻말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니 잿빛 사무실에 책상이 늘어서 있고, 그 위에는 종이와 파일이 마구잡이로 올려져 있었다. 나는 나를 인도해 준 사람 맞은편에 앉았다. 아빠는 책상 두 개 정도 너머에 앉아 있었다. 아마 서로 말을 섞거나 맞추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나를 인도한 경찰은 사십대 중년으로 보였다. 경찰답다고 느껴질 만큼 다부진 체격에 짧은 스포츠머리, 눈썹과 수염은 다듬지 않아 지저분한 인상을 주었다. 뭐 단순히 저 경찰의 자리였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 앉으시고요 성함이랑 나이요.”

상냥하다는 듯 말꼬리를 늘렸지만 꽤나 날 선 어투였다. 여기 오기까지의 주변의 시선과 표정. 사람들의 거친 태도가 난생처음 겪는 것들이기에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박정민… 서른 살 이, 입니다.”

긴장해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스스로가 바보 같아 눈을 찡그렸다.

“사망자랑 관계요.” “자식입니다.” “어머니시고, 그럼 저분이?”

형사가 머리로 아빠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빠요.”

형사는 얼굴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

“처음부터 보신 거 순서대로 말해보세요.”

“어… 현관에서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엄마는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아빠가 뭔가 저지른 것 같아서 일단 자수하라고 말했고 전화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형사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나를 한참 쳐다보았다.

“지금 말하신 진술 나중에 번복하시면 안 됩니다. 종범이 되실 수도 있고 단순 참고인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틀린 거, 잘못 말한 거 있으면 지금 얘기하세요.”

나는 화들짝 놀라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어느 기억을 뒤져봐도 오늘 내가 한 일은 회사 출근했다가 퇴근한 일뿐이었다.

“살해동기 뭐 짐작 가시는 거 있으십니까?”

내가 아무 말도 않자 형사는 또다시 질문해오기 시작했다. 살해동기. 단 하나를 꼽자면 역시 돈이겠지. 어린 시절 단어를 채 이해하기도 전에 알게 된 단어 돈. 그 돈이 무엇이길래 엄마와 아빠를 진창으로 빠트리고 괴롭히는걸까? 어린 시절에야 순진한 호기심이었다. 나중에 이해하게 된 돈은 나에게도 늘 패배감을 안겨 주었다.

그 해는 열 살 즈음이었을 텐데, 현관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집에 엄마가 있음에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어 곧장 말을 걸었었다.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마구 쏟아내고 싶었던 듯이.

“엄마! 엄마! 오늘 색칠을 했더니 색연필 다 썼어.” 나는 가방을 열고 색연필을 찾으려 뒤적이며 말했고. “어 그래, 이따가.” 엄마는 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휴대폰과 통장을 번갈아보며 뭔가를 확인해 갔다. “내일 또 친구들이랑 색칠하려면 빨강이 꼭 필요해. 주인공이거든!” 나는 그때까지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해 계속 신이 나서 말을 이어갔다.

“나중에. 엄마 바쁜 거 안 보이니?” 엄마는 신경질적으로 대답을 한 뒤 식탁 가장자리에 통장과 입금표들을 반듯하게 늘어놓고, 휴대폰으로 뭔가 계산하기 시작했다.

‘축복금 109만 원 부족.’ 엄마의 메모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차가운 목소리 톤에 그제야 잔뜩 위축된 나는 가방에서 조용히 알림장을 꺼냈다. 건네줘야 했지만 손은 계속 망설였다.

“엄마, 내일 선생님이 준비물 검사해.” “그래. 네 아빠한테 말하자.” 엄마는 휴대폰 버튼을 길게 눌러 화면을 껐다. 꺼진 화면에 내 얼굴이 거꾸로, 작게 비쳤다. 이후로도 돈과 나의 우선순위 대결에서 나는 항상 패배하기 일쑤였고, 돈은 언제나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이따금 엄마와 아빠가 정말 기분이 좋은날 용돈으로 5천 원을 쥐여주면,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당신들 쓰라며 고사하는 날이 늘어갔다. 초등학생에게 돈은 그다지 필요 없기도 했다. 부모가 필요했을 뿐.

모순적인 것은 엄마는 항상 엄마 없는 애처럼 하고 다니지 말라 당부했지만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실제로 집에는 엄마가 없었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당시에는 잘 몰랐다.

시간이 흘러 집은 점차 작아졌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아파트에서 살았지만, 빌라로 이사를 갔고 고등학생 때는 옥탑으로 옮겨 갔다. 이때만 해도 이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아빠는 계속 일을 하셨지만 가세는 꾸준히 기울어 갔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세 가족을 꾸리기에 적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은 대학 입학 당시였다. 당시에 나는 공부를 제법 잘했지만 아빠는 나의 대학 진학을 반대했다.

“꼭 가야겠냐? 요즘 뭐 대학 간다고 제대로 취직하는 것도 아니더라.” 나는 대답할 가치가 없는 말같아 가만히 있었다. “뉴스 봐라. 백수들 다 고학력자더라.” 어처구니가 없어 결국 맞대응하기 시작했다. “성적도 되고 쌤도 원서 쓰라고 하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야!” “내가 알아서 해. 그동안 뭐 해준 거 있는 것처럼 말한다. 해준 것도 없으면서.”

나도 빈정이 상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상처 주고 싶었다. 이 결투에서 그저 이기고 싶었다. 처음으로 내 고집을 주장한 그날 아빠는 이내 털어놓았다. “네 엄마가 사이비에 돈을 다 갖다 바쳤어. 지금도 봐라. 집구석에 붙어 있나.”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빛바랜 고백을 토하듯이 내뱉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어느 정도 예상을 했던 터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단박에 짜증이 나서 질러 버렸다. “네 등록금을 못 내는데, 어쩔 도리는 있냐?” 빈정대는 어투에서 조금 울컥했지만 티 내고 싶지 않았다. 울면 지는 것 같았다.

“네 어렸을 적 살던 그 아파트도 홀랑 거기 갖다 바치더라. 그거 결혼할 때 네 엄마 명의로 해줬던 거거든.” 마지막 말을 할 땐 어쩐지 기세가 등등해졌다. 잘났어 정말.

“그러는 동안 집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었고?” 내가 되물었다. 그동안 집엔 아무도 없었다.

더이상 할 말을 잃은 아빠를 두고 나는 재차 물었다. “차라리 이혼을 하지?” “이혼은 아냐. 그건 실패자야.” 고리타분한 옛날 사람 같은 말이었다. 요즘 세상에 이혼이 흠이나 되냐는 말을 했지만. “그리고 애엄마는 필요하지.”

그가 곧이어 한 말이야말로 엄청나게 모순된 상황이었다. 엄마의 역할을 하는 이가 없는 집이었는데 자식에게 엄마가 필요해서 이혼을 하지 않았다니. 앞과 뒤가 맞지 않는다. 전형적인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을 체험한 것 같아 곧장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그나마 이혼이 쉬운 선택지는 아니겠지 정도가 최선이었다.

아빠는 홀로 가족이라는 형태의 유지비를 납부하고 있었다. 계속 밑빠진 독에 돈을 부었고 내가 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일손을 덜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의견을 피력했고 대학까지는 가겠다고 고집하여 4년 전액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하향 지원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학교 생활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다음 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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