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永-Way 단상 56 “성웅 이순신 장군을 기리며…” (2024.10.02)

“성웅 이순신 장군을 기리며…”
2024.10.02
지난 추석 연휴부터 어제까지 정찬주 작가의 7권짜리 대하소설 ‘이순신의 7년’을 보았습니다. 이전에도 임진왜란에 관련된 책이나 소설들을 봤었으나 정 작가의 사료에 근거한 실사적 작품 전개와 감칠 맛나는 이순신 장군의 충청도 사투리가 훨씬 더 가슴에 와닿게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어제 국군의 날 행진에서 선보인 그 많은 무기들도 임진왜란 중 이순신을 모함하고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 같은 리더를 만나면 칠천량 해전에서처럼 무기와 군사 모두가 하루아침에 궤멸될 수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한번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한양을 버리고 도주했고,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로 망명하려고 했던 비겁하고 야비한 왕 선조가 원균의 모함을 기회로 이순신 장군을 죽이려고 하옥하고 고문을 무자비하게 자행함으로써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재침 전략 ‘호남 정벌과 이순신 제거’를 성공시켜 줄 뻔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노재상 정탁의 목숨을 걸고 구명하는 상소 덕분에 백의종군의 기회를 맞았고, 원균의 사망으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가 된 덕분에 경상우수사 배설이 칠천량 해전에서 도망하면서 빼 온 12 척의 전선으로 기적과 같이 새롭게 전라도 수군을 재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재건의 과정이야말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아니었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선조가 통제사 발령 후 한 달도 안 돼서 수군을 폐하고 육군으로 합류하라는 어명을 내려 보냈겠습니까? 난생 처음으로 어명을 따르지 않고 ‘신에게 아직 배 12척이 남아 있습니다’란 장계를 올려 보내고 수군 재건 작업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그 유명한 명량(울들목)해전의 성공과 왜군을 완전히 쫓아버린 그러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친 노량해전의 성공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임금의 신하가 되는 대신 백성들의 신하가 되겠다’는 구국의 일념으로 단 한 차례의 해전도 패하지 않고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적진포, 사천, 당포, 율포, 한산도, 안골포, 부산해전의 임진왜란과 양대 해전의 정유재란까지 장군이 아니었으면 한반도 전부가 왜군한테 점령당할 뻔했던 참사를 막아 준 구국의 영웅이자 그야말로 성인으로 일컬어질 수 있는 성웅이셨습니다.
1904년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도고 헤이하치로 원수는 나폴레옹의 연합함대를 무찌른 영국의 구국 영웅 넬슨 제독과 자신이 비교 될 수는 있어도 이순신 장군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을 장군 사후 300 여 년이 지난 후에 남겼습니다.
당시 백성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고 살릴 수 있는 지도자는 이순신 장군 한 사람이라고 장군이 가는 곳마다 그를 쫓아 다니는 피난민 원주민은 물론 재장장이, 어부, 목수, 장돌뱅이들이 있었기에 통제사 재임명 후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3개월 만에 30 여 척의 전선을 건조하고, 모병을 하고, 무기를 만들고 군량미를 비축할 수 있었기에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노량해전까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장군의 모든 해전에서의 전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부하 장수들에 대한 개방적 리더십과 준비 자세는 오늘날에 더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해전을 앞두고 반드시 부하들과 논의하고, 부하들이 항상 소신껏 자신의 주장을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하고, 평상 시에도 철저한 훈련과 경계(탐망)를 실천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비즈니스의 성공도 이 두가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이순신 장군이 계셨기에 우리 모두는 자랑스럽게 살 수 있으며 한편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느끼며 산다고 생각합니다.
Y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