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4회 영림원CEO포럼] 적대 정치의 유산과 청산: 민주주의 회생 진단
“한국의 적대 정치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송호근 한림대 교수, ‘적대 정치의 유산과 청산: 민주주의 회생 진단’ 주제 강연

한림대학교 도헌학술원 원장 송호근 석좌교수가 3일, 204회 영림원CEO포럼에서 ‘적대 정치의 유산과 청산: 민주주의 회생 진단’을 주제로 강연했다.
올해 3월 정치 몰락의 원인과 출구 찾기라는 부제로 <적대 정치 앤솔러지>를 출간한 송 교수는 “한국 정치는 극단적인 진영 논리 속에서 적대적 투쟁을 지속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보복 정치가 반복되고 사회적 화합보다는 분열이 조장되는 구조적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며, 이번 강연에서는 이러한 ‘적대 정치’가 어떻게 고착화됐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 제도 개혁과 사회적 합의의 가능성을 살펴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강연 내용.
◆ 한국은 ‘선거민주주의’ 나라…권위주의가 부상하고 민주주의가 후퇴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산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는 올해 3월 발표한 ‘민주주의 보고서 2025’에서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나라가 아니라 ‘선거민주주의’ 나라이며 심지어 권위주의가 부상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나라라고 진단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에서도 한국은 최상위 단계에서 탈락한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됐다.
12.3 비상계엄으로 찬탄과 반탄이 충돌하는 거리의 정치가 벌어졌는데 이것은 해법이 아니다. 비상계엄 참사를 빚은 정치체계의 원인과 구조를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1981년 스페인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는데 실패했다. 당시 스페인은 국민소득이 6천달러~7천달러의 선진국이었다.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는 쿠데타와 경제 수준 간의 관계를 밝혔는데 국민소득이 6050달러를 넘으면 쿠데타는 실패한다고 했다. 2024년 한국의 국민총소득(GNI)은 3만6194달러였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뉴스 통합 즉 정보 통합이 가장 잘되는 나라이다. 제주도에서 발생한 일을 서울의 시민들이 알아내는데 2~3분도 안 걸린다. 이런 나라에서 비상계엄이 일어났다. 윤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2년 반 정도 동안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몰락했으며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지난 22년간의 적대정치는 우리가 어렵게 성취한 민주주의의 기둥을 다 무너뜨렸다. 인용이 되든 기각이 되든 간에 이런 사태가 일어나게 된 그 원인과 구조를 고치지 않으면 똑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22년 전 시작된 적대 정치의 패턴은 계속 반복돼 왔으며 지금은 그 정도가 훨씬 더 심해졌다. 이를 설명하고자 <적대 정치 앤솔러지>라는 책을 냈다. 정치권은 지난 22년간 막말과 욕설이 난무하고, 시끄럽고 소란한, 되는 것은 없는 하류정치를 보여줬다.
앞으로 적대 정치의 패턴을 끝장내고 대국민적 반성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국가 원로, 사회 원로가 필요한데 요즘에는 원로가 없다. 예전에는 종교 지도자나 대학교수 등 지도자 그룹에서 균형 잡힌 목소리를 냈으며 언론도 그런 역할을 했다. 그런데 20세기 한국을 끌어왔던 이 중추 조직들이 지금은 다 무너졌다. 예전 같으면 김수환 추기경이 한마디 하면 받아들였지만 요새는 종교계에서 뭐라고 하면 당신은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 이게 제대로 된 사회인가? 존경받던 그룹들이 무너진 것은 사람들이 존경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대신 누구에게 존경심을 주고 싶어서인지 인기 배우나 가수, 운동선수 등을 찾아다니는 팬덤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도 사회에는 권위가 필요한 것 아닌가? 모든 것이 무너지면서 정치의 사법화가 이뤄지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가 우리나라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만병통치처럼 쓰여지는 나라가 과연 있을까? 사실 정치는 싸움을 말리고 해결하는 것이다. 이게 안되니까 사법부에 가서 해결해달라고 요구한다.
◆ 한국 적대 정치의 특성 세가지
우리나라 적대 정치의 특성은 크게 세가지다. 첫번째, 대통령의 실패를 노리고, 두 번째, 의회가 대통령을 무한 공격하고. 세번째, 정당 정치가 패거리 정치로 전락하면서 대변 기능이 붕괴했다는 점이다.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다.
정당의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다른 얘기가 전혀 나오지 않게 하고, 이를 통해 상대 정당하고 정면 충돌하는 형태가 지난 20여년 동안 이어져 왔다. 양당이 충돌로 치닫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중간의 제3당이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사라지면서 적대 정치가 심화됐다. 그런데 미국도 양당 체제이지만 잘 돌아간다. 그 이유는 ‘헌법 조항에 있으니까 이렇게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가 무너지니까 이렇게 하지 말자’고 타협을 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 정치는 민주주의 핵심인데 한국은 패거리 정치로 전락한 탓에 윤 정부 들어 지난 2년 반 동안 여야가 합의한 유일한 것이 개식용 금지법이었다, 최근에 연금개혁에 최종 합의했지만 젊은 사람들의 이해를 대변하지는 못했다.
한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이지 않은 적대 정치의 모든 유형이 진열돼있는 상태다. 그래서 책 제목을 <적대 정치 앤솔러지>로 정했다.
양대 정당의 적대적 다툼은 참여정부가 그 시작점이었다. 2003년에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집권 중반 이후 민주화 운동 방식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운영했다. 경쟁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척결했다. 민주주의는 적과 동침해서 서로 타협도 하고 토론도 하고 합의를 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정권 내부를 방어벽으로 둘러치고 캠프정치, 밀실정치를 했다.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정치의 기본 원칙은 여야 합의여서 막후 타협을 하곤 했다. 보수와 진보 또는 좌우로 나눠져 있어도 그전에 민주화 운동을 해왔던 동지애가 있었기 때문에 협력이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국회의원들 서로가 잘 모른다. 현재 국회의원 300명 중에 60명이 율사 출신인데 법대 출신이 정치를 꼭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가 알렉시스 토크빌(1805~1859)은 젊은 나이에 미국 여행을 했는데 약 1년 동안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미국 정치의 현장을 둘러봤다. 그는 프랑스에는 없는 것이 미국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이 교회에서 모여 얘기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왕조가 없는 역사였기에 이게 가능했다. 그래서 ‘미국 예외주의’라는 말이 나왔다. 왕조에서 민주 국가로 전환하는 게 모든 나라의 일반적인 패턴이었는데 미국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자치가 태어났다. 자치가 점차 성장하면서 ‘도덕적이고 지성적인 리더십’이 자라났다. 이 ‘도덕적이고 지성적인 리더십’은 미국이 민주주의 제도를 운용하는 정신이었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깰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한데 그동안 깨지지 않고 지속된 것은 바로 이러한 정신 때문이었다. 물론 트럼프는 예외다.
아무튼 정당 정치가 작동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만 움직이면 민주주의는 회생하기 힘들다. 지금 한국 정치는 서까래가 무너지고, 내부는 썩은 폐가와 같은 상황이다. 폐가 속에서 양쪽으로 나뉘어져서 열심히 싸우고 있다. 좀 과한 평가일지 모르겠으나 우리 국민들이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반성적인 질문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민주화 38년, 우리는 진정 이런 정치를 바랐던가?”
유럽은 정당 정치를 통해 계급과 종교, 언어, 지역 등으로 인한 균열을 메우고 타협점을 찾아간다. 유럽에서 정당을 나누는 가장 기본적인 구분선은 종교와 계급이다. 먼저 기독교와 천주교가 나눠지고, 그 다음에 계급 정당이 있다. 정당의 수는 지역별로 적게는 5개에서 많으면 25개에 이르는 다당제로 이뤄져 있으며, 정당 간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등 협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등은 사회적 구성요인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각 이질 집단 간 타협과 협의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이른바 협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우리나라에서 정당을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선은 무엇일까? 답하기 어려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지역이다. 동서로 구분돼 있는 지역선이 국가 성장이나 정치적인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전에는 이 지역을 기준으로 투표를 했는데 최근에는 약간 옅어지고 이를 이념이 덮어버렸는데 지역과 이념이 겹쳐지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든다. 이걸 겹쳐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정치인데 겹치게 해서 계속 정치적인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수법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선거를 하지만 선택지가 별로 아니 거의 없다.
김훈의 소설 중에 <개>라는 작품이 있는데 ‘보리’라는 진돗개가 주인공이다. 보리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비웃는다. 이 소설을 보고 2024년 1월 24일 한 일간지에 ‘개에 대한 명상’이란 글을 썼다. 내용은 이러하다. “진돗개 보리가 요즘의 정치판을 본다면 뭐라 할까, 그냥 컹컹 짖고 말까, 아니면 개판이라 할까. 개에 등급을 부여한 건 인간이다. 애완견, 경비견, 탐색견처럼 특정 임무를 받은 개를 견으로 불렀고, 버려진 잡초 같은 개는 구자를 붙였다. 몸 색깔에 따라 황구, 흑구, 백구다. 황구로 태어난 ‘보리’는 정치판에 구자를 붙여도 좋을 사람이 그득하다는 사실을 놀라워했을 것이다.”
양대 정당의 적대적 다툼은 참여정부부터 시작됐다고 했는데 노무현 정권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4대 악법 철폐가 실패하고 나서 보수당이 탄핵을 걸었다. 탄핵 기각 후 2004년 치러진 총선에서 152명에 달하는 386 운동권이 대거 진입했다. 그때부터가 적대 정치의 출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이해찬 의원은 “진보 정치 50년이 기약돼 있다”고 말했다. 당시 보수당은 천막당사를 운영하며 국민에게 사죄하고 컴백할 수 있는 기회를 벌었다. 그런데 문제는 국회에 등장했던 386 운동권들이 재벌, 보수정당 등을 모두 적으로 규정하고 적은 사라져야 한다고 밀어붙였다는 점이다. 이를 막아서면 배신자 딱지를 붙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7년 임기 말에 보수정당과의 연정, 한미 FTA 등을 추진하자 당에서 제적을 시켜버렸다. 이렇게 시작한 적대 정치는 전혀 성격이 변하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져 지금까지 이르렀다. “민주화 38년, 우리는 진정 이런 정치를 바랐던가”라는 회의감이 든다. 이 문제를 두고 혹자는 우리나라는 시민사회 기반이 취약해서 그렇다는 말을 한다.
◆ “자유주의가 없는 민주주의는 세상에 없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에서 시민사회가 만들어지는데는 100년에서 150년이 걸렸다. 긴 시간동안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으며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든 것이다. 독일은 1840년대에 시민사회가 발전했는데 이 시민사회를 만들어낸 주역은 두 그룹이었다. 하나가 교양 시민이고 또하나는 경제 시민이다. 교양 시민은 대학교수나 예술가 등 전문가 그룹이며, 경제 시민은 시장을 만들고 경제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다. 교양 시민은 이 경제가 잘 작동하도록 교육도 하고 법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40~50년간 경제가 발전하면서 노동 계급이 치고 올라왔다. 시민사회의 주축 세력은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 속에서 이 노동 계급을 받아들여 노동 계급이 만든 노동당과 토론하고 협력했다.
시민사회라고 해서 처음부터 건전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시민사회는 독점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히자 수용을 했다. 이렇게 하면서 민주주의 체계를 만들어나갔다. 이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그러니까 자유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사상가로부터 시작해서 교양 시민과 경제 시민은 자유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엄청나게 논의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국가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양보가 필요하다고 얘기했는데 그 양보란 공공성을 위한 것이었다. 자유주의가 바탕에 잘 깔린 국가에 민주주의가 내려앉는다. 유럽에서는 100년에서 150년에 걸쳐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유주의를 발전시켰다.
우리나라에서 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7년 이후이다.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기존의 경제 시민과 교양 시민이 깔아놓은 것에 민주주의가 그냥 내려앉아 이 두 가지가 한꺼번에 막 섞여버렸다는 점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40년이 됐다. 우리는 자유주의의 본질을 잘 모르고 있다. 자유주의의 본질을 이해하지 않은 채 민주주의로 전부 커버하고자 하는 욕심들이 엄청나게 많다.
자유주의는 첫 번째가 양보하는 것이다. 양보는 ‘욕망의 자제’다. 권리와 책임이 있으면 책임을 먼저 완수하고 그 다음에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자유주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87년부터 사람들이 권리 투쟁을 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자유주의 기반이 엄청나게 약한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내려앉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자유주의가 없는 민주주의는 세상에 없다. 이를 좀 유식한 말로 하면 ‘부르주아 없이는 민주주의 없다(No bourgeois, no democracy)’이다. 이 말은 시장이 없으면 민주주의가 없다는 뜻으로 사회과학에서 흔들리지 않는 명제다. 부르주아는 자본가 계급이기도 하지만 시민 계급을 의미한다.
우리는 식민 시대에 부르주아를 만들지 못했다. 이 역사적인 결핍을 안다면 책임을 다했는지 반성하고 권리만을 주장해서는 안된다. 세금 많이 내는 사람에 대한 존경이 필요하다. 그 세금으로 우리가 복지를 받고 최저 생활을 하지 않은 것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사회에 헌신하는 것이 복지의 조건이다. 경제는 압축 성장이 가능하지만 정치, 사회의 성장은 모든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은 역사의 명법이다.
◆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몰락한 이유
자유민주주의와 비교해 한국적인 정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몇 가지만 지적해 보겠다. 첫 번째는 경로 단절이다. 보수든 진보든 간에 그간 7개의 정권이 제일 먼저 한 것은 기존 정권의 노선과 정책의 폐기였다. 기존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면서 자기의 정통성을 세워나갔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몰락한 이유다. 세계에서 이런 나라는 별로 없다.
두 번째는 몰역사적인 논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로부터 태어난 것인데 그 부모를 부정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를 경험할 수 있는 기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부터 자유주의가 본격 시작됐지만 이 자유주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자유주의가 개인주의로 전락되고 있다. 개인의 동굴로 들어가서 내 인생을 즐기는 것이 자유주의의 기본 원칙이지만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은 생각하지 않는다. 세금도 좀더 내고, 열심히 일하겠다는 이런 의식들이 있어야 된다.
세 번째는 자유와 평등 간의 투쟁이다. 이 둘 중 어느 쪽을 확대하고 줄일 것이냐는 문제는 세계적으로 1860년대부터 지금까지 해결이 안됐다. 현재 전 세계 200개 국가 중 약 70%인 140여개 국가가 권위주의 체제이며 30%는 민주주의 체제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난 150년 동안 고민했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자유와 평등의 비율 어떻게 조정하냐는 것이었다. 사회민주주의는 자유를 좀 줄이고 평등을 키우는 쪽으로 합의를 했다.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 아직 합의가 안 된 상태다. 강한 평등주의 심성에다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이 더해져 민주주의가 자유주의를 짓누르고 있다.
네 번째는 구조화된 신념이다. 우리나라에 이데올로기 투쟁이 엄청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핵심은 딱 두 개다. 이 두 개만 없으면 이데올로기 투쟁이 사라지거나 다른 데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민족 문제로 친미냐 친북이냐는 이념 균열이며, 또 하나는 분배 문제로 성장-분배 간 균열이다. 민족 문제와 계급 문제는 1920년대부터 등장해 논의되다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아주 급격하게 경직돼 있는 상태이다. 지금 사회에서 나오는 많은 이슈들이 사실은 전부 이 두 개로 수렴이 된다..
친북-친미, 성장-분배라는 두 개의 이념적 짝은 다른 국가의 경우 인종과 종교적 분절만큼이나 강한 분절 요인이 됐다. 이 두 개의 구조적 신념에 근거해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이데올로기적 대립 양상은 강력한 정치적 균열로 발전했으며 몇 차례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가장 뚜렷한 분열 요인이 됐다. 이 구조화된 신념을 정치인이나 지성인들이 어떤 식으로든 좀 유용하게 만들어주면 좋은데 이게 안 되고 있다. 국가 정체성이 분열하는 이유다. 광화문은 동원과 분열 정치의 세계적 명소가 됐다.
다섯 번째는 민주주의 위협 요인의 증가이다. 민주주의는 19세기 후반의 발명품으로 20세기에 성장했다. 그런데 21세기에는 그 성장이 멈출 가능성이 높다.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성장의 핵심 요소인 경제 성장, 단일 민족, 엘리트 중심의 여론 즉 공론장의 형성 등 세가지가 다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률은 제로로 가고 있으며, 이민과 난민 수용으로 민족 내부 구조에 균열이 가고 있다. 또 엘리트 중심의 공론장은 유튜브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 다시 말해 저성장, SNS, 다인종사회 주창그룹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여섯 번째는 지성의 3축인 대학, 언론, 종교의 몰락 즉 지성의 몰락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권위에 대한 존경의 철회가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2024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애쓰모글루는 <좁은 회랑>이라는 책에서 민주주의는 국가의 힘과 사회의 힘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만 움직여야 하는 취약한 체제라고 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좁은 회랑에 있다가 국가의 힘을 강하게 하는 쪽으로 이탈하면 독재가 되고, 사회의 힘 쪽으로 벗어나면 무질서한 사회가 된다. 우리나라는 지금 통치력이 사라진,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이 파손된 상태다. 심각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 어떤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우려된다.
적대 정치가 빚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헌이라는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1987년 헌법은 수명을 다했다. 또 비판적 중도층이 이념과 거리를 둬야 하며, 자격을 갖춘 정치인을 배양해아 한다. 그리고 양심, 상식, 도덕 등 사회적 기본 규범에 대한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
◆ 한국의 운명은?
대한민국은 대대로 두 개의 단층선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두 개의 단층선은 군사적 단층선과 역사적 단층선으로,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의 윤곽을 정해버렸다. 이런 국가는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군사적 단층선은 비무장지대를 동서로 긋는 휴전선이며, 역사적 단층선은 일제 제국주의에 짓밟힌 국가들의 반일 전선이다. 한국은 군사 단층선에서 미·일 동맹에, 역사 단층선에서 북한·중국에 속해있다. 우리는 이 두 개의 단층선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뛰어넘을 수 있을까? 조망적 시선으로 시야를 넓힌다면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인공지능이 이끌고 있는 21세기의 문명 전환은 두 개의 단층선을 초래한 국제적 국내적 요인들을 바꿔놓을 것이다.
<박시현 기자> shpark@it-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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