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인사이트] AX. 갇힐 것인가, 담을 허물 것인가

AX. 갇힐 것인가, 담을 허물 것인가

ERP와 AI 에이전트가 만드는 지능형 플랫폼 혁명

 

콘텐츠실장 안경애

 

기업 DNA 근본적 재편

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기업들은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존재 방식 자체를 재정의해야 하는 전환점에 서 있다. 지금까지 기업의 IT 시스템은 경영, 연구개발, 제조, 고객관리, 공급망관리 등 각각의 영역이 독립적으로 작동하면서, 정보는 제한적이고 느린 통로를 통해서만 교환되었다.

하지만 AI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있다. AI를 중심으로 기업의 신경망을 완전히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산업혁명이 수공업에서 대량생산으로 생산 방식을 바꾼 것처럼, 기업 운영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혁명적 전환이다.

 

이 가운데 기업들은 중대한 질문에 직면하고 있다. AI를 기존 IT 시스템 위에 단순히 얹을 것인가, 아니면 AI를 중심으로 전체 시스템을 재설계할 것인가. 어느 쪽이든 쉬운 길은 아니다. 제각기 담을 쌓고 분절되어 있던 기존 IT 시스템에 AI를 덧씌우는 것은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선 가치를 창출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AI를 계기로 전면적인 시스템 재설계를 시도하는 것 또한 재원과 인력 측면에서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ERP 진화: 백본에서 두뇌로

이러한 고민에 대한 명확한 답은 이미 기업 운영의 중추인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과 AI를 연결하는 것에 있다. ERP는 이미 공급망 관리, 고객 관리, 협업, 제조 실행 시스템(MES) 등 기업 내 업무 및 현장 시스템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생성형 AI와 AI 에이전트 기술이 도입되면서 AI 네이티브 ERP로 진화하고 있다. 이 ERP와 AI의 결합은 AI 시대 기업 IT 시스템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료하게 제시한다.

 

 

ERP 한계, AI 돌파구를 찾다

전통적인 ERP는 기업의 백본으로서 충실한 역할을 해왔지만, 구조적 경직성과 복잡성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가트너는 2027년까지 신규 ERP 프로젝트의 70% 이상이 초기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기업이 ERP에 맞춰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 ‘커스터마이징 제로’ 정책으로 인한 업무 프로세스의 강제 표준화, 그리고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지연이다.

하지만 AI는 이러한 ERP의 DNA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AI 전환(AX)은 단순히 디지털 전환(DX)의 연장선을 넘어선다. DX가 기존 프로세스의 디지털화나 새로운 디지털 채널 구축에 초점을 맞췄다면, AX는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AI를 중심으로 비즈니스 로직, 의사결정 방식, 나아가 기업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도구의 추가가 아닌, 지능이 기업의 핵심에 내재화되는 변혁을 의미한다.

 

AX 물결 달라지는 ERP 위상

이러한 차이는 ERP의 위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 ERP가 수동적인 기록 관리 및 프로세스 강제 시스템이었다면, AI 시대의 ERP는 통찰력을 만들어내고 행동을 권고하며, 궁극적으로는 자율적으로 실행하는 능동적이고 지능적인 ‘두뇌’ 혹은 ‘운영 인텔리전스 허브’로 진화하고 있다.

AI와 ERP의 결합은 단순한 기술적 통합을 넘어 기업의 철학, 운영 구조, 인재 활용 방식까지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전환의 시작점이다.

 

 

AI 에이전트, 디지털 워커의 등장

AI와 ERP 결합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AI 에이전트의 등장이다. 이들은 단순한 자동화 도구를 넘어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디지털 워커’로 진화하고 있다.

전통적 자동화 시스템이 미리 정의된 규칙을 기반으로 단순 반복 작업을 처리했다면 AI에이전트 시스템은 상황 인지 기반 동적 판단을 바탕으로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다 자율적 학습 및 개선과 창의적인 솔루션 제안까지 해낸다.

 

해체되는 시스템 경계

더 나아가 AI 에이전트는 기존 시스템의 사일로를 해체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재무, 인사, 생산, 물류 등 부서별로 분리되어 있던 시스템들이 AI 에이전트를 매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지능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고객 서비스 AI 에이전트는 단순히 문의 응답을 넘어선다. △고객 히스토리 분석을 통한 개인화된 서비스 제공 △재고 시스템과 연동하여 실시간 상품 정보 제공 △물류 시스템과 연계하여 배송 최적화 제안 △재무 시스템과 연동하여 결제 및 환불 자동 처리 등과 같은 통합적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미 시작된 진화

AI가 ERP 시스템에 더욱 깊숙이 통합되면 일하는 방식과 경영의 모습은 극적으로 변할 것이다. 자율 의사결정, AI 에이전트, 초개인화 같은 변화가 기업의 일하는 방식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딜로이트는 AI 기반 ERP의 진화를 4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자동화)는 반복적이고 수작업이 많은 업무의 자동화다. 2단계(예측)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미래 예측, 3단계(추천)는 최적의 행동 방안 제시, 4단계(자율 운영)는 AI가 스스로 실행하는 완전 자율 시스템이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이 1~2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선도 기업들은 이미 3~4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각 단계는 단순한 기술적 발전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과 조직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수반한다.

 

오케스트레이터로서의 AI ERP

AI는 ERP를 단순히 관리와 통합의 도구에서, 실제 실행을 하는 능동적이고 지능적인 플랫폼으로 변화시킬 전망이다.

전통적 ERP가 다양한 시스템을 단순히 연결하는 ‘통합자’ 역할을 했다면, AI 기반 ERP는 전체 비즈니스 생태계를 지능적으로 조율하는 ‘오케스트레이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오케스트레이터로서의 AI ERP는 △실시간 상황 인지 △동적 자원 배분 △예측적 의사결정 △자율적 실행 및 최적화를 갖출 것이다.

이러한 진화는 온갖 구획과 담으로 분절되어 있던 전통 IT 시스템의 경계를 허물 것이다. ERP는 여러 애플리케이션 중 하나가 아니라, 공급망 관리, 고객 관리, 제조 실행 등 각종 전문 IT 시스템을 지능적으로 연결하고, 학습하며, 작업을 지시하는 중앙 ‘조정자’이자 ‘데이터 허브’가 된다. ERP가 더 이상 ‘기능의 집합체’가 아닌, ‘지능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데이터 거버넌스: 지능형 플랫폼의 기초

AI 기반 ERP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상당한 이점을 제공하지만, 여러 과제가 있다.

우선 데이터 품질과 거버넌스 확보가 필수적이다. AI의 효과는 데이터 품질에 크게 좌우되므로, 강력한 데이터 거버넌스 프레임워크 구축이 필요하다. 데이터 사일로를 해체하고, 일관된 형식으로 데이터를 관리하며, 보안과 규정 준수를 보장해야 한다. AI 시대에는 데이터가 운영의 부산물에서 벗어나 모든 지능형 역량을 구동하는 근본적인 자산으로 변모하게 된다. 데이터 품질이 좋지 않으면 AI의 통찰력과 예측의 정확성을 직접적으로 훼손해 잘못된 의사결정과 잠재적으로 상당한 사업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데이터 전략이 경영진의 최고 우선순위로 격상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기존 ERP를 유지하면서 AI를 별도로 도입하여 연결할 것인지, 아니면 AI 네이티브로 진화한 ERP로 업그레이드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인 의사결정도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기술적 측면에만 집중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명확한 ROI 지표 설정과 단계별 실행 계획을 포함한 비즈니스 목표와 연결된 전략적 접근이 중요하다.

 

성공적인 AI 네이티브 ERP 전환

AI 네이티브 ERP로의 전환은 한 번에 이루어질 수 없다.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1단계로 데이터, 인프라, 조직역량 등을 갖추고 기본 AI기능을 도입하는 기반 구축 과정이 있어야 한다. 2단계는 파일럿 단계다. 특정 영역에서 AI 기능을 구현해 보고 성과 측정과 개선, 사용자 피드백 수집을 거쳐 확장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음은 전면 확산 단계다.

전사적 AI 기능 배포와 시스템 간 통합 완성, 프로세스 재설계, 조직 구조 최적화를 통해 조직 전체에 AI 네이티브 ERP가 스며드는 과정이다. 이후에는 지속적인 학습과 개선, 혁신문화 정착, 위험 관리 등을 통해 기술과 조직을 최적화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단단하게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은 최고경영진의 강력한 의지와 지원, 변화를 수용하는 조직 문화, 내부 AI 기술 역량 확보다. 고품질 데이터 확보와 보안투자도 필수다.

 

이미 열리고 있는 미래

AI는 이미 기업 운영의 모든 담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부서 간 장벽, 시스템 간 경계, 인간과 기계의 구분선이 모두 허물어지고 있다.

AI와 ERP의 융합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기업 생태계의 근본적 재편을 의미한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 가장 큰 변화로, 기업의 존재 방식과 가치 창출 메커니즘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성공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기술적 접근을 넘어 조직, 문화, 인재 등 모든 영역에서의 총체적 변화가 필요하다. 이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늦을수록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이 크다.

미래의 기업은 AI와 인간이 협력하는 지능형 조직이 될 것이다. 이러한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만이 AI 시대의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AI 융합은 일시적인 추세가 아니라 ERP의 영구적인 변화다. AI와 ERP를 융합하면 AI의 파워를 기업 중추신경부터 말초조직까지 가장 효율적으로 퍼뜨리면서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와 ERP가 만들어내는 지능형 플랫폼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그 변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용기다.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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