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永-Way 단상 53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 (2024.07.01)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
2024.07.01
지난 주말에 몇 해 전 작고하신 펜실베니아 대학교 이정식 명예교수님의 자서전을 읽었습니다. 책이 두꺼워 3분의 2 가량 읽었는데 재미가 있어서 손에서 놓지 않고 읽었습니다. 새삼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굴곡이 많은 삶의 이야기는 소설보다 더 실감나는 재미를 느끼게 해줍니다.
1931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출생하여 아버지 사업으로 8살에 중국 한커우로 이주를 가게 됩니다. 거기서 메이지 심상소학교라는 주요 일본인 자제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를 2년 간 다니면서 일본 아이들과 거의 비슷한 일본어 실력을 갖추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는 나중에 교수가 된 후 일본의 정치와 문화를 가르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1941년 부친의 사업이 신통치 않아 10살에 다시 평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전투력 확보 차원에서 다니던 명륜국민학교에서도 일제의 황국 신민화 교육이 철저히 시행되었다고 합니다.
1943년 12살 때 중학교 입시에서 낙방 후 가족들이 먼저 이주한 만주로 가서 만주국의 랴오양상업학교에 입학하나 14살에 아버지가 행방불명이 되면서 소년 가장으로 생활전선에 나서게 됩니다.
처음 일자리는 무면허 의사의 조수로 온갖 청소와 빨래 그리고 임질과 매독에 걸린 환자들을 소독하고 약을 조제해 주는 일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콜레라 환자가 급증하자 일손이 모자라 콜레라 예방주사까지 놔주는 일도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하게 된 일은 면화공장에서 추운 겨울 하루 12시간 씩 말똥도 치우며 면화를 나르는 일부터 하다가 윗사람의 눈에 들면서 계산과 장부 정리를 하는 사무직으로 전환하게 되었고, 나이가 어린데 빨리 승진한 것에 대해 중국인들의 시샘을 받아 팔로군(중공군)이 만주를 장악하면서 쫓겨나게 됩니다.
중국의 국공내전으로 본인까지 6 명의 식구들의 식량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판단으로 평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됩니다. 군대 이동 등으로 민간인의 교량 통행이 전면 금지된 상태라 구사일생으로 나룻배를 얻어 타고 신의주로 건너 가게 되어 평양행 기차를 타고 고모댁으로 가게 됩니다.
일제 하에 잘 나갔던 고모부는 공산당에 의해 사업체 일체를 빼앗기고 월남하였고, 고모는 노모를 모셔야 했기에 시장에서 쌀장수를 하면서 고종사촌들을 부양하고 있는 실정이었기에 덩치가 크고 셈이 빠른 이정식은 쌀가게 점원으로 열심히 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어제 밤에 읽은 부분입니다. 그 이후의 이력을 잠깐 약술하면 1950년 육이오 전쟁이 일어나면서 남쪽으로 피난을 오게 되고, 국민방위군 사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고, 미군 통역부대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미군 장교들의 도움으로 미국 UCLA에 입학을 할 수 있었고, 대학 졸업 후 UC버클리에서 석사와 박사를 하게 됩니다.
1973년 은사이신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와 공저로 ‘Communism in Korea(한국공산주의 운동사)’를 발간하여 미국정치학회의 최우수 저작상인 우드로 윌슨 파운데이션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Top 10 대학인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종신 교수로 30여 년을 봉직했고, 명예 교수로 2021년 영면하셨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제와 만주국 그리고 해방정국의 시대상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으며, 또 하나 느낀 것은 역시 ‘ 고생은 성장의 밑바탕’이란 삶의 진리를 확인한 것입니다. 요즈음 만연된 성적 위주의 주입식 교육은 아이가 훌륭하게 성장하는데 필요한 경험의 기회는 박탈하면서 오히려 아이한테 스트레스만 가중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상의 교육은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갈 안목과 의지를 키워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Y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