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인사이트] MS 깃허브 재편이 예고하는 소프트웨어 대전환
‘AI 생산성 혁신’의 역설…잘 쓰는 조직 되려면
AI에 길들여지는 뇌…AX-HR방향성에 ‘경종’
콘텐츠실장 안경애
“분명 이전보다 훨씬 빨리, 더 많은 일의 결과물을 내는데 보람과 뿌듯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AI 덕분에 해내는 업무가 많은데 ‘서비스 장애로 못 쓰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든다.”
“분명 내가 작성한 보고서인데, 세부 내용을 묻는 질문 앞에서 당황스럽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생산성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성취감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미친 효율’에 놀라워하면서도 ‘내가 AI를 부리는 건지, AI에 끌려가는 건지’ 떨떠름함을 떨치기 어렵다.
2025년, 우리는 전례 없는 역설을 마주하고 있다.
AI가 가져다준 놀라운 생산성 혁신과 그 이면에서 진행되는 ‘지능의 외주화’ 현상 사이에서다.
그리고 이 역설은 AI 전환(AX)뿐 아니라 기업문화, 인사 전략과 관련해 조직에 근본적인 고민거리를 던진다.
숫자로 보는 AI 생산성 혁신
AI의 생산성 효과는 분명 놀랍다. 미 MIT와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포춘500대 소프트웨어 기업의 콘택트센터 직원 5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AI 도구를 사용한 그룹은 평균 14%의 생산성 향상을 보였다. 특히 저숙련 직원들은 34%의 생산성 향상 효과를 보였으며, 단 2개월 만에 6개월 경력자와 동등한 성과를 냈다.
경제학 최고 권위지인 미국경제학회지(QJE)에 올해 게재된 이 연구결과는 산업현장에서의 AI 도입이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대규모로 측정한 최초의 사례 중 하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액센츄어가 포춘100대 제조기업 중 한 곳과 진행한 연구에서도 동일한 패턴이 확인됐다. AI 기반 코딩 보조 도구인 ‘깃허브 코파일럿’을 사용한 약 4900명의 개발자는 주당 작업 결과물이 평균 26% 증가했다.
그런데 이 역시 콜센터 연구와 동일하게 신입과 저숙련자들의 생산성 향상 효과가 두드러졌다. 고경력 개발자에게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생산성 증가가 관찰되지 않았다.
이는 ‘AI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기존 경제학 패러다임을 뒤집는 결과다. AI가 저숙련 노동자의 역량을 높여 숙련도 차이를 줄이고 실력을 평준화하는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점점 더 복잡한 일을 해내는 AI
여기에다 AI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AI가 점점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구글의 제미나이 AI가 세계 수학 올림피아드 금메달 수준의 실력을 보였고, 텍스트는 물론 이미지와 영상까지 정교하게 생성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여기에다 올해 들어 추론(Reasoning) 기능이 도입되면서 AI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코파일럿처럼 우리가 익숙한 업무 환경에 생성형 AI가 자연스럽게 통합되면서, 이제 많은 업무를 말과 글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김주호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는 최근 열린 SERICEO 행사에서 “AI가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의 복잡도가 급속히 올라가고 있으며, 현재 추세로는 7개월마다 AI가 다룰 수 있는 업무 복잡성이 2배씩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뇌는 게을러지고 있다
문제는 화려함 뒤에 숨겨진 그림자다. MIT 미디어랩과 웰즐리대학 연구팀이 지난 6월 논문 공개 사이트(arXiv)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챗GPT를 주로 사용해 글을 쓴 사람들은 뇌 연결성이 현저히 약화되고 자신이 쓴 글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4개월간의 실험에서 54명의 대상자를 세 그룹으로 나누어 에세이를 작성하게 했다. 챗GPT 사용 그룹, 검색엔진 사용 그룹, 아무 도구도 사용하지 않는 그룹이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챗GPT 사용자들은 의미 처리, 인지 제어, 작업 기억과 관련된 뇌 영역의 연결성이 도구를 쓰지 않은 이들에 비해 최대 55%나 떨어졌다. 특히 이들은 자신이 쓴 에세이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고, 정확한 인용을 제시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에세이가 자신의 것이란 소유감도 약했다. 많은 참가자가 “절반만 내 것” 또는 “일부만 내 것”이라고 답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 현상이 AI를 사용하지 않을 때도 계속됐다는 점이다. 챗GPT에 의존했던 사람들은 도구 없이 글을 쓸 때도 신경 연결성이 약하고 어휘 사용에 편향이 나타났다.
이는 챗GPT 의존이 장기적으로 비판적 사고 능력과 창의성을 저해하고 ‘인지적 부채(Cognitive Debt)’를 만들어 냄을 보여준다. 인지적 부채는 AI 도구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뇌가 복잡한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아 인지능력이 점차 약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아무 도구도 안 쓴 그룹은 뇌 활성화 정도가 가장 강력했다. 이들은 자신이 쓴 에세이를 완벽하게 기억하는 한편 그 글이 확실히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색엔진 그룹은 그 중간 수준이었다.
이 연구는 AI 사용이 뇌 신경 활성도와 기억력 등에 미치는 영향을 처음으로 뇌파(EEG) 측정으로 살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설명 / MIT 미디어랩과 웰즐리대학의 연구에 참여한 피험자가 에세이를 쓰는 동안 헤드셋을 통해 뇌 활성화 정도를 측정하는 모습. (그림=MIT)
젊을수록 AI 과다사용 영향 크다
SBS 스위스 비즈니스 스쿨 마이클 게를리히 교수 연구진이 올해 1월 발표한 연구도 비슷한 결론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다양한 연령대와 교육 수준의 참가자 600여 명을 대상으로 AI 사용 빈도와 비판적 사고 능력을 측정했다. 그 결과 AI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 테스트에서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특히 추론이나 성찰이 필요한 작업에서 현상이 두드러졌다. 주목할 점은 연령별 차이다. 젊은 참가자들이 AI에 더 의존적이면서 동시에 비판적 사고능력이 낮았다.
게를리히 교수는 이 현상을 기존의 ‘구글 효과’가 진화한 형태로 분석했다. 검색엔진이 사람들의 정보 저장 방식을 바꾼 것처럼, AI는 추론과 분석 과정까지 대신 수행해 사용자들이 깊은 사고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알고리즘 편향이 사용자의 정보 노출을 제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AI 도구들이 사용자와의 이전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필터링하면서 기존 편견을 강화하고 다양한 관점에 노출될 기회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적 유연성과 확장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희망의 신호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암울하지만은 않다. MIT 연구에서 먼저 스스로 충분한 인지적 노력을 기울인 후 챗GPT를 사용한 그룹은 오히려 뇌 연결성이 증가하고 기억력이 회복됐다. 이는 AI 도구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인지 능력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SBS 스위스 비즈니스 스쿨 연구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적당한 AI 사용은 비판적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문제가 나타났다.
AI시대 조직 리스크 ‘인지 부채’
문제는 개인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최근 온라인 노동 플랫폼 ‘Upwork’가 미국, 영국 등 4개 국 직장인 2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직원의 77%는 AI 도입 후 업무량이 늘었다고 답했다. 리더 81%는 직원에게 더 많은 업무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AI가 가져다 준 생산성 향상을 리더들이 ‘더 많은 성과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로 오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도구로 2시간 만에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면 하루에 4배의 성과를 내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는 AI와 인간 모두 소모품이 된다는 것이다. 직원들은 AI에 의존해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만, 그 과정에서 깊은 사고나 창의적 성찰의 시간은 갖지 못한다.
또한 AI의 도움으로 단기적으로는 조직 생산성이 올라가지만, 구성원들의 장기적 성장 기회가 사라지고 주니어들이 역량을 쌓을 기회가 줄어들어 결국 조직의 잠재 성장률이 떨어진다.
거기에다 업무결과에 대해 자신이 한 일이라는 성취감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직원의 성취감과 자기 효능감이 떨어지면 조직의 경쟁력과 혁신 능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MIT 연구에서 보여준 ‘인지적 부채’가 개인 차원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라 조직 전체에서 누적되는 것이다.
‘AI 생산성 환상’도 심각한 문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가 빠르게 대량의 코드를 생성하지만, 검증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히려 제품의 안정성과 배포 성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개발자들이 AI 사용 시 작업 시간이 20% 더 소요되는 경우도 있었다. 개발자 대상 연구에서 AI 도입으로 ‘가치 있는 업무에 투입하는 시간’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AI를 잘 쓴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이러한 연구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AI는 인간의 인지 방식과 능력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즉, AI에 장기적으로 의존할 경우 개인의 지적 자율성과 탄력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순간순간의 편함을 추구하다 보면 어느새 인간이 AI에 중요한 일을 맡기고 그 결과를 이리저리 편집하고 이어 붙이는 ‘AI 하위 노동자’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그런 만큼 AI 시대의 진정한 승자는 AI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가장 현명하게 협력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직도 자유로울 수 없다.
AI를 ‘제대로 잘’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개인은 물론 조직과 사회가 깊이 들여다보고 공감대를 키워야 한다.
개인이 AI를 통제하고 이끄는 리더가 되려면 AI를 사용하기 전 먼저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 AI 결과물을 자신의 논리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정기적으로 AI 없이 창작하고 사고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AI가 제공한 정보와 논리를 의심하고 검증하는 비판적 자세도 필수다.
개인과 조직의 현명한 공존 전략
AI 시대에 강한 조직이 되려면 이런 생산성 역설을 이해하고 조직문화와 리더십을 설계해야 한다.
먼저 조직 내 AI 영향도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위험 조직과 영향받을 직군을 파악해야 한다. 또한 투자대비효과(ROI), 생산성 영향, 결과물 품질뿐만 아니라 구성원의 역량 변화까지 종합적인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단순한 생산성 지표를 넘어서는 평가 체계도 필요하다. AI 도움 없이도 수행할 수 있는 핵심 역량,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 비판적 사고력을 함께 측정하고 발전시키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저숙련자의 빠른 성장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놓치는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 동료와의 협업 경험, 실패로부터 얻는 지혜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김주호 교수는 특히 AI 활용 역량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검증 체계이며, AI가 빠르게 생성한 결과물을 체계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먼저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AI 문해력’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단순히 AI를 잘 활용하는 능력이 아니라, AI와 협력하되 자신의 사고력을 잃지 않는 능력, AI의 한계를 인식하고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능력, 그리고 AI가 줄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당장의 결정에 미래가 달렸다
AI 과의존 시 55% 뇌 연결성 감소는 분명한 경고 사인이다. 하지만 전략적 활용 그룹의 인지능력 향상은 희망적 신호이기도 하다.
문제는 시간이다. 인지적 습관은 한 번 굳어지면 되돌리기 힘들 수 있다. 지금 AI에 사고를 맡기는 습관이 굳어진다면, 10년 후에는 돌이킬 수 없을지 모른다.
반대로 지금 AI와 현명하게 협력하는 방법을 익힌다면 그야 말로 AI와 인류의 진정한 ‘공진화’가 가능할 것이다.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을 더 많은 업무 처리가 아닌, 더 창의적이고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조직이 AI 시대 혁신을 이끌 것이 분명하다.
기술에 끌려가지 않고 기술을 끌고 가는 사람을 기르고, 그들이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문화에 투자하는 조직이 AI시대의 승자가 될 것이다.
결국 기술의 시대에도 답은 ‘사람’과 ‘문화’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