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Letter] “성년이 된 永林院 에게2(2013.06.01)”

지난 번 편지에는 네가 다섯 살 되던 해에 첫 ERP 제품 『K.시스템』 발표까지의 얘기를 담았었지. 당시 패키지 가격을 5,000만원으로 정하고 기자까지 포함하여 50-60 명 정도의 참석자를 모아 신제품 발표회를 했는데 반응이 별로 신통치 않았단다. 그 중에 2-3군데 정도 관심을 보인 회사를 찾아 다니며 몇 번씩 상세 데모를 직접 하며 다녔는데 첫 고객은 아마도 발표 후 5-6 개월 지난 시점에서 계약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제품이 안 팔리니까 회사에 맞게 추가 개발까지 무상으로 해주는 조건으로 영업을 했고, 영업비용도 채 안 되는 5,000만원에 계약을 했지만 실제 일은 받은 돈의 거의 2-3배의 비용이 들어 갈 정도로 프로젝트가 지연이 되면서 1998년은 IMF가 온 다음 해이기도 했지만 永林院 너한테는 매우 우울했던 한 해였지. 그런 프로젝트가 서너 개가 되면서 근본적인 판매전략을 재검토하게 되었고, 못 팔아도 좋으니까 ‘No Customizing’  조건의 영업만 하기로 하였고, 그 사이에는 정식품 등 몸 파는 SI 성 프로젝트를 하면서 버티기로 했었지. 이 결정이 오늘의 네가 국내 일등 ERP 회사가 되게 된 터닝 포인트였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1999년이 되면서 몇 개의 실제 운영되는 고객 레퍼런스가 생기고, 당시에 IT 수요에 혁혁한 공을 세운 ‘Y2K(서기 2,000년이 되면서 그 전에 개발했던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연도 표기에서 앞자리의 19를 뺀 뒤의 두 자리로 해놨기 때문에 2000년이 시작되면 큰 혼란이 올 것이란 과대 위협 사건)’ 분위기 덕이었는지 10 군데 이상의 신규 고객을 확보하면서 네가 죽지 않고 회생할 수 있게 되었단다. 그런 걸 보면 永林院 너한테는 보이지 않는 신의 가호가 따라 다닌다는 느낌을 갖게 된단다.

 

 98년부터 국산 ERP 회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99년엔 꽤 많은 ERP 회사들이 적극적인 홍보 마케팅 등을 통해서 오히려 영림원보다 외형적으로 더 커지기 시작했단다. 지금 우리 회사에도 그 때의 경쟁사 출신 직원들이 일부 근무하고 있는데, 그 당시 영림원보다 잘 나간다고 하는 ERP 회사들이 소프트파워, 하이네트, 지앤텍 등이 있었고, 2001년엔 K.시스템을 베낀 듯 UI가 매우 비슷한 ‘이글 ERP’를 앞세운 코인텍은 라디오와 TV 광고까지 하고 일본 미쓰이 그룹에 수출 계약을 하는 등 새로운 풍운아로 기세를 올렸었지.

 

 99년 신정 연휴 때 당시 개인 사업을 하던 길찬익 대표로부터 연락이 와서 롯데제과 ERP를 Y2K에 대비해 새로이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하지 않겠느냐는 전화를 받고 매출 1조나 되는 회사라 커스터마이징이 많을 것 같아 안 하겠다고 거절을 했었지. 그 후 2월에 다시 권유하는 연락이 와서 곰곰 생각해 보니 당시 외산 ERP업체 SAP와 오라클에서 ‘국산 ERP는 아주 작은 회사에나 쓸 수 있지 좀 큰 기업엔 쓸 수 없다’고 적극 폄하하던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면 롯데제과 같이 상징성이 큰 기업에 우리 솔루션을 적용한 레퍼런스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추진하기로 했고 급속하게 계약이 진행 되었지.

 

 그런데 롯데제과 같이 큰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인력이 필요했는데 우리 회사엔 준비된 인력이 없어 우리는 솔루션을 제공하면서 회계와 원가 부분만 인력을 투입하기로 했고, 지앤텍에서 영업/물류 부문을, 지앤텍의 하청회사에서 생산과 자재 부문을 맡기로 하고 롯데정보통신의 많은 인력들이 각 모듈별로 투입되면서 풀타임의 현업 TFT인원 6명을 포함 도합 60 여 명에 이르는 프로젝트의 PM을 내가 맡게 되었단다. 투입된 우리 회사 직원들은 몇 명 안되었는데 당시 신입이던 정수환님이 아마 처음 나간 프로젝트였던 것 같다.

 

 엄청나게 많은 부분을 개발하면서도 Y2K 문제로 3월 초부터 10개월도 채 안되는 기간 안에 시스템을 Open해야 하는 관계로 거의 처음부터 주말을 포기한 프로젝트였는데, 완전한 연합군으로 구성이 되다 보니 각 구성원들의 역량을 몰라 계획된 시점에 제대로 돌아가는 프로그램들을 완료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 정말 하루 하루가 피 말리는 전쟁의 삶이 계속되었고, 더 힘들었던 것은 프리랜서 외주를 투입했던 지앤텍에서 한 달에 한 두명 이상 투입인력을 교체하는 바람에 좀 가르쳐 놓으면 사라지고 또 가르쳐 놓으면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까지 밤을 새면서 미완성된 물류 프로그램의 로직까지 PM이 들여다 봐야 했던 아주 힘든 프로젝트였었단다.

 

 

 

 물류 프로그램이 완성되지 않은 채 어쩔 수 없이 1월 초 Open은 했으나 그야말로 전국에 있는 영업소와 매일 전쟁하듯이 데이터 맞춰 가면서 근 두 달 만에 일일 마감을 할 수 있게 되는 다시 기억하기조차 싫었던 나날이었다. 그 때 결심했던 게 연합군으로 구성한 프로젝트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1년 여 회사를 비웠더니 뭔가 CEO가 자리를 빈 것에 따른 보이지 않는 엉성함이 느껴지면서 다시는 PM으로 나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이 되면서 Y2K 버블에 이어 ‘닷컴 버블’이 불어 코스닥에 등록해 수천 억씩 개인 자산이 는 졸부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마치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골드 러시처럼 ‘xxx.com’이란 이름의 회사가 수도 없이 생겨나는 시절이었단다. 그 와중에 우리 회사도 KCC정보통신으로부터 액면가의 8배수로 20억 원의 주식 투자를 받게 되었고, 그 자금으로 우리 회사가 더 이상 몸 파는 SI성 프로젝트 수행 조직을 전부 ERP 비즈니스를 하는 쪽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지. 여유 자금을 좀 더 가치 있는데 쓰자는 목적 하에 4분의 경희대 교수들한테 1년 간 1억 원의 집필 비용을 내고 ‘CEO를 위한 신경영학’ 책자를 공동 집필 발간하여 고객과 가망 고객한테 마케팅 목적으로 잘 활용하게 되었단다.

 

 2000년에 전문 컨설턴트 양성을 위한 3개월 과정을 1999년 12월 이사 간 역삼동 사옥 3층에 새로 마련한 교육실에서 처음으로 실시를 하였고, 1기로 수료한 이필섭 님과 정성순 님 그리고 황구현님이 지금까지 함께 일하게 되었고, 그 이후 25차에 걸쳐 컨설턴트 양성과정을 운영해 많은 사내외 컨설턴트를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었던 셈이지. 그 역삼동 사옥엔 5층 위에 옥상 공간이 있었고, 그곳은 전직원 태극권 수련 및 영업팀장 임승환님의 숙취 지각 등에 대한 벌로 영업팀 단체 기합 등을 실시했던 추억이 서린 곳이기도 하지.

 

  2001년 3월에 정부가 ‘1만개 중소기업 정보화 지원 사업’을 벌여 ERP 도입 기업에 도입 기업이 실 부담한 금액만큼 지원하되 2000만원까지 무상 지원해 주는 정책을 실시했는데, 이 때 공식 등록한 ERP 업체 수가 거의 500 개에 달했고, 이어서 시행된 3만개 지원사업에선 3000만원까지 지원금을 늘렸는데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형식적으론 기업이 돈 낸 것 같이 꾸미고 돈 한 푼 안내고 서버까지 공짜로 주는 등 시장이 매우 혼탁해졌던 기간이었단다. 당시 우리 K.시스템은 1억이 정가였는데 경쟁업체들이 3,000만원 수준으로 파니까 우리도 가격을 내려야 한다고 아우성들이었지만 1억 이하로는 못 팔게 방침을 준수하게 했던 게 많은 경쟁사들은 몰락하고 우리는 살아 남게 된 배경이 된 셈이지.

 

 2002년이 되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뒤늦게 Web의 중요성을 깨닫고 대대적 기술 개발을 한 닷넷 플랫폼을 확산시키는 열기가 서서히 고조되어 가는 시점이었고, 우리도 새로운 플랫폼으로 업그레이드를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던 차에 롯데정보로부터 롯데칠성음료의 ERP를 추진하는데 참여해 달라는 연락이 왔지. 다신 외부에 장기간 나가는 일은 안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많은 돈을 들여 닷넷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도 해야 할 상황이니 롯데 측에서 닷넷 플랫폼으로 하겠다면 내가 PM을 맡아 순수 우리 직원들로 진행한다는 조건을 받아 들여 또다시 1조 이상 매출의 대기업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단다.

 

 당시 영림원 직원의 거의 절반 정도 되는 스물 서너 명의 엔지니어를 이끌고 수주 금액 24억의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고, 역시나 새로운 기술로의 전환에 따른 신규 프로젝트였기에 시간과의 싸움이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단다. 특히 내가 2003년 7월엔 뉴욕 주립대 석사 과정 졸업을 위해 한 달 여간 미국에 가야 하기 때문에 신시스템 Open하고 한 달 정도의 안정화 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시간 상의 제약으로 6월 Open을 위해 그리고 6월 Open 이후 매일 데이터와 버그와의 싸움 때문에 많은 직원들이 며칠씩 집에 가지도 못하고 수염도 못 깎고 지내던 모습이 훤하구나, 정수환님, 송기연님, 정재영님, 당시 병특이던 애송이 서윤석님 등…

 

 3,000 여 명의 롯데칠성 영업사원들이 저녁 5-6시 경에 모두 당시의 최신 모바일 기기인 PDA에 입력했던 매출 및 수금 데이터를 일시에 올리는 부하 때문에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지 않았던 탓에 빠진 데이터를 찾아 다시 올리고, 그 날에 제대로 데이터가 안 올라 가서 재고 데이터가 맞지 않아 다음 날 시스템으로 출고를 못하고  수기로 했다가 며칠 씩 지나서 입력하는 등 매일 전쟁을 치루다가 다행히 한 달 여가 되면서 일일 마감을 할 수 있게 되어 난 뉴욕에 가서 졸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단다, 그 때의 내 나이가 50이 된 해였지…

 

 롯데칠성 성과물을 바탕으로 K.시스템의 세번 째 업그레이드 제품인 G&I를 출시할 수 있었고, 당시엔 획기적인 웹 화면으로 개발되어 타 제품보다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덕에 너는 2004년 72억,2005년-2007년 90억, 2008년 100억까지의 순조로운 성장 가도를 갈 수 있었단다. 역시 IT 솔루션 기업은 R&D에 의한 지속적인 신제품 개발이 경쟁력의 근간이 됨을 확인할 수 있겠지. 이것이 내가 60이 된 이 나이에도 PM을 맡아 미래에 대비하는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는 까닭이란다.

 

2004년 글로벌 시장 특히 IT 시장 규모가 우리나라의 10배가 되는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한 개발 투자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고등학교 선배 분께서 일본에서 SW 개발 서비스 비즈니스를 오래 해 오셨는데 그 분의 소개로 일본의 파트너사와 공동 개발의 협약을 체결해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하였고, 그 당시 기분으로는 늦어도 3년 후부터 일본에서 ERP를 본격적으로 팔 수 있겠다는 꿈에 마냥 부풀어 있었지. 그런데 품질을 중요시 하는 그것도 너무 중요시하는 일본의 문화를 몰랐던 무지에서 생겼던 헛된 꿈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지. 결국 개발하는데 2년, 테스트 하는데 3년, 파일롯 프로젝트 하는데 2년 도합 7년이 지난 후에야 판매하기 시작했고, 우리 회사 규모로는 꽤 큰 40 여 억 원의 누적 투자를 하게 되었던 셈이지. 아직 3 개 밖에 못 팔았는데 일본 경기가 좋아지니 이제 좀 팔 수 있을는지 기대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비싼 수업료를 냈으니 그것을 바탕으로 어떻게든 일본 시장에서 크게 벌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되겠지…

 

품질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우리의 품질 의식은 너무 후진적으로 뒤떨어져 있는 것 같다. 기본적인 테스트도 안 하고 개발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개발자가 상당히 많이 있고, 그것을 테스트 할 매니저나 컨설턴트들도 테스트를 제대로 하지 않고 고객한테 설치한 후에 에러가 잡혀지는 경우도 수없이 많고, 특히 신제품을 발표하고 나서는 거의 1-2년이 경과해야 제품의 안정화와 normal한 프로세스를 에러 없이 쓸 수 있게 할 정도이니 참으로 민망하고 고객한테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단다. 이제 네가 유명해질수록 품질로 인한 위험이 더 커져갈 것이 틀림이 없으니 앞으로는 어른답게 에러 없는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되어야 하겠다. 인터넷과 SNS 상에서 한 회사에 치명적인 사건이 확대 유포될 수 있게 된 세상이라 이제 흠 잡힐 일을 삼가하는 게 매우 중요해졌다는 얘기이다.

 

이번 편지도 이 정도에서 그쳐야 할 것 같다. 더 길게 써도 읽는데 지루할 것이고, 한번에 이만큼 더 써야 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말이다. 더구나 내일이 1일이지만 내일 여러 일정이 있어 회사에 올 틈이 없고 오늘도 약속이 있어 곧 나가야 하니 예서 마치는 것을 이해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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