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30


隱遁의 辨

대한민국 역사상 미증유의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민중의 힘에 의해 대통령의 탄핵 소추가 의결되었습니다.
이는 그야말로 권력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며, 구질서의 체계를 대번에 무너뜨리며 카오스의 상황으로 돌입하게 만드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새 질서의 탄생을 기대하는 희망보다는 270 여 명의 직원을 이끌어야 되는 선장으로서 닥쳐올 불확실과 혼란의 파도를 어떻게 넘어야 할까에 대한 걱정이 태산 같아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2016년 전반기에 창사 이래 처음으로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서 기뻐했던 일이 4사분기에 평상 시 분기 수주 실적의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결과를 보면서 이 혼돈의 시기가 길어지면 이제 생존을 심각히 우려해야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갑상선을 떼어 내서인지 환갑을 넘어서인지 매사 의욕이 없어지고 하루에 하는 일의 양도 한심한 수준으로 현저히 떨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체적으로도 시력, 청력이 점점 약화되며 노화가 진행되는 것이 느껴지니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지난 24년 간 좋은 회사를 만들려고 저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永林院도 인원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도전이나 혁신보다는 위험 회피와 편안함을 추구하는 조직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도 듭니다. 지식근로자들한테 위에서 시켜서 일하게 하는 조직엔 미래가 없다라는 믿음으로 작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팀장 없는 ‘팀 단위 자율 조직’이 더 이기적이 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스러워지는 것은 또 어찌해야 할지 답답해집니다.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갈등의 도가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진데 점점 더 갈등의 간극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역 갈등, 세대 간 갈등, 빈부의 갈등, 보수와 진보의 갈등 등 언젠가 그 갈등들이 폭탄이 되어 우리 사회를 큰 혼란으로 몰아넣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정치의 제일 목적이 갈등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우리 정치는 갈등을 더 부추김으로써 표를 더 얻는 전략으로 치닫고 있으니 언제 우리 사회가 갈등이 줄어들어 평화롭고 안락한 삶을 보장해주는 선진 사회가 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미쉘 푸코가 현대 문명은 지식과 돈과 권력이 하나의 소유적 지배의 삼원(三元) 체제를 구성해 왔다고 지적했듯이, 사람들은 가질 만큼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욱 더 많이 가지려 하고, 그 결과 인간 간의 갈등과 빈부 격차는 갈수록 커져 가고 있습니다. 에리히 프롬도 현대에는 사물들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세련되게 자신의 소비 대상으로 삼을수록 자신의 존재도 더 풍요롭고 세련되게 될 것이라고 믿는 극단적 소비주의에 끌려감을 경고하였습니다.

‘한 사회의 정신문화가 소유적 희망만을 삶의 동력으로 여기면, 그 사회는 그만큼 만족과 불만의 두 극단에서 늘 요동친다’는 김형효 교수의 말씀이 귓가를 맴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일제 36년의 핍박과 수탈을 지내면서 또 육이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 과정에서 잃어버린 소중한 정신 문화를 되찾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돌아가야 할 때를 준비해야 하는 이 나이에 뒤늦게 철이 드는 것을 주책이라 해야 할지 용기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더 이상 나이 들기 전에 한번은 도전해 봐야 할 일이라는 소명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만물은 서로 다르므로 서로 의존하면서 존재한다고 합니다. 나무의 존재는 나무가 아닌 존재- 흙, 물, 공기, 햇볕, 바람 등-들과 다름과 동시에 다르기에 상호 협력 가능함으로써 그 존재가 온전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삶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함께 살 길은 서로 갈등과 투쟁을 통해 미움과 한을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네 일이 곧 내 일이라는 하나의 마음(一心)이 되는 길이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삶을 새롭게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카오스로부터 새로운 질서가 싹트는 것을 창발이라 하며 이 창발이 생물의 진화뿐 아니라 사회의 발전과 새 문명 발생의 계기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창발은 카오스의 가장자리이자 중도비유비공(中道非有非空-모두 부정 또는 모두 긍정하는 생각을 넘은 가운데 길) 세계에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제 그간에 맺어왔던 복잡한 세상과의 인연을 잠시 유보한 채 구도자의 심정으로, 무명(無明)에서 깨어나 마음의 광명을 다시 찾고자 또 그 깨달음을 작은 조직(영림원소프트랩) 내에 조직의 문화로 자리 잡게 하는 일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북경에서 나비가 날개를 펄럭인 것이 뉴욕에서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새로운 창발을 꿈꾸며 일단 3년 간 휴대전화 번호도 정지시키고 은둔하고자 하는 무모함을 그간에 인연을 맺어왔던 분들께 해량하여 주시기를 청합니다.

권영범 올림

 

Comment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