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6회 영림원CEO포럼] 조직문화 산책: 조직문화, 쉽게 풀어 보기

“좋은 조직 문화 어떻게 만들까?

한상엽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조직 문화 산책: 조직 문화, 쉽게 풀어보기’ 주제 강연

한상엽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이 5일, 206회 영림원CEO포럼에서 ‘조직문화 산책: 조직문화, 쉽게 풀어보기’를 주제로 강연했다. 한상엽 연구위원은 “좋은 조직 문화가 있으면 위기가 왔을 때 극복할 힘이 된다”며 조직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드는데 정답은 없다. 체계적으로 전면적으로 바꾸려고 하지 말고 꾸준히 만들어 가야한다. 좋은 조직 문화는 구성원들에게 명확한 시그널을 줄 수 있는 조직이다”라고 밝혔다. 다음은 강연 내용

◆  “조직 문화는 어느 조직에나 존재”

‘냄비 속 개구리’라는 얘기가 있다. 뜨거운 물에 들어간 개구리는 뛰어나와서 살지만, 물이 서서히 끓으면 개구리는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말이다. 1996년에 출판된 로버트 퀸의 <딥 체인지>에서 나온 이 말은 변화를 감지 못한 개구리는 서서히 죽어가지만 변화를 감지하고 과감히 뛰어 나온 개구리는 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생물학자들은 “끓는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바로 죽는다”라며, 사람들이 왜 이런 거짓말을 믿는지에 대한 논문을 내놓기도 했다.

이 얘기를 꺼낸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약간의 삐딱함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의도에서이다. 리더십에 관한 정의는 학자 수만큼 많다. 조직 문화에 대한 정의도 마찬가지다. 조직 문화에 대한 이론 체계를 정립한 인물로, 조직 문화에 대한 강의에서 꼭 나오는 에드거 샤인이라는 학자는 조직 문화는 3개의 층으로 구성돼 있다고 했다. 이런 개념을 보면 머리가 어지럽고 조직 문화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다. 어쨌든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좋은 문화든 나쁜 문화든 그리고 의도적으로 관리하든 관리하지 않든 모든 조직에는 조직 문화가 존재한다

아까 말한 로버트 퀸과 킴 캐머런이란 학자는 1999년 같이 쓴 책 <Diagnosing and Changing Organizational Culture>에서 조직의 변화에는 구조 변화와 문화 변화라는 두가지가 있다고 했다. 구조 변화는 눈에 잘 보이는 조직 구조나 제도, 시스템 등 하드한 측면의 변화로 새로운 평가 및 보상 제도 도입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문화 변화는 조직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기본 가치, 비전, 행동양식, 신념 등 소프트한 측면의 변화이다.

구조 변화는 무엇을 바꾸었는지가 잘 보이기 때문에 많은 경영진들이 이에 집중한다. 하지만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흔히 하는 말로 제도나 시스템은 일종의 도구이다. 도구가 있으면 일을 더 잘 할 수 있지만 도구가 없이도 일은 할 수 있다. 제도나 시스템을 바꾸었어도 문화적 뒷받침이 없으면 변질된 모습이 나타난다. 이것을 게이밍이라고 얘기하는데 유명한 사례가 있다. 미국 경찰들이 범죄 예방을 위해 시내 순찰을 하는데 순찰은 안 하고 차 세워놓고 쉬니까 이것을 막으려고 하루에 이 정도 거리는 순찰해야 한다는 주행 기록에 관한 평가 지표를 만들어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경찰들이 어떻게 했냐 하면 아침에 출근해 외곽 도로로 나가서 30분 정도를 밟고 돌아와서 도넛 가게에서 커피 마시면서 쉬었다.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이런 사례로 또 코브라 효과가 있다. 인도가 영국 식민지일 때 식민지 정부가 보기에 인도에 코브라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식민지 정부는 코브라를 잡아오면 포상을 해줬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벌어졌냐 하면 사람들이 코브라를 잡으러 다니지 않고 집에서 키우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안 식민지 정부는 포상금을 끊어 버렸다. 그러자 인도 사람들은 키우던 코브라를 다 풀어줬고 이 때문에 코브라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이런 게이밍 사례는 조직을 바꿔보겠다고 제도를 바꿨지만 사람들이 그 제도의 빈틈을 찾아서 악용하면 효과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만큼 조직 변화에서 문화 변화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 “좋은 조직 문화가 있으면 위기가 왔을 때 극복할 힘이 된다”

조직 문화가 경영 성과에 도움이 되느냐는 얘기가 많은데 실제로 그런 연구가 많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좋은 조직 문화를 갖고 있으면 회사 성과가 좋아지고, 회사 성과가 좋으면 그 성과를 구성원에게 베풀어 조직 문화가 좋아지는 식의 선순환 관계가 형성된다고 얘기한다. 개인적으로는 조직 문화가 좋으면 회사 성과가 좋아진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회사 성과는 매우 다양한 요인들의 종합적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다만 좋은 조직 문화가 있으면 위기가 왔을 때 극복할 힘은 된다. 당장은 쥐어짜기로 성과를 내더라도 조직 문화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면 정말 위기가 닥쳐왔을 때 구성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좀 부드러운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노래를 못하면 음치라고 한다. 음치의 사전적 정의는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음치인 이유는 소리를 못 내서가 아니라 자기 소리를 듣지 못해서이다. 또 음치의 특징은 반주 소리를 못 듣고 자기 소리만 낸다. 반주 없이 노래하면 음치가 아닌 것 같지만 반주만 있으면 맞추지 못한다. 그래서 음치에서 벗어나려면 소리 내기보다는 소리 듣기가 먼저이다. 자기 소리를 정확히 듣는 것아 음치 탈출의 출발점이다.

이 얘기를 한 까닭은 조직 문화를 바꿔가는데 있어 첫 번째가 우리 회사가 어떤 상황인가를 알아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다. 아기가 울면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기저귀가 젖었거나 배탈이 났거나 배가 고파서 등등. 이 원인들을 잘 분석하면 해결책이 나온다. 그런데 이 원인 진단을 잘못하면 이상한 해법을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원인 진단을 잘하는 게 제일 중요하고 원인에 따라서 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해결책이 효과가 없다면 원인을 잘못 짚었거나 문제 정의가 잘못된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먼저 문제를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또 문제를 문제가 아니라고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이다. 아기가 우는데도 ‘애들은 원래 우는 거야’라고 하면서 그냥 무시하는 식이다. 문제를 푸는 두 번째 방법은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원인의 영향력을 약간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학문에서는 응급처치라고 하는데 애한테 사탕을 주거나 먹을 것을 주면 일단 울음을 멈춘다. 조직에서 뭔가 하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은 이 정도 수준인 것 같다.

문제 해결의 마지막 방법은 원인의 영향력을 완화하는 동시에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는 것이다. 아기가 울 때 엄마를 데려오면 된다. 엄마를 데려오면 애는 일단 우는 걸 멈춘다. 그 엄마가 본인의 경험과 애정을 가지고 얘를 살펴보면서 왜 애가 우는지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조치를 취한다. 기업에서 이 엄마같은 존재가 경영진이다. 조직에 대한 애정과 지금까지 조직에서의 생활했던 경험을 가지고 문제 원인을 찾아내고 개선할 수 있는 사람은 경영진이다.

◆ 조직 문화의 진단 도구 ‘서베이와 인터뷰’

조직 문화를 진단하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서베이와 인터뷰가 있다.

서베이는 설문지를 뿌려 회사의 조직 문화에 대한 의견을 파악하는 기업으로, 빠른 시간 안에 다수의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가 있고, 익명성이 보장된다면비교적 솔직한 응답을 들을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밑바닥 정서 같은 구체적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인터뷰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가 힘들기 때문에 일부의 의견만 듣는 단점이 있지만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서베이는 설문지를 만들고 이어 설문을 실시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그 절차가 길고 복잡해 보인다. 그런데 요즘은 AI 시대다. 설문지 구성이 아주 편해졌다. 자체적으로 설문을 개발할 필요가 없다. 인터넷 검색만으로 다양한 설문지를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생성형 AI에게 “우리 회사에 이런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진단해 줄 설문을 만들어줘”하면 설문을 만들어준다. 설문 실시 과정에서도 설문조사 플랫폼 업체를 활용하면 설문 실시 및 분석의 대부분을 손쉽게 진행할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설문 결과에서 시사점을 뽑는 것이다. 이것도 AI한테 물어보면 해준다.

서베이는 가급적 조직의 현실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나, 서베이라는 근본 속성상 설문 응답 결과가 조직의 실제 현실과는 다를 수 있다. 경영 성과가 좋아서 보너스가 나오면 기분이 좋아서 서베이 점수가 올라간다. 또 기대 수준에 따라 동일한 현상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점수를 부여할 수 있다. 기대 수준이 높을수록 낮은 점수를 준다. 그리고 가능하면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자신의 상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익명성이 보장되지않을 경우에는 문제가 생길 걸 두려워해서 일부로 긍정적으로 평가를 한다. 마지막으로 회사의 실제 상황에 대한 정보 부족이나 잘못된 정보도 설문조사에서 이상한 결과가 나오는 이유다.

설문은 매우 편안한 도구이지만 정확한 도구는 아니다. 반드시 추가 인터뷰와 사실 확인 등 검증을 해야한다. 그렇지만 인식은 중요하다. <초우량 기업의 조건>이라는 유명한 책을 펴낸 경영학자 톰 피터스는 경영진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다가 “그거 사람들의 인식이 잘못된 거 아닌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라는 질문을 받자 “그 인식이 전부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전부다”라고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화면에 보이는 3개의 사진은 로고가 가슴에 새겨져 있는 옷이다. 이 옷 3개를 보는 사람들이 인식은 다르다. 맨 왼쪽에 있는 옷은 회사 옷이니 회사에서만 입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 가운데 있는 옷은 특정 조직을 좋아하는 팬이라는 소속감을 불러일으켜 주면서 약간의 패션처럼 인식이 된다. 맨 오른쪽의 내셔널지오그래픽이라는 특정 브랜드를 보면서는 특정 조직이 아니라 패션이라고 생각을 한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걸 봤는데 미국 사람들한테 맨 오른쪽 옷을 보여주니 맨 왼쪽처럼 인식한다는 내용이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옷을 만들지 않고 한국에서만 만들어 파는 옷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국 사람들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써있는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내셔널지오그래픽 직원으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똑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얘기다.

서베이를 처음 접해본 경영진들의 반응은 암 환자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거의 비슷하다. 첫 번째는 “이 결과를 못 믿겠다. 제대로 조사한 것 맞나?”라며 부인한다. 두 번째는 “직원들의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며 화를 낸다. 그 다음에는 현실과 어느 정도 협상을 한다. “그래 일부분은 인정하겠다.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니 곧 나아질 거다”라는 반응이다. 마지막에 “사람들이 이렇게 인식한다면 내가 책임을 지겠다. 어떻게 해야할지 알려달라”고 수용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냐면 경영진들이 조직 밑바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기가 쉽지 않아서이다. 서베이 결과를 놓고 토의할 때 △가설적 설명을 제공할 것 △경청과 받아쓰기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이지 말 것 △성급하지 말 것 등을 추천한다. 특히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지 말아야 한다. 또 ‘바로 고치겠다’식의 약속을 함부로 하면 안된다. 선의를 갖고 있더라도 ‘우리 같이 바꿔보자’는 정도에서 얘기하는 게 좋다.

◆ “인터뷰만으로 조직 문화를 바꿀 수 있다”

조직 문화 진단의 또다른 수단은 인터뷰이다. ‘인터뷰 ABC’라는 게 있다. 현재의 조직 문화 상태인 ‘현상(Behavior)’, 이 현상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Consequence)’, 그리고 현재 조직 문화를 만들어낸 ‘원인(Antecedent)’을 파악하는 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현상을 하나 찾으면 그 원인을 찾고 그 찾은 원인을 다시 현상 자리에 갖다 놓고 다시 원인을 찾는 식으로 계속 파고 들어간다.

그럼 인터뷰만으로 조직 문화를 바꿀 수 있는지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겠다.

‘USS 벤폴드’라는 배는 미국 해군 내에서 최악의 배로 유명해서 병사들이 가장 타기 싫어했던 배였다. 1997년에 이 배의 함장으로 부임한 마이클 에보라소프는 2년의 임기 동안 가만히 있어도 진급할 수 있었지만 그러면 안되겠다 싶어 하루에 5명씩 310명의 전체 승무원과 일대일 인터뷰를 직접 했다. 그가 던진 핵심 질문은 3개로 “벤폴드 함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가장 싫어하는 것은? 할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겠는가?”였다.

인터뷰를 통해 A와 B 목록을 작성했다. A 목록은 누가 봐도 중요한 미션과 관련된 내용이었으며, B 목록은 반복적인 지루한 작업에 관한 내용이었다. 마이클 에보라소프 함장은 주로 B 목록의 해결에 집중해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뒀다. 예를 들면 배에는 나사나 볼트가 많았는데 녹이 자주 슬어 1년에 6번~7번씩 녹을 다 벗겨내고 페인트칠 작업을 해야했다. 이 일이 너무 힘들다고 얘기하니까 녹이 좀 덜 스는 스테인레스로 다 바꿨다. 그러자 1년에 한번만 그 작업을 하면 됐다. 다른 배에서도 이걸 받아들여 지금 미국 군함에 쓰이는 나사나 볼트는 대부분 스테인레스로 바뀌었다. 이 사례를 두고 병사들이 좋은 사람들이어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객관적 지표로는 병사들의 대부분이 사회 하층 출신이었다.

진단을 해보면 문제들이 많이 나오는데 어떤 문제를 먼저 풀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때 선택 기준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첫 번째, 문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이다. 결과가 별로 심각하지 않다면 후순위로 미뤄도 된다. 두 번째는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가이다. 어쩌다 한 번 발생하는 것이라면 우연이지만 자주 발생한다는 것은 조직의 제도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조직 문화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꿔야 한다. 세 번째, 어쩌다 한 번 발생하는데 한 번 발생하면 심각한 타격을 주는가이다. 이런 것은 꼭 고쳐야 한다.

또 진단을 통해 모아진 불만에 대해서는 회사가 잡아야할 사람의 불만인가 아니면 이직해준다면 고마울 사람의 불만인가를 잘 판단해야 한다. 이직해준다면 고마울 사람의 불만을 자꾸 들어주면 잡아야 할 사람이 나가게 된다. 그리고 제도적인 결함의 문제인가 아니면 원칙대로 운영하지 않아서 문제인가 아니면 일부 소수가 제도를 악용하는 것인가를 살펴봐야 한다.

◆ 최근 조직 문화 이슈…‘열심히 일하지 않는 MZ세대?’

최근 조직 문화 이슈를 얘기하면 MZ세대는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2022년 하반기부터 ‘조용한 사직’이 1년 정도 유행했다. 사람들은 MZ세대가 개인주의적이고, 워라밸을 이야기하며 최소한의 일만 하며, 승진도 안하려 하며,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낮고, 참을성이 없으며, 마음에 안들면 바로 이직한다며 불만들을 얘기하는데 MZ세대의 업무 몰입 수준이 지금 갑자기 떨어진 것은 아니다.

과거의 고성장 시대에는 기업의 성공이 곧 개인의 성공과 일치했다. 회사가 성장하면 그 안에서 승진하거나 보상이 올라가니 당연히 회사에 충성했다. 그런데 지금은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다. 회사의 매출은 증가해도 승진해서 갈 만한 자리는 늘지 않는다. 그러니까 회사 내에서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생각을 못한다. 그리고 회사 밖에는 리스크는 크지만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도 코인이나 주식 투자로 월급 이상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 그래서 지금은 근로 소득이 자본 소득을 따라가기가 어려운 세상이 됐다.

또 계약적 몰입 관계라고 해서 회사에서 받는 만큼만 일하겠다는 생각이 많이 확산됐다. 그렇다고 자기 업무를 대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딱 거기까지’만 하려고 한다. 한국에서 HR은 좋은 사람 뽑아서 잘 육성해 잘 데리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면 안된다. 이 사람이 있는 동안 일 잘하고 개인도 성장하고 회사도 성과 내고 혹시 나가더라도 우리에게 우호적인 사람이 되고 필요한 시점이 되면 다시 일을 같이하는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회사에 헌신하는 구성원이라는 암묵적 가정을 버려야 한다.

◆ “구성원들에게 명확한 시그널을 주는 것이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든다”

먼저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를 살펴보자. 첫 번째, 생물학에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최소량의 법칙은 식물 성장에 있어 아주 소량으로 존재하는 성분이 성장을 결정한다는 이론이다. 이를테면 질소, 인산 등 영양소가 아무리 풍부해도 칼슘 하나가 부족하면 식물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조직 문화도 이와 마찬가지다. 가장 낮은 수준의 요소가 전체 조직 문화의 수준을 결정짓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들려면 기본적으로 모든 요소들이 일정 수준 이상 갖춰져야 한다.

또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들기는 어렵지만 망가뜨리는 것은 매우 쉽다. 조직 문화 만들기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고 그 과정이 순탄하지도 않다. 꾸준히 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게 조직 문화이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합리적이며 이성적으로 반응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지금 좋은 조직 문화 만들기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빠진 질문이 하나 있다. 과연 좋은 조직 문화란 무엇일까?이다. 조직 문화를 얘기할 때 대표적으로 나오는 기업들이 있다.

첫 번째가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로 ‘펀 경영’으로 유명하며, 두 번째 미국 온라인 신발 쇼핑몰인 자포스는 ‘홀라크라시’라는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자포스의 CEO가 직원들에게 이 자율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가라는 메일을 쓴 적이 있는데 13%가 나갔다고 한다. 세 번째 넷플릭스는 기업 문화로 ‘규칙이 없는 게 규칙이다’를 표방하고 있는데 국내 대기업 출신으로 넷플릭스에 들어간 사람으로부터 “달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적응하기 힘들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네 번째 아마존은 ‘데이 원’이라는 기업 문화로 유명한데 마치 정글처럼 개인의 이기심을 최대한 자극해서 성과를 내고 올라갈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다섯 번째 화웨이는 미국이 그렇게 때려도 살아남아 있는 기업으로 이 회사의 기업 문화는 ‘늑대 문화’로 불린다. 한국에서도 방송된 적이 있는데 밤 12시에도 사무실 불이 켜져 있고 그때 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화웨이의 평균 임금은 국내의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평균 임금보다 훨씬 높다. 1억원 넘게 받는 사람들아 절반 이상이다. 여섯 번째 음악 스트리밍 업체인 스포티파이는 애자일 조직 운영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뤄냈다.

이 가운데 어디가 가장 좋은 조직 문화일까? 정답은 없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어느 기업의 조직 문화가 좋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가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넷플릭스나 자포스의 모델을 도입해 유지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은 거의 없다. 단 심리적 계약이라는 개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마존에는 구성원들이 어떻게든 성과를 내면 많은 보상을 해주는 시그널이 명확하다. 비록 정글같은 문화있지만 이런 기업에서 일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아마존이 좋은 조직 문화이다. 넷플릭스처럼 규칙 없는 데서 일하지는 못하겠고 누가 시키면 그것만 하겠다는 사람에게 넷플릭스는 좋은 조직 문화가 아니다.

◆ 조직 문화 명문화한 ‘컬처북’ 제작 두가지 방식

조직 문화를 만들고 나면 조직 문화를 명문화한 ‘컬처북’ 또는 ‘컬처덱’을 만든다. 컬처북을 만드는데는 두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톱다운 방식으로, 창업자 혹은 최고 경영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문화상을 정리하는 것이다. 창업자 은퇴 이후에도 창업 정신을 이어가려고 하거나 새로운 경영진이 자신의 경영 구상을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혹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반영하는 경우 적합한 방식이다. 경영진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명확성이 높고 비교적 빠르게 정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하나는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창업자나 최고경영자의 생각과 구성원들의 생각을 같이 담아 정리하는 것이다. 보통 톱에서 큰 방향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구성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구성원의 참여로 공감대 형성이나 실천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도요타 웨이’는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라 유명해진 도요타를 많은 곳에서 벤치마킹하니까 이를 한번 정리해 보자고 해서 만들어졌다. 이 중 어떤 방법이 정답일까?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리할 것인지 아니면 기존에 하던 방식을 정리할 것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조직 문화 이론의 대가인 에드거 샤인은 “조직 문화를 창조하고 정착시킬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의 행동이다…특히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영진이 명확한 조직 문화 방향성을 제시하더라도 중간 관리자들이 이를 따르지 않거나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중간 관리자의 조직 문화에 대한 영향력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조직 문화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선배나 동료의 압력(Peer Pressure)이다. 선배나 동료들이 ’우리 회사의 문화는 이렇다‘고 정의해 주지 않지만 이들의 행동하는 방식에 따라 은연중에 조직 문화가 드러난다. 이 피어 프레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상향 평준화 압력‘이 좋은데, 반대로 ’하향 평준화 압력‘이 작용하는 조직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동료 평가가 강했다. 동료 평가가 안 좋으면 보상이나 승진에서 불리하니까 이 사람들이 뭘 했냐면 가기 싫은 동료의 생일잔치를 가기도 했다. 그래서 이 동료 압력을 좋은 방향으로 만드는데 있어 경영진들이 신경써야 할 것이 있다. 한 예로 ’크레이그 파크스‘라는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5명씩 팀을 만들어 각 개인에 10포인트씩 줘 팀 공동 계좌를 만들고 그 공동 계좌에서 각 개인이 일정 부분 기부할 수 있게 했다. 또 기부가 끝나면 공동 계좌에서 각 개인이 기부했던 것을 최대 얼마만큼 뺄 수 있게 했다. 이 과정을 10번 반복한 다음 당신 팀에서 누가 얼마를 기부했고 얼마를 빼갔는가를 알려주고 자기 팀에서 빼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투표하게 했다. 그 결과는 많이 기부하고 적게 인출한 팀원이었다. 왜 그랬을까? 저 사람 때문에 내가 나쁜 사람 되는 거 같아서였다. 이렇게 동료 평가가 작동하면 문제가 있다. 이 실험은 조직 내 이타적인 구성원이 주변 동료로부터 배척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조직에는 많이 기여하면서 적게 인출하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찾아서 인정해 주는 것이 좋은 동표 평가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찾았다고 바로 ’그동안 고생했어, 앞으로 인정해 줄게‘라며 접근하는 것도 안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인정하고 가야 한다.

대기업들도 조직 문화 관리는 어려워한다. 10년 전의 조직 문화 보고서를 꺼내 보니 지금 조직 문제의 대부분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든다는 게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조직 문화는 너무 체계적으로 전면적으로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꾸준히 만들어 가야 한다. 조직 문화의 성공 방정식이라는 것은 없다.

<박시현 기자> shpark@it-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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