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마케팅] 파키스탄 – 안식을 맞이할 뻔 한 안식년 휴가
안녕하세요, 마케팅팀 최인영입니다.
이번달에는 여러분께 가볍게 ‘파키스탄의 맛’을 소개하려 합니다.
<파키스탄 음식 이야기>
– 짜파티: 화덕에 구운 얇은 빵
– 파라타: 얇은 밀가루 반죽을 튀긴 빵
– 니하리: 짜파티와 함께 아침에 먹는 고기 수프
– 케밥: 양념한 고기를 꼬치에 꿰어 구운 요리(우리가 아는 튀르키예 케밥이 아님)
– 굴랍자문: 밀가루와 우유 고형분을 튀겨 설탕 시럽에 담근 디저트
– 만투: 북부 지역 만두로 만두소는 향신료와 소나 양고기로 채움
– 찹쇼로: 훈자 지역 고기 파이로 훈자 피자라고도 불림
– 비리아니: 닭고기나 소고기 등과 함께 나오는 향신료 밥
– 카라이: 토마토, 고기, 향신료 등을 넣은 얼큰한 스튜(파키스탄에서 발견한 최고의 맛!)
– 탁카탁: 두꺼운 철판 위에 고기와 야채를 놓고 쇠주걱으로 탁탁탁 자르고 볶는 요리
– 야크 버거: 야크 고기를 패티로 사용한 고급 버거, 하지만 가격은 쌈
– 꿀피: 쫀득하고 달콤한 파키스탄 전통 아이스크림
– 음료는 라씨, 카와, 짜이, 망고 주스, 사탕수수 주스나 정체 모를 과일을 갈거나 으깬 후 얼음을 넣어 마심
<파키스탄의 달콤함, 천국편>
1. 많은 이슬람권 나라를 여행한 것은 아니지만, 보통 무슬림은 ‘손님’에게 매우 친절한 편이었다. 이번 파키스탄의 경우 특히 더 친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휴게소에서 멍 때리고 있으면 식당 주인이 자리를 안내하며 ‘카와'(설탕을 넣은 녹차)를 대접하고, 버스터미널에서 어떤 이에게 여행에 지친 내 모습 사진을 찍어달라 요청하니 사진은 물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 과일 한 봉지를 사주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압둘’형은 오토바이로 라호르 구석구석 가이드를 해줄 뿐만 아니라 밥도 사주고, 외국인에게 25배 입장료를 부과하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샬리마르 정원’ 침투를 위해 날 스카프로 위장시켰으나, 실패하자 비싼 입장료까지 대신 내주었다.
[얻어 먹은 카와, 과일, 그리고 압둘형이 사준 달콤한 음료]
2. 외국인은 많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어딜 가든 관심의 대상이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거나, 카메라가 없는 사람은 내 폰으로 자신을 찍어달라고 한다? 왜? 어떤 사람은 자신의 SNS에 올릴 동영상을 찍기도 한다. 한 번은 경찰 2명이 나에게 ‘니하오’하며 반갑게 인사해 주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네히, 코리아! (아니, 한국!)’라 말하니 갑자기 길 건너편 음료수 가게에 가자며 과일음료를 사줬다. 그리고는 자신의 폰으로 짧은 인터뷰를 부탁했다. 인터뷰 내용은 대략 ‘파키스탄 진다바드!(영원하라!)’
[자신을 찍어달라던 아저씨와 ‘니하오’ 인사를 건낸 경찰들]
3. 친절과 관심이 동시에 다가오면 이런 모습이다. 아침 일찍 동네 산책을 나갔다. 대부분의 상점의 문이 닫힌 이른 아침 유독 한 가게 앞에 사람이 붐빈다. 호기심에 다가간 그곳은 유명한 ‘라씨'(유음료) 가게였다. 사람들 틈에 끼어 나도 라씨 한잔을 주문한다. 1회용 컵이 아니어서 가게 앞에서 서서 먹고 가야 하는데 양이 상당하다. 라씨를 마시는 동안 사람들은 나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 부탁하고, 가게 점원은 라씨를 더 줄 기세로 나에게 빈 컵을 가져오라 한다. 역시나 배부르다는 나의 제스처는 무시한 채 라씨를 더 따라준다. 그래, 난 이들의 습성을 인터넷으로 배우고 왔다. 이들의 조건 없는 호의에 몇 푼의 돈으로 대응해 봤자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마침 가방에 아이들에게 주던 핑크퐁 비타민 몇 개로 보답하며 겨우 한국인 체면을 세울 수 있었다.
[이른 아침 이 라씨가게 앞 사람들, 그리고 친절한 점원]
4. 내가 좋아하는 콜라 1.5리터가 1000원? 그 밖에 망고, 사탕수수 주스도 500원, 1000원으로 너무 싸다. 한 끼 식사 5~6,000원, 파키스탄 스타일 헤어컷 2,500원, 근사한 전통의상 ‘샬와르 카미즈’ 상하의 한 벌이 2만 원, 사진을 찍어 달라 요청하면 정성을 다해 찍어주고, ‘앗살라말레이쿰’ 인사도 너무 잘해준다. 게다가 이놈의 인기… 관광지에 가면 여기저기서 사진 좀 같이 찍자 난리다. ‘South Korea’ 출신을 밝히는 순간 순식간에 BTS가 되어 버린다.
[파키스탄 스타일로 머리 잘라 주세요. 그런데 이 형들 머리가 왜 다 장발이지…]
[South Korean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
[전통의상 살와르 카미즈를 사려고 한국에서부터 벼르고 있었다]
5. 먼 길을 돌아 ‘길기트’라는 곳에 도착했다. 7인승 SUV 맨 뒷자리, 옆자리에 같이 짐짝처럼 찌그러져 온 사람은 오랜만에 고향에 방문하는 ‘길기트’ 주민이었다. 고통을 나눈 동지로서 오는 길에 ‘짜이’(밀크티)도 사주고, 이곳에 도착해 핸드폰 개통도 도와주고, 현지식 만두도 사줬다. 내가 돈을 낸다고 하면 ‘you are my guest’ 이러면서 돈 한 푼 못쓰게 한다. 나의 진짜 목적지인 ‘훈자’가는 버스 정류장까지 안내하고, 버스가 출발하기 전까지 곁을 지켜준다. 외국에서 먼저 다가오는 친절한 사람은 조금 경계하는 것이 안전한데, 문제는 여기에서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친절했다.
[옆에 흰 봉고차가 내가 탈 마을]
6. 파키스탄 북쪽 히말라야산맥의 끝, 카라코람 산맥이 이어지고 그 산맥 어딘가 해발 2,500m 위치에 ‘훈자’ 마을이 있다. 세계 3대 장수 마을, 배낭 여행자의 무덤으로 유명한 훈자에 도착했다. 만년설을 품은 높은 산에 둘러싸인 훈자, 내가 묵은 숙소 리셉션에만 앉아 있어도 힐링이 되는 그런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바이크 투어를 계획했다. 경치 좋은 곳에서 피크닉을 위해 가방에 음료와 과자를 챙겼다. 첫 번째 목적지 ‘호퍼 빙하’로 가는 길은 어느 순간 비포장도로로 변한다. 인적도 없는 비포장 내리막길, 나의 목숨은 하나다. ‘호퍼 빙하’ 따위야 인터넷으로 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가는 길 중간쯤 포기했다. 현명한 판단으로 돌아오는 길, 어떤 마을 청년이 나를 불러 세우더니 내 뒤에 올라탄다. 훈자는 히치하이킹이 흔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주객이 전도되니 뭔가 웃기다. 그런데 이 친구도 내가 얼굴을 가리고 있어 모르고 얻어 탄 눈치다. 나의 출신을 밝히자 ‘마샬 라~(오 마이 갓~)’ 즐겁게 외친다. 그렇게 나는 이 청년을 마을 입구 큰길까지 태워줬다.
[이 마을 히치하이커와 종이 쪼가리를 가지고 놀고 있는 마을 꼬맹이들이 너무 귀엽다]
[언덕 위 훈자의 왕이 살던 발티드 성이 보인다]
[발티드 성을 지키던 대포]
[나의 뒷모습을 보고 현지인이 현지어로 말을 걸었다.]
7. ‘파수 빙하’로 목적지를 수정한다. 내가 빌린 바이크로 어둠 속 운행은 무리다. 잘하면 해가지기 전 파수 빙하를 보고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 길을 재촉한다. 외길이라지만 내비게이션 없이 가는 길은 거리를 가늠할 수 없어 불안하다. 특히 끝이 보이지 않고 내부 조명이 없는 긴 터널을 지날 때 또다시 포기를 생각했다. 5분? 10분쯤 그렇게 달렸을까? 긴 터널을 통과하자 놀랍게도 파란 ‘아타바드 호수’가 나온다. 그렇다면 중간쯤 왔다는 얘기, 길을 돌릴 수 없다. 다시 한번 박차를 가해 달린 결과… 끝이 보이지 않고 내부 조명이 없는 두 번째 긴 터널을 만날 수 있었다. 목숨이 하나뿐인지라 터널 안에서 방향을 돌릴 수 없어 끝까지 달렸다. 그렇게 두 번째 터널 통과 후 한참을 더 달란다. 또다시 포기를 가늠하며 달리는데 어느 순간 도로에 한기가 서린다. 빙하 때문인가???? 진짜였다! 드디어 ‘WELCOME TO PASSU’ 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해!냈!다!
[놀랍도록 파란 아타바드 호수]
[WELCOME TO PASSU]
<파키스탄의 매운맛: 지옥편>
어디선가 들은 명언이 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쳐 맞기 전까지는…”
– 마이크 타이슨 –
1. 파키스탄에 오기 전 그럴싸한 계획은 이랬다. 과거 무굴제국의 수도 ‘라호르’를 시작으로, 배낭여행자의 3대 무덤 중 한 곳인 장수 마을 ‘훈자’, 간다라 미술이 발달했던 역사적인 도시 ‘페샤와르’를 방문한 후 인도-파키스탄 국경인 ‘와가보더’를 통해 인도로 입국할 예정이었다. 인도에서는 암리차르, 우다이푸르, 고아, 문나르, 마두라이, 그리고 뉴델리.
2. 라호르에는 무사히 도착했다. 공항 ATM의 문제로 비상금으로 가져온 10달러를 요긴하게 사용한 것까지 완벽했다. 2일간의 ‘라호르’ 여행을 마치고 훈자로 가야 한다. ‘훈자’까지는 아주 먼 길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20대의 배낭여행이 아니다. 불혹을 앞둔 어른의 여유로운 배낭여행이다. 먼 길은 비행기로 이동하면 그만이다. 역시 돈이 좋다.
3. 도착지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취소됐다. 공항에서 잠들어 비행기를 놓친 적은 있어도… 당신!? 어!? 니 마음대로 비행기가 취소된 적은 없었다. 나의 계획이 얼마나 완벽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다. ‘훈자’로 가기 위한 첫 번째 목적지 ‘길기트’까지 가는 다른 방법은 조사하지 않았다. 패닉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비행기로 ‘라호르-길기트’ 1시간 거리를 여러 번 환승 끝에 차로 26시간 만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라왈핀디까지 55km]
4. 이렇게 모험이 시작되었다. 우선 ‘라호르-길기트’ 직행 버스는 없고, 파키스탄 수도 근처 도시 ‘라왈핀디’에 ‘길기트’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한다. ‘라왈핀디’에 거의 다와 이곳에 2개의 버스 터미널이 있음을 알았다. 이중 내가 내려야 하는 터미널은? 당황해 허공에 ‘길기트, 길기트’를 외치니 다음 터미널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라고 안내해 준다. 5시간 만에 도착한 라왈핀디에는 비가 오고 있었고, ‘길기트’까지 가는 버스는 기상악화로 운행하지 않는 곳이 많았다. 결국 여기저기 묻고 물어 7인승 SUV 표를 겨우 구했다.
[내가 뭐 유튜버도 아니고, 이런 모험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5. 너무 좁은 뒷자리에 다리도 펴지 못해 찌그러져 탔다. 신이 인간에게 두 짝의 엉덩이를 준 이유는 이럴 경우를 대비해 한쪽씩 엉덩이를 교대로 혹사시키라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밤 8시에 출발해서 지금은 새벽 2시? 3시쯤 된 것 같다. 점점 더 높아지는 해발고도, 칠흑 같은 어둠, 가끔 창 밖에 마을 불 빛이 보인다. 아니, 이 정도 높이라면 차라리 하늘의 별과 나란히 달리고 있을 지도… 지옥 같은 이 길의 종착지가 천국이길 희망한다. 천길 낭떠러지, 비포장과 포장도로를 밤새 달려 양쪽 엉덩이가 모두 마비될 때쯤 ‘길기트’에 도착했다. 16시간 만이다. 다시 또 ‘길기트’에서 ‘훈자’까지 동네 버스로 3시간, 비행기 결항 확인 후 30시간 만에 ‘훈자’에 도착했다. 불혹을 앞둔 인영이는 숙소에 도착한 안도감에 방에서 혼자 엉엉 울었다.
[다리도 펼 수 없는 7인승 SUV 뒷자리]
[그렇게 도착한 훈자의 경치]
6. 파키스탄에 쳐 맞아 모든 의욕을 잃었다. ‘페샤와르’까지 갈 용기도 잃었다. ‘훈자’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왔던 길을… 젠장… 왔던 매운맛을 한 번 더 보기로 한다. 사실 내가 지나온 이 길은 악명 높다. 절벽을 깎아 만든 ‘카라코람 하이웨이’, 이 길은 날씨가 좋지 않은 겨울엔 자주 폐쇄되고, 절벽 아래는 인더스강이 거칠게 흐르고, 도로 가드레일은 산에서 굴러온 바위에 맞아 엿가락처럼 휘어 있다. 도로가 유실되었거나, 산사태로 자갈과 바위에 막힌 곳도 곳곳에 있었다. 이 길을 돌아가려 하니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7. 이런 젠장. 이건 뭐… 말로만 들었던 산사태가 바로 내 눈앞에서 일어났다. 도로가 좁아 차를 돌릴 수 없는 내가 탄 버스는 후진으로 바로 앞 산사태와 멀어지고 있었다. 버스 안 승객들은 모두가 절벽 쪽 창밖을 바라보며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지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눈앞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보니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만약을 대비해 운동화로 신발을 갈아 신었다. 이 버스엔 갓난아이도 타고 있었는데 만약 사고가 나면 저 아이는 무슨 죄일까, 나도 집에 어린아이가 두 명 있는데 내가 죽으면… 만감이 교차한다는 게 이런 건가?
[산사태가 멈추고 진흙과 돌이 무릎 높이까지 쌓여있다.]
8. 다행히 차량의 피해 없이 산사태는 멈췄다. 그리고 도로의 흐름도 멈췄다. 산사태의 잔해를 치우고, 반대편 차량과 교대로 그곳을 빠져나오기까지 4시간 동안 도로에 갇혀 있었다. ‘훈자’에서 빙하가 녹은 장수의 상징 ‘훈자 워터’를 마셔 걸린 장염으로 이동 중엔 아무것도 먹지 않는 고행을 하고 있는데, 4시간은 너무 길다. 하지만 다행히 갇혀 있는 이곳 경치가 끝내주긴 하다. 같은 버스를 탄 파키스탄 군인 청년이 저기 보이는 산이 바로 ‘낭가파르바트’라 알려준다. 육안으로 ‘낭가파르바트’도 보고… 이건 완전 러키비키잖아!
[장염의 첫 번째 용의자, 훈자 워터]
[막힌 도로 뒤에 보이는 산이 바로 ‘낭가파르바트’]
<파키스탄의 물, 무(無) 맛: 연옥편>
1. 카슈미르, 인도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휴양지다. 아름다운 자연, 시원한 날씨 우리에겐 캐시미어 원산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곳은 인도-파키스탄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2025년 4월 22일 카슈미르의 휴양지 파할감에서 인도 민간인을 상대로 한 테러가 발생했다. 한국에 있는 사람이라면 별로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을 이 뉴스가 나에게 영향을 미칠 확률이 조금이라도 존재할 수 있을까?
2. ‘페샤와르’는 포기하고 왔던 길을 따라 다시 ‘라호르’로 돌아왔다. 익숙함으로 안정감을 주기 위해 처음 묵었던 숙소로 향한다. 긴장과 피로 그리고 장염, ‘훈자 워터’를 향한 갈증은 탈수로 이어지고 있다. 몸상태가 안 좋아 ChatGPT에 조언을 구했다. 뜻밖에 내 상태는 아주 흔한 현상으로 전문용어로 traveler’s diarrhea, 즉 물갈이었다. 어른의 배낭여행으로 타지도 못할 비행기 값으로 사치를 부린 바람에 숙소비를 아낀 상태다. 이 몸상태로 이동은 무리지만 바퀴벌레와 함께하는 이런 숙소에 하루 종일 박혀있자니 공황장애가 올 것만 같다. 어디든 이동하려면 에너지를 위해 먹어야 하고, 먹으면 화장실에 가야 하고, 이동 중엔 화장실을 갈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 어쩔 수 없이 먹지 않고 몸에 쌓인 지방을 태우며 다른 숙소를 찾기로 한다.
[이슬람 국가의 연옥에서 만난 서양인 모습을 한 부처, 이것이 바로 간다라 양식]
3. 1,000루피나 더 비싼 숙소로 옮겼다. 1,000루피… 한국에선 국밥 한 그릇값도 못하는 5,000원 투자로 하루 종일 갇혀 지낼 깨끗한 숙소를 구했다. 계획상 이틀 전 라호르를 떠났어야 했는데, 인도-파키스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파할감 테러’로 시작된 이번 갈등은 말로만 듣던 나비 효과를 일으켜 나의 계획을 가냘픈 나비 다리로 철저히, 구석구석 짓밟았다. 원래 이동 계획이었던 ‘와가 보더’ 국경은 폐쇄되었고, 심지어 상황은 악화되고 인도의 파키스탄 포격, 파키스탄의 인도 전투기 격추로 인해 파키스탄은 48시간 영공폐쇄, 인도는 국경 근처 공항폐쇄를 결정했다. 이로 인해 나의 플랜 B였던 제3국을 통한 이동도 비행기가 지연되다 결국 모두 취소되었다.
4. 연옥의 시간은 길다. 물만 마셔도 화장실 행, 관광은 포기했다. TV 속 파키스탄 드라마는 지루하고, 파키스탄 뉴스는 전쟁 소식으로 불안만 조성한다. 그러던 차 뜻밖의 트럼프의 중재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파키스탄을 빠져나갈 새로운 비행기 티켓을 찾았다. 하지만 실제로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까지는 비행기가 또 취소될 수도 있고, 언제까지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불안했다. 예전에 공항에서 잠이 들어 비행기를 놓친 이력이 있어, 새벽 5시 비행기를 기다리며 한숨도 자지 않았다. 호텔을 떠나며 만약을 대비해 체크아웃 시간까지 방을 치우지 말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공항으로 떠났다. 다행히 천국행 비행기는 정상 운행하였고, 그렇게 파키스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몸도, 마음도, 여행 스케줄도 모두 망가져 인도여행은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도착한 천국에는 مرحباً بكم في دبي 라 쓰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