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0회 영림원CEO포럼] 실리콘밸리 프로세스의 힘

“‘아마존 FAQ’ 프로세스에서 배우는 기획력과 실행력 강화 방법

신재은 더바른컴퍼니 대표, ‘실리콘밸리 프로세스의 힘’ 주제 강연

“우리나라 기업이 업무 진행 과정에서 전략은 잘 세우는데 실행이 제대로 안되는 것은 실행력이 아니라 기획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기획력을 높이는 특별한 방안으로 실리콘밸리 기업의 체계적인 기획력 강화 프로세스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신재은 더바른컴퍼니 대표가 6일, 210회 영림원CEO포럼에서 ‘실리콘밸리 프로세스의 힘’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던진 핵심 메시지다. 미국 아마존에서 수석 기술 프로덕트 매니저로 활동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신 대표는 이번 강연에서 “조직이 겪는 문제의 대부분은 불명확한 프로세스에서 빌생한다. 기획은 신중하게, 실행은 빠르게 하는 실리콘밸리 업무 프로세스를 따른다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바른컴퍼니는 신 대표의 미국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에서 다년간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기업의 경영진들을 대상으로 성공적인 기업을 만드는 업무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컨설팅하는 회사다. 다음은 강연 내용.

◆ 문제는 실행력이 아니라 기획력이다

나는 올해 초 펴낸 <실리콘밸리 프로세서의 힘>이라는 책에서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혁신의 힘은 프로세스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프로세스라는 것은 조직에서 따라야 할 기준과 원칙을 매우 명확하게 세워주고 그 안에서 조직 구성원들이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업무 체계이다.

한국에서 기업 운영이나 조직 운영에 관한 컨설팅을 하다 보면 경영진들은 크게 두 가지를 토로한다. 하나는 직원들이 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고 수동적이라는 것이며, 또하나는 우리 회사는 전략을 잘 세우는데 실행이 안된다,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보려면 대부분의 기업에서 하는 업무 진행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업의 업무 진행 과정은 대부분 기획->계획->실행이라는 세 단계로 이뤄져 있다. 마지막 단계의 실행이 제대로 안되는 것은 앞의 기획과 계획 과정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행력이 아니라 기획력에 있다는 얘기다.

기획은 계획을 명확하게 수립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다. 다시 말해 조직 구성원들이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어떤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를 설정해,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를 구체화하는 과정이다. 사업 전략, 영업 및 판매, 마케팅, 브랜딩, 제품과 서비스 등 모든 업무에는 기획이 들어가고, 이어 명확한 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을 실행하는 식으로 업무는 진행된다.

내가 컨설팅을 할 때 대부분의 기업에서 보여주는 기획 문서를 보면 실행이 될 수 없게 되어 있다. 한마디로 조직에서 실행이 제대로 안되는 이유는 기획이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회사에서 조직원들이 기획 업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 과정이 있거나 가르쳐주는 곳은 거의 없다. 기획 문서의 형식이나 포맷은 있지만 그 내용 즉 알맹이는 직원들 각자가 프리스타일로 작성하고 그것도 매우 심플하게 요약해 기재한다.

명확하게 기획이 이루어지고, 그 기획 보고서에 있는 내용이 제대로 올바르게 실행으로 옮겨질 수 있는 특별한 방식이 있다.

◆ 명확한 기획과 실행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첫 번째는 실행력을 강화하는 업무 목표 설정 방식이다.

보통 우리나라 조직 구성원들이 쓰는 기획서를 보면 이를테면 핵심 부품의 글로벌 고객사 비중을 10%에서 40%로 늘린다거나 시장점유율을 33%까지 늘린다는 식으로 업무 목표를 정한다. 나는 컨설팅을 하면서 ‘성공’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우리나라 조직 구성원들이 작성한 기획서에는 업무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모습이 무엇인지가 구체적으로 정의되어 있지 않다. 즉 매출이 줄거나 수익성이 악화돼도 글로벌 고객사의 비중만 늘면 그게 성공인가? 또 글로벌 고객사 비중을 확장하는 것이 신규 고객 수를 늘리는 것인지 아니면 고객당 매출을 증대하는 것인지 대한 구체적인 정의가 없다. 무엇을 하겠다는 큰 그림만 있을 뿐 성공적인 목표 달성의 모습이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는 것은 문제이다.

다음으로 대부분의 우리 기업은 아웃컴(효과)이 아니라 아웃풋(결과물) 중심으로 업무 목표를 설정한다는 점이다. 아웃풋 중심의 목표는 언제까지 무엇을 하겠다는 식으로 활동과 결과물을 중심으로 얘기한다. 반면 아웃컴 중심의 목표는 비용 절감 등 성과와 효과를 우선시한다. 업무 목표가 성공적으로 달성되려면 아웃컴 중심으로 목표를 세워야 한다. 어떤 효과를 냈는지 어떤 임팩트를 냈는지가 중요하지, 단순히 어떤 활동을 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기획 보고 문서에 ‘고객 만족도를 높인다, 업무 효율성을 개선한다’ 등 추상적인 표현이 많은 것도 문제이다. 성공은 이를테면 고객 상담 평균 대기 시간을 10분에서 6분으로 단축 등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해야 한다. 또 ‘좋아졌다’는 것보다 숫자, %, 기간 같은 명확한 지표로 업무 목표 달성을 측정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기획 문서에는 목표 달성이 왜 중요한지가 빠져 있다. 핵심 부품 매출의 글로벌 고객사 비중을 10%에서 40%로 높이겠다고 목표를 세웠는데 이것을 작성한 직원도, 읽는 사람들도 도대체 이 업무 목표를 달성하는 게 왜 중요하지, 또 왜 20%, 30%가 아니라 40%인지, 그리고 내가 하는 업무의 우선순위와 우리 회사의 전략 방향성이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에 관한 납득 과정이 없다. 이 얘기를 강조하는 까닭은 조직의 행동 심리학적으로 업무 목표를 세울 때 그 성공의 구체성과 조직 구성원들의 수용과 납득 과정이 실행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목표가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명확한 행동 기준과 평가 기준이 생겨서 조직의 실행력을 높인다. 결론적으로 실행이 잘 되려면 ‘무엇’을 달성해야 하는지가 지금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조직 구성원들이 이 업무 목표 달성이 ‘왜 중요한가’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 실행이 잘 되려면 기획 단계에서 실행 가능한 행동 단위의 전략 필요

두번째는 실행이 되게 하는 실행 계획 수립법이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쓰는 기획서를 보면 예를 들면 글로벌 고객사 비중을 10%에서 40%로 높이겠다고 업무 목표를 세워 놓고도, 업무 계획에는 탑티어 OEM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하겠다, 고부가 제품 기반으로 매출을 강화하겠다 등 ‘확대’, ‘강화’, ‘추진’ 등 추상적인 용어만 있다. 청사진은 그려져 있지만 ‘무엇을, 누구와, 어떻게, 어느 수준까지 할 것인가?’가 애매모호하다. 계획이 나열되어 있지만 구체적으로 그 계획을 어떻게 행할 것인지, 어떻게 행하면 그 계획이 달성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빠져 있다. 설명이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거기까지 생각을 안한다. 기획 문서를 쓸 때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청사진과 구체적인 행동 단위의 실행 계획이 맞물리지 않은 상태로 기획을 하게 되면 행동을 하는 도중에 여러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KPI와 전략 및 실행이 따로 노는 이유는 바로 기획 단계에서 실행이 어떻게 목표 달성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누구의 책임인지, 무엇이 필요한지가 명확하지 않은 것도 실행 계획 수립에서 문제이다. 어느 부서의 누가 언제까지 탑티어 OEM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업무를 책임지는 것인지, 이것을 하려면 어떤 추가적인 자원 즉 예산, 인력, 시간 등이 필요하고 확보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이 계획이 충분히 현실적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실행이 잘 되려면 기획 단계에서 실행 가능한 행동 단위의 전략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도만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기획 단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게 해야 실행력이 더욱 강화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획 단계에서 놓치고 있는 문제는, 실행이 잘 되고 있는지 검증하는 계획이 없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탑티어 OEM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하겠다라고 목표를 정했으면 언제 어떤 지표로 목표 달성의 진척도를 파악할 것인지, 즉 ‘성공’의 중간 이정표는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그리고 중간에 잘 안 되면 어떤 방법으로 학습을 해서 이 계획을 수정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 조직의 실행력을 높이는 기획력 강화 업무 프로세스 ‘아마존 FAQ’ ①질문형 템플릿 포맷

다음으로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체계적인 기획력 강화 프로세스를 살펴보겠다. 대표적으로 아마존은 ‘PR/FAQ’라는 기획 프로세스를 통해 제품과 서비스를 기획한다. PR은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가상의 홍보문을 써보는 것이며, FAQ는 고객이 제품에 대해 자주 할 수 있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미리 써봄으로써 고객 입장에서 이 제품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를 생각하는 업무 프로세스다. 아마존이 출시한 성공적인 제품과 서비스는 모두 이 기획 프로세스를 통해 탄생했다.

아마존의 FAQ는 조직의 실행력을 높이는 기획력 강화 업무 프로세스로, ‘연필을 날카롭게 깎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FAQ 프로세스는 조직의 비판적 사고력을 강화해 서비스든 전략이든 어떤 기획 업무라도 그 내용을 탄탄하게 할 수 있는 세 가지 업무 장치가 녹여져 있다. 첫 번째는 질문형 템플릿 포맷이고 두 번째는 두괄식 노출형 답변 포맷 그리고 마지막은 조직의 집단 지성을 활용하는 업무 프로세스이다.

먼저 질문형 템플릿 포맷을 살펴보자. 조직에서 질문은 구성원들의 사고를 더욱더 깊게 만든다. 질문형 템플릿 포맷은 기획서가 표면적인 내용에 머물리 않고 한 단계 더 깊게 확장하도록 유도한다. 이를테면 글로벌 고객사 비중을 10%에서 40%로 높이는 것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 답변해 보라고 질문하면 훨씬 더 많은 내용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글로벌 고객사 비중을 10%에서 40%로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는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기술력과 공급 안정성을 입증해 글로벌 밸류체인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라는 내용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래서 질문은 기획을 선명하고 뾰족하게 만드는 최고의 업무 도구이다. 질문 없이 그냥 작성한 기획서의 내용과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정의한 내용은 깊이가 다르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다루 핵심 논리가 다르다.

◆ ‘아마존 FAQ’ ②두괄식 논술형 답변

두 번째, 두괄식 논술형 답변 포맷은 완전한 문장체로 결론부터 말하고, 그 다음에 결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와 사례를 들어 논술하는 답변 형태이다.

이 두괄식 논술형 답변은 질문형 템플릿과 같이 가야 하는 한 세트이다. 논술은 표면적인 사실을 뛰어넘어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사고의 언어로, 논술을 하는 과정에서 생각의 구조화가 일어나게 되고 한층 더 깊게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업무 도구이다.

일반적인 기업에서 논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서술에만 머문다. 서술은 현상을 전달하고 결과를 나열하며 질문의 초점도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집중하는 관찰의 언어다. 하지만 논술은 원인을 추적해서 이게 왜 중요한지, 왜 해야 하는지, 그래서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등의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면서 통찰을 발견하는 언어이다.

예를 들어 서술형은 ‘365/24 고객 상담이 가능한 AI 챗봇 도입’, ‘고객 상담 대기 시간 90% 단축 예상’ 등으로 요약해 정리하지만, 두괄식 논술은 ‘이번 서비스 개편의 목적은 24시간 고객 상담이 가능한 챗봇을 통해, 고객이 상담원과 통화하기 위해 기다려야 했던 평균 대기 시간을 90% 단축하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완전한 문장체로 쓴다.

서술형 요약은 겉으로 보기에는 명확한 내용이지만 더 이상 깊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괄식 논술을 하면 글을 쓰는 사람도 그 글을 읽는 사람도 더 깊게 사고할 수 있게 된다. 완전한 문장체로 글을 쓰면 예를 들면 ‘대기 시간이 줄어들지만 상담 품질은 여전히 유지할 수가 있을까?’, ‘이 부분을 보완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떠오르게 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생각의 구조화가 일어나고 스스로에게 여러 질문을 던져보면서 내용을 보완하게 된다. 컨설팅을 할 때 많은 기업에서 우리 조직은 문서화가 잘 안된다, 특히 개발자들은 문서화를 안한다고 얘기한다. 문서화는 나의 업무가 아니라 관리 업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괄식 논술 중심으로 글쓰기 방식의 업무 프로세스를 구축하면 문서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조직 구성원들도 글을 쓰는 과정과 또 조직의 집단 지성을 활용해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내 업무 내용의 품질이 더욱 좋아지는 것을 체감하기 때문에 글 쓰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다시 말해 비판적 사고를 강화하는 업무 프로세스를 글쓰기 중심으로 설계하면 조직 내 ‘문서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 ‘아마존 FAQ’ ③조직의 집단 지성을 활용하는 업무 프로세스 ‘다큐먼트 리뷰’

세 번째, FAQ 프로세스 안에는 조직의 사고력을 강화하는 업무 장치가 있는데 바로 조직의 집단 지성을 활용하는 업무 프로세스인 ‘다큐먼트 리뷰’이다.

다큐먼트 리뷰는 FAQ 프로세스를 사용해 질문을 하고 또 그 질문에 대해서 논술형으로 답변을 한 후에 내가 작성한 문서 초안을 조직 구성원들과 공용 문서 형태로 공유해서 내가 쓴 작업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그 안에 코멘트를 다는 형식으로 피드백을 주는 업무 프로세스이다. 조직 구성원들의 다양한 시각과 비판적인 의견을 수렴해서 내 업무 내용의 완성도를 더욱더 높여나가는 작업이다.

다큐먼트 리뷰를 운영하는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다큐먼트 리뷰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공유 문서 형태로 조직 구성원들과 회의 참여자들이 20~30분간 함께 문서를 읽어보는 시간을 먼저 갖는다. 이렇게 하는 까닭은 읽어 오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읽어 오고 어떤 사람은 바빠서 안 읽고 와서 양질의 피드백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의 시간에는 문서를 함께 읽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서를 다 읽었으면 회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는데 문서에 대한 전체적인 의견이나 생각을 취합한다. 먼저 하이레벨 코멘트부터 시작해 페이지별로 구성원들이 적은 코멘트를 검토하는 방식으로 회의를 진행한다. 그리고 문서 오너는 회의에서 논의된 피드백을 기반으로 문서를 다시 수정한다. 이후에는 위의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한다.

이 다큐먼트 리뷰를 통해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검토할 수 있을 만큼의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나왔다면 이 문서를 그대로 가지고 최종 의사결정권자와 다큐먼트 리뷰를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해 이 기획 내용을 승인할 것인지 아니면 판단을 보류할 것인지를 결정하면 된다.

이 다큐먼트 리뷰를 적용하면 하나의 문서를 가지고 사고력을 강화할 수 있는 업무 프로세스, 그 다음에 조직 구성원들의 피드백을 취합할 수 있는 업무 프로세스, 그리고 이 문서를 가지고 최종 의사결정권자한테 의사 결정을 받을 수 있는 구조까지 한 번에 마련된다.

너무 당연한 얘기인데 조직의 비판적 사고를 강화하면 기획력이 강화된다. 왜냐하면 이미 기획 단계에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되는지가 명확하기 때문에 실행 계획이 행동 단위로 구체적으로 나오고 흔들리지도 않는다. 즉 실행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지고 복잡한 전략도 행동 단위로 쪼개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또 처음부터 치밀하게 질문하고 설계했기 때문에 중간에 기획이 중구난방으로 바뀌지 않는다. 한마디로 FAQ는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사고를 구조화하고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하는 설계 도구이다.

◆ 실리콘밸리 업무 프로세스 ‘기획은 명확하게, 실행은 애자일하게’

다음으로 애자일 업무 관리 프로세스에 대해 살펴보겠다. 내가 실리콘밸리에서 경험한 애자일 조직 운영이라는 것은 단지 개발 조직에 특화된 운영 방식이 아니라 민첩하다는 단어 뜻대로 조직을 민첩하게 움직이는 경영 방식이다.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애자일에 대한 오해가 있다. 그 하나가 기획은 대충하고 일단 빨리 만들자는 게 그것이다. 하지만 애자일은 기획이 명확해야 효과가 있다. 빠르게 움직이려면 무엇이 중요한지 우선순위가 명확해야 하며, 또 깊이 있는 기획이 선행되어야 진짜 민첩한 실행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애자일에 대한 또하나의 오해는 개발 조직만 애자일 방식으로 일하면 되고 조직 전체는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다. 국내 기업의 개발 조직의 대부분은 ‘나홀로 애자일’을 하고 있다. 실제 개발 업무는 사업 및 운영 부서와 서로 얽힌 의존관계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사업 및 운영 부서의 신속한 의사 결정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개발 조직과 이를 함께 체계적으로 운영할 프로세스가 부재한 까닭에 개발 조직은 ‘애자일’을 외치지만 조직 전체의 민첩성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아마존에서 40개의 부서와 200명이 넘는 인원을 이끌고 어떤 프로젝트를 약 2년 동안 수행한 적이 있다. 그 프로젝트는 마감일이 매우 촉박했는데 맞출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존식의 애자일 업무 프로세스 덕분이었다. 아마존은 초기 기획 문서 작성에 수개월이 걸릴 만큼 처음부터 명확하게 설계하고, 일단 기획이 승인되면 단기간 내 고속으로 추진한다. 개발 조직 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가 동일한 애자일 프로세스로 움직이기 때문에 문제 발생 시 빠른 해결이 가능하다.

나는 <실리콘밸리 프로세서의 힘>에서 애자일 업무 관리 프로세스, 애자일 업무 관리 템플릿을 소개했다. 애자일 업무 관리 프로세스는 애자일 업무 관리 템플릿을 활용해 매주 문제 해결을 위한 주간 회의를 운영해 시급한 문제들을 빠르게 해결하고 조직이 밀접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 애자일 업무 관리 템플릿은 ‘작업 일정-마감일-오너-진행 상황-업무 막힘-해결안’ 등 6개의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이 템플릿을 사용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일단 기획이 탄탄하다는 전제하에 업무 목표를 명확하게 기재하고, 그 업무 목표의 달성 시점에서부터 거꾸로 업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행 계획을 작성한다. 예를 들면 ‘상사 자료 제출’이 5월 30일이라면 최종본, 초안본, 조사 완료가 언제까지 되어야 하는 것을 거꾸로 작업 일정 계획을 세운다. 거꾸로 작업 일정을 생각해 보라고 하는 이유는 목표 달성에 필요한 일들이 무엇인가를 조금 더 체계적으로 생각해 보게 하기 위함이다. 또 어떤 실행을 하기 전에 작업 일정을 거꾸로 세워보면 목표한 마감일이 작업 일정상 현실적인지를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정말 현실적으로 타당한 실행 계획을 작성할 수 있다.

이처럼 목표 달성을 위한 실행 계획을 세웠으면 그 이후에는 옆에다가 마감일을 적고 또 각각의 작업 일정에 일정을 책임지고 수행해야 하는 단 한 명의 업무 오너 이름을 적게 한다. 이때 목표 달성에 필요한 모든 작업 일정 즉 협업이 필요한 타 부서의 업무 업무도 일정에 같이 기재하고 그 업무 오너의 이름을 적게 한다.

이렇게 실행 계획을 작성하고 업무 오너까지 정했으면 그 이후에는 매주 이 템플릿을 가지고 조직의 리더와 주간 회의를 한다. 이때 업무 오너가 각각 자신이 맡은 작업 일정에 대해 진행 상태를 표시하게 한다. 진행 상태의 표시에는 신호등 제도를 사용한다. 업무 오너가 명시된 마감일까지 작업 일정을 마칠 수 있다고 할 때는 ‘그린’, 조금 어렵겠다라고 판단될 때는 ‘옐로우’, 마감일까지 업무 완료가 아예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때 ‘레드’로 표시한다.

신호등 제도를 사용해 업무의 진행 상태를 표시하는 이유는 회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회의 시간에는 그린으로 진행되는 작업 일정은 논의하지 않고 옐로우나 레드처럼 뭔가 작업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표시한 작업만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그리고 업무 진행 상태가 옐로우나 레드일 경우 회의 시간 전에 업무 막힘과 해결안 안에다 무엇 때문에 업무가 막혔는지, 이 업무의 진행 상태를 다시 그린으로 되돌리려면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해줘야 되는지를 기재하고 회의에 참여한다.

일반적인 기업에서는 이렇게 업무의 진행 상태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특별한 회의가 없다. 그래서 문제가 터지고 난 후에 조직 리더는 문제를 수습하기에 바쁘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이런 업무 관리 프로세스를 사용해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그린으로 되돌릴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하고, 그것을 사전적으로 예방하는 회의를 함으로써 업무 마감일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조직 운영 체계를 갖추고 있다.

애자일 주간 회의를 운영할 때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리더의 역할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업무 오너 간의 협의 중재, 또하나는 우선순위에 따라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다.

◆ 우리나라 조직이 겪는 문제 대부분은 불명확한 프로세스에서 발생

내가 경험한 실리콘밸리의 업무 프로세스는 앞단의 기획과 계획을 명확하게 하는 FAQ 프로세스를 통해 실행이 잘 되게 만들고 이후 실행 단계에서는 속도와 실행력을 빠르게 하는 애자일 업무 관리 프로세스로 조직의 업무 관리를 매우 투명성 있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관리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조직 문화를 생각해본다.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한국 기업들의 가장 큰 차이를 꼽으라면 한국 기업은 ‘자율’을 주지만 기준이 없고, 실리콘밸리 기업은 ‘체계’를 주고 그 안에서 자율을 발휘하게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조직에서 프로세스에 따라 운영을 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2014년에 아마존이 출시한 파이어폰이라는 제품의 실패 사례를 들어보겠다. ‘아마존 파이어폰’은 세계 최초의 3D 스마트폰으로, 주변의 실제 상품, 책, 음악 등을 인식해 아마존 온라인 스토어에서 바로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게 해주는 ‘파이어 플라이’라는 기능을 탑재했다. 이 제품은 2014년 7월에 나왔는데 그 분기에 적자가 1억 7천만 달러 정도로, 출시된 지 1년도 안 돼 판매가 중단됐다. 그 이유는 매우 명확했다. 이 제품 출시에 관여한 개발자들은 인터뷰에서 “우리는 고객을 위해서 이 제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제프 베조스를 위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는 이 제품에 굉장한 애착을 가졌다. 리더가 프로세스를 무시한 순간, 조직은 예외를 정당화했고, 결과는 명확했다. 이 사례를 통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리더도 프로세스 적용의 예외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성과가 바뀐다. 조금 더 좋은 성과를 만들고 싶다면 우리 조직이 일하는 방식이 어떤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조직에서 겪는 문제의 대부분은 개인 역량의 부족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과 원칙이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결국 문제는 불명확한 프로세스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강점은 모두가 예외 없이 따르는 업무 프로세스를 통해 조직의 기획력과 실행력을 강화해 조직의 성과를 높인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들이 겪고 있는 실행, 협업, 커뮤니케이션, 조직 문화 등의 문제도 사람이 아니라 구조로 접근할 때 달라질 수 있다.

<박시현 기자> shpark@it-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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