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자존을 생각하며”

 

 

2016.03.01

 

오늘은 삼일절로 일제 강점기 암울했던 시절 1919 3 1일에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했던 운동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물론 민족의 선각자들이 주축이 되어 용기 있게 이끌었던 거사였지만 그 해 1 21일 건장하셨던 고종황제께서 식혜를 마신지 30분만에 급서하신 독살설에 대해 온 조선 백성들이 통분함으로써 들불처럼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운동이 되었던 것입니다.

 

삼일운동은 한민족의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어 국내외의 다양한 독립운동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고, 일제의 식민 시책을 무단통치에서 기만적 문화통치로 전환하게 만들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베이징대의 교수와 학생들이 중심이 된 반제국주의 혁명운동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의 54운동에 영향을 주었고, 이는 중국 공산당의 결성으로 이어짐으로 중국의 공산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기념일을 단순히 쉬는 날이어서 좋아하는 것만이 아니라 과거 역사에서의 교훈을 되새기며 새로운 미래 역사에 대한 비전을 그려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이르는 약 100년의 시기가 우리나라와 중국에는 매우 치욕적이고 암울한 시대였는데 반해 이웃 일본은 역사 상 아마 가장 화려했던 욱일승천의 시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 역사 변혁의 시작은 동아시아 삼국 내부로부터가 아니라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의 침략 야욕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세계사에서 가장 더러운 전쟁이라 일컬어지는 영국이 일으킨 마약전쟁으로 동아시아 삼국의 100년에 걸친 비극과 희극의 드라마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중국으로부터 차를 수입하고, 자국의 모직물과 인도산 면화를 수입하던 영국이 엄청난 차 수입의 급증으로 무역적자가 심해지고 이를 결제할 은이 대규모로 부족해지자 중국의 노동자들인 하층민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끈 아편을 국가 차원에서 전략 수출품으로 밀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청나라가 임칙서를 내세워 강력한 아편 단속을 하자 영국은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홍콩을 할양 받고, 상하이 등 다섯 개의 무역항을 개항시키게 되었습니다.

 

아편전쟁 이후 서양세력의 진출에 대한 불만과 국가 재정의 악화, 그리고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지배층인 이민족 왕조의 통치에 대한 불만 등이 팽배했던 농민을 중심으로 1851년 홍수전이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킵니다. 2년 만에 남경을 함락하여 그들의 새로운 천국의 수도로 삼고, 토지제도의 개혁 및 전족 등의 악습 철폐, 남녀 평등, 아편과 술의 금지 등의 사회 개혁을 내세워 높은 지지를 얻었습니다.

 

청의 정규군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던 차에 증국번이 조직한 ‘상군’이라는 한족자위 집단군과 서양의 열강이 조직한  ‘상승군’의 지원에 힘입어, 또 천국 지배층 내분으로 홍수전이 지병으로 사망한 후 1달 여만에 남경이 함락되고 잔존세력들이 4년간 저항하다가 1868년에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내전으로 2,000만 명 이상이 사망했을 정도로 엄청난 세력을 떨쳤던 혁명군의 영향으로 청 조정의 취약함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민심 이반도 가속화 되게 됩니다.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의 폐해와 그 이후에 전개된 서구 열강들의 침략 근성에 대해 네덜란드 상인들로부터 상세하게 전해 듣고 깜짝 놀란 일본은 265년 간 지속되어 온 도쿠가와 막부체제의 막을 내리고 ‘대정봉환’이라는 이름으로 정권을 천황한테 넘기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1868년 통치를 시작한 메이지 천황을 중심으로 서구와 같은 체제로의 유신을 단행하고 한자 문화권의 아시아 전역을 지배하고 미국과 태평양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한편 조선은 아편전쟁이나 태평천국의 난에 대해 북경의 청국 관리들을 통해 지나가는 얘깃거리일 정도로 전해 듣고대국의 남쪽 일부에서 일어난 소요 정도로 생각하며 ‘조선은 궁핍해서 서구 열강들이 매력을 못 느껴 침략 안 할 것’이라고 낙관하면서 백성을 쥐어짜는 세도 정치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1894년에 학정과 기아에 허덕이던 농민들이 부패 척결과 내정 개혁 등의 기치를 든 동학의 지도자들과 동학교도들과 함께 무장 봉기를 일으킵니다.

 

동학군의 위세가 전국 규모로 막강해지자 조정은 썩은 정규군 가지고 당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대국인 청나라 군대를 끌어 들이게 되고, 이를 빌미로 텐진 조약을 들먹이며 일본의 신식 군대가 진입하여 잔인하게 학살을 하며 동학군을 진압한 후 일본은 힘으로 조선의 내정을 개혁하려 들었고, 이 때문에 청일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 일본은 야욕을 들어내고 1905년에 을사보호 조약에 이어 1910년에 조선을 강점하고 그들의 식민지로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삼일운동에 나섰던 선각자들의 용기와 기백은 가상하다 할 수 있으나 이미 나라를 빼앗긴 이후에 벌어진 ‘엎질러진 물’이라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었던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나라가 부강하고 자주 독립을 이룰 수 있게끔 사전에 방비를 하지 못한 죄는 비단 나라를 팔아 먹은 을사오적의 매국노들한테만 책임 지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 가는지에 무관심 했고, 자기 식솔들 챙겨 호의호식하려는 데만 관심이 있었던 대부분의 양반들 모두가 책임을 졌어야 하는 안타까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하는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행태를 보면 다른 어떤 나라도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사드 배치를 두고 일어나고 있는 중국과 미국의 언행은 정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란 말을 연상하게 됩니다. 우리의 힘으로 자주적으로 통일을 해 갈 수 있는 전략을 국가 전략의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은 민간 차원에서 민족의 동질성을 유지하면서 북한 동포들한테 희망과 바램의 표상이 될 수 있는자유롭고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올바른 길을 묵묵히 걸어 가야 하겠습니다.

Y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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