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永-Way 단상 58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기리며…” (2024.12.02)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기리며…”

2024.12.02

피터 드러커 교수의 명저 ‘매니지먼트’에 “오늘날(1970년대) 일본이 세계 경제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된 것은 20세기 초반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철학과 행동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경영자의 본질은 ‘부’도 아니고 ‘지위’도 아닌, ‘책임감’이라는 기본 통찰이 실현되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벌써 100년도 더 된 인물을 세계적인 경영학자가 60년이 지나서 극찬을 했다는 것에 궁금함이 일어 관련 책들을 읽어 보았습니다. 역시 시부사와는 일생을 끊임없이 도전하며 더 옳은 일을 찾아 아흔 한 살로 죽기 직전까지 열심히 활동했던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스물 세 살 때 사촌 3명과 구시대의 막부(일본 정부) 타도 계획을 세우고 군자금을 모으고 무기를 구입해 70여 명의 추종자까지 모았다가, ‘막부 타도’ 운운하며 왕래했던 서신이 발견되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귀인의 도움으로 감옥에 가지 않고,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 집안의 가신으로 들어 들어가게 됩니다. 이 곳에서 요시노부의 동생 아키타케를 모시고 파리 유학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비록 2년이 채 안 되는 유학 기간이었지만 마침 ‘파리만국박람회’에 참여한 유럽 여러 국가의 발전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유럽만큼 일본을 발전시키고 싶다’란 의지를 불태우며 상투를 자르고 양복으로 갈아 입는 변신을 꾀했습니다. ‘유럽 문명 개화의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화두를 부여잡고 끊임없이 찾아 다니며 견문을 넓힌 결과 ‘주식회사, 은행제도, 산업설비, 자본주의 시스템’이란 답을 얻었습니다.

귀국 후 ‘은행 설립과 철도 건설 그리고 기업 설립’에 매진하여, 일본 최초의 제일국립은행(1872), 오지제지(1873), 도쿄해상화재(1879), 도쿄가스(1885), 도큐전철, 지치부시멘트, 기린맥주, 도요방적, 제일제당 등 500 여 개의 회사를 설립해서 일본 근대화를 이끄는 산업 발전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을사보호 조약이 체결되기 전 대한제국에 경인철도합자회사를 설립하여 1900년에 경인선을,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여 1904년 경부선을 완공한 사장으로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었습니다. 특히 경부선 부설 시 일본군과 일본정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공사 기간과 예산 초과에도 불구하고, 대륙 철도와 직통 연결이 가능한 표준궤를 선택해 부산에서 유럽까지 철도로 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시부사와는 기업 설립 뿐만 아니라 히도쓰바시대학, 와세다대학, 도쿄경제대학, 도시샤대학 등의 교육기관과 일본적십자사, 나병 예방협회, 성누가 국제병원 등 600여 개의 사회공헌 기관의 설립을 이끌었고 고아원 원장으로 근무하는 등의 실천을 보임으로써 일본 사회의 변혁을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시부사와는 노익장으로 76세 되던 해에 ‘논어와 주판’이라는 저서를 써서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 활동과 윤리 도덕을 강조하는 논어는 서로 배치되지 않는다며, 올바른 상업을 중시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올바른 길에 대한 가르침’을 후손들한테 남겨 주었습니다.

저서 중에 “나는 평생을 노력하는 자세로 살아 왔는데, 실제로 단 하루도 직무를 게을리한 적이 없습니다. … 나처럼 일흔이 넘은 노인도 한순간도 게을리 보내지 않는데, 젊은 사람들은 더욱 더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 나태에서 좋은 결과가 생기는 경우는 결코 없다…노력하는 열정이 강한 나라일수록 국력이 발전한다.”란 구절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맞습니다, 노력하는 열정이 강한 기업일수록 지속 성장이 가능한 것입니다.

Y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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