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호 PM, Management Contents.

 

ERP 시장에서의 품질은 꽤 상대적인 것 같습니다. 좋은 제품의 의미가 기업에 따라서 사뭇 다르고, 산업 표준 혹은 거의 모든 기능을 수용하는 패키지와 같은 개념을 말하기는 매우 쉬우나 그 기술의 구현은 아직 진행형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 고객 경험, 줄여서 CX(Customer eXperience)가 화두로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자주 일컫던 VOC(Voice Of Customer)와 무엇이 다른지 언어 감각적으로 바라보면, CX란 아마 고객의 환경에 대한 이해와 그로 인한 제약이나 사고방식이나 관리 역량 혹은 수준 등을 포용하면서, 그 이해의 바탕 위에 고객 솔루션의 접근 방법을 탐구해 본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몸담고 있는ERP 분야에서 한동안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 바로 ERP 패키지의 품질과 그것을 도입하여 사용하는 고객 기업의 수준이었습니다. 이상적인 ERP Package로서 레고 블록과 같이 원하는 모델을 구성하는 기능들을 모아서 이어만 주면 되는 개념으로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은 이상일 뿐 현실은 레고와는 차원이 다르게 복잡하기도 하지만, 그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는 레고는 한 사람의 주관과 상상으로 세워진 비전이 있는 반면에, ERP 시스템은 서로 다른 비전과 기대와 필요를 가진 많은 당사자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잘 만들었다는 것과 좋은 제품과 팔리는 제품 사이에는 일치하지 않는 요소들이 있고, 그래서 기준이 여럿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위 주제로 돌아가서 ERP 패키지의 품질이 기술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그것을 구매하는 기업 고객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패키지를 선택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품질이 좋으면 당연히 어떤 고객에게나 매력적일 것 같은데 그 구매 동기와 결정 요인에는 여러 관점이 있게 됩니다.

그 구매 의사 결정 과정을 살펴보면, 한 쪽에 패키지가 진열되어 있고, 그 의사 결정의 반대 편 끝에는 고객의 관리 수준이 있는데, 그 사이에는 정보화 책임자, CEO, 현장 사용자, 관리자, 그리고 ERP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컨설턴트와 서비스 담당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구매 의사 결정이 일어나는데 그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의사 결정 경로와 경우의 수는 2의6승, 즉 128가지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다시 각 6개 요인의 관리 수준을 상중하 3가지로 나눈다고 한다면 그 경우의 수는 통제가 불가능할 것입니다만, 거기까지는 고려하지 않더라도, 6개 요인 중에서 셋 이상의 이해 당사자의 이해가 맞게 되면 과반수가 넘게 되므로, ERP 패키지 도입 의사 결정이 되거나 그 이후 구축의 성공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각 요인들 간에는 의사 결정 가중치가 주어져야 하겠고, 그러면 그 과정은 더욱 복잡해 질 것입니다.

이쯤 되면 좋은 제품의 개념보다는 경쟁력 있는 제품의 개념으로 사업 전략을 다시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역시 좋은 ERP Package의 개념에 대해서 나름 확고한 평가 기준이 있었으나, 실제 시장에서는 도무지 제 기준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상황으로 전개되는 것을 보면서, 그러나 그 이후에도 오랜 기간, 스스로를 돌아보면 상황으로는 잘 이해가 된 듯 보였지만 전혀 행동적 사고로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만, 이제는 좀 알 것 같은 느낌입니다.

고객 기업의 관리 수준이라는 변수에 대해서 중요한 Fact를 상기해 보면,

대부분의 중소기업에 (매출 천억원 이하) 있어서, 기업 내부에서 정보화에 대한 접근 방식은 상당히 단편적이며, 일관된 계획 프로세스는 거의 도입하는 곳이 없는 것 같고, 마치 축구에서 동네 축구처럼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공을 쫓아가느라 분주하고 어지러운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업의 임직원의 경우에도 내 업무가 아닌 영역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타 부서간의 단절된 부분을 이어가는 Cross Functional Process의 도입은 초기의 구호일 뿐 막바지에는 거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정보화 담당자가 기업의 CEO 혹은 대주주 격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현상으로 귀결되면서, 결국은 적당히 버무려지는 상황으로 귀결됨을 보게 됩니다. 초기 ERP업종에 몸담으면서 다소 의아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것은, 당시에 꽤 신망 있는ERP 컨설턴트와 한 기업을 방문해서 상담을 하는데 그 고객에게 그 컨설턴트가 패키지이니 바꿔드릴 수 없고 그대로 따르셔야 한다고 너무나 당당하게 대응하는 모습에, 혼자 속으로는 참 터무니없이 용감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서 ERP 패키지와 그 시장에 대한 상대성을 경험하고 나서는 그 컨설턴트가 참 능력 있는 사람이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아마도 이미 그 기업을 경험했고, 그래서 거기서는 패키지가 제공하는 기존의 기능도 감당하기에는 넘치는 수준이었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때 비로서 느낀 것은, “아하~ 제품도 중요하지만 고객을 알아야 하는 거구나”하는 것이고, 아마 그것이 요즘 일컫는 CX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염려되는 것은, 기우이겠지만, 이러다가 이상적인 패키지에 대한 기준과 비전이 엷어지고 각 기업의 수준에 따라서 (대부분 국내 중소 기업의 수준이 패키지 수준보다 낮다고 가정한다면) 적당히 버무리는 재주만 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특히 수주가 활발한 시즌에는 더더욱 그런 기술이 환영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은 그저 기우이기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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