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5회 영림원CEO포럼] 저성장기를 극복한 일본 강소기업의 생존전략

“일본의 성공한 강소기업은 어떻게 저성장기를 극복했나?”

오태헌 경희사이버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155회 영림원CEO포럼 강연

 

[아이티비즈 박시현 기자] “한 분야에 까다롭게 매달리고, 무형의 고정자산으로 ‘본업 사수의 경영’을 지킨 것이 일본의 저성장기를 극복한 강소기업의 공통점이다.”
오태헌 경희사이버대학교 일본학과 교수가 10일 155회 영림원CEO포럼에서 ‘저성장기를 극복한 일본 강소기업의 생존전략’을 주제로 강연한 요지이다.

오 교수는 이번 강연에서 일본 저성장기에서 배워야할 점과 저성장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일본 강소기업 사례 4가지를 소개했다. 다음은 강연 내용

◆일본 저성장기에서 배운다 = 한국의 GDP 성장률 추이와 일본의 20년전 GDP 성장률 추이를 보면 겹치는 부문이 많다. 일본과의 유사성이 한국 경제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무엇이 비슷한가? 먼저 1인 가구 수의 증가이다. 일본은 1990년 1인 가구의 비중이 20%를 초과했다. 한국은 2010년에 23.9%였으며, 2025년에는 30%를 넘어설 전망이다.

두 번째는 편의점의 증가이다. 일본은 1983년 6,308여개에서 2008년 44,391개로, 한국은 2011년 21,221개에서 2017년 36,824로 각각 늘었다. 이처럼 편의점 수의 급속한 증가에 따라 일본은 2008년, 한국은 2015년에 편의점 매출이 백화점을 추월했다.

일본이 불황기에 나타난 또 하나의 현상은 발포주의 등장이었다. 발포주는 맥아 대신 옥수수, 콩, 밀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료를 사용한 것으로, 20여년전 일본에서 장기 불황 시기에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2017년 4월 하이트진로에서 발포주의 발매를 시작했는데 같은 용량의 맥주보다 40% 저렴했다.

TV 먹방 프로그램이 붐을 이룬 것도 불황기의 현상이었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중반까지 먹방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지금은 사라진 상태이다. 한국은 2000년대 이후 음식을 소재한 TV 프로그램이 급증했다.

한국은 2010년 기준, 인구구조 측면에서 일본의 1990년과 유사하다. 고령화사회는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이 7% 이상, 고령사회는 14% 이상이다. 일본은 1970년 고령화사회에서 24년이 지나 1994년에 고령사회가 됐다. 한국은 2000년 고령화사회에서 2018년에 고령사회로 진입했는데 그 소요 기간이 18년으로 일본보다 짧았다.

◆한국, 일본식 장기 저성장 시대가 올까? = 이처럼 일본 불황기와 한국의 불황기는 비슷한 점이 많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는데 한국에는 디플레이션과 임금하락이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짧은 산업화 역사 탓에 축적이 부재하고, 압축 성장으로 조로화한 점이 우려된다. 이는 한국이 일본처럼 장기 저성장 시대를 겪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본은 불황기에 소비 측면에서 크게 3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소비의 양극화, 제네릭가전의 등장,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소비가 그것이다.

먼저 소비의 양극화. 1996년에서 2001년 사이 일본에서는 명품 브랜드와 저가 브랜드의 매출 증가가 동시에 이뤄졌다. 이를테면 다이소는 불황기에 가성비가 좋은 제품으로 급성장한 했으며 한편으로는 에르메스 등 고가 제품의 수요도 늘어났다. 가격이 절대적이었던 기존의 가치 기준이 불황기에는 비싸면서도 좋은 물건, 싸고 좋은 물건으로 가치 기준이 새롭게 바뀌었다.

이처럼 소비의 양극화 현상 속에서 공급자는 브랜드 가치의 제고와 소비자 맞춤형의 저가 제품의 공급에 중점을 두는 등의 판매 전략을 구사했다.

소니는 30만엔의 초고급 워크맨, 800만엔의 홈시어터 프로젝터를 출시하는 등 초고가 전략으로 불황기에도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발포주(제3 맥주), 숍99, 유니클로, 중고용품점 등은 가격파괴 및 가격 분쇄라는 초저가 전략으로 관련 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시사하는 점은 불황기에는 어중간한 가격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상식보다 높은 가격으로 소비자가 놀랄만한 부가가치를 제공하거나 아니면 전대미문의 초저가로 고객에게 어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황기에는 지금까지의 가격 전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불황에서 살아남은 일본 기업들, 강력한 기업으로 부상 = 이어 제네릭가전의 등장. 제네릭가전은 인지도가 낮은 중소 제조기업이 제조해 판매하는 가전제품을 의미한다. 특허권이 만료된 후발약을 제네릭 의약품이라고 부르는 것에 착안해 가전제품에도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일본은 20년이 넘는 장기 불황으로 유명 브랜드보다는 가격을 중시하는 쪽으로 소비 패턴이 변화했다. 기본 기능만을 갖춘 중소기업의 제네릭 가전은 복잡한 기능의 대기업의 유명 브랜드를 제치고 호황을 구가했다.

다음은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소비. 2016년 가전전시회(CES)에서 소니와 파나소닉은 아날로그 레코드플레이어를 출시해 높은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후지필름의 아날로그 카메라도 두드러진 성과를 거뒀다.

불황에서 살아남은 일본 기업은 나중에 훨씬 강력한 기업으로 부상했다. 2015년 상장기업 가운데 1,000억엔이 넘는 영업 이익을 기록한 곳이 97개로 1980년대 후반보다 훨씬 많았다. 2,000억엔 이상 영업이익을 올린 곳도 41개였다. 참고로 2015년 한국 기업 가운데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곳은 19개였다.

그러면 불황에서 살아남은 일본 기업들의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성장의 한계를 인식했다. 토요타자동차는 급격한 확대 전략을 수정해 물량을 축소했다.

둘째, 대담한 변신이다. 히타치제작소는 반도체, 가전, 컴퓨터 등 주력 사업을 매각했으며, 이토추상사는 종합상사에서 생활가전과 아시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바꾸었다. 후지필름은 필름에서 의약품 회사로 변신했다.

셋째, 포기하지 않는다 이다. 토레이는 이길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각오로 탄소섬유 사업에 매진해 50년 후에 결실을 맺었다.

넷째, 자신의 재발견이다. 파나소닉은 TV, 플라즈마 등 가전 사업을 축소하고, 주택 관련 사업, 비행기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등 성장 사업을 발굴했다.

다섯째, 성숙산업은 없다 이다. 구보타는 농기계와 정수시스템, 관계시스템의 아시아 시장을 개척했다.

여섯째 M&A의 활용이다. 소프트뱅크는 세계 각국의 1,300개사 이상에 출자했다.

소비형태의 변화는 일본 기업에게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됐다. 일본의 시장 상황은 ‘잃어버린 20년’ 동안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크게 변화했다. 공급자가 임의적으로 1+1 또는 2+1 상품을 만들어 소비를 촉진하는 대신 정말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의 공급으로 시장 상황이 바뀐 것이다.

◆저성장기를 극복한 일본 강소기업 = 작은 기업이 불황기를 견디는 것은 큰 기업보다 더 어렵다. 그런데 슬기롭게 저성장기를 극복한 작은 기업들이 있다. 불황기를 이겨낸 일본의 강소기업 사례 4가지를 살펴본다.

<전세계 항공사를 사로잡다- 코미>

코미(KomyMirror)는 사각지대를 없애고 시야를 넓히는 특수거울 제작 회사로 직원수는 34명이며, 2016년 기준 누적 판매량 약 40만개를 기록했다.

코미의 특수거울은 항공기 수화물 유실확인용 거울, 도로 충돌방지 반사경, 서점 및 편의점 감시용 거울 등으로 쓰이고 있으며, 일본 특수거울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코미는 1967년 간판 제조회사로 출발했지만 1971년 지인의 제안으로 블록거울의 제조를 시작해 천정용 디스플레이 회전거울을 출시했다. 이 회전거울이 도난방지용으로 인기를 끌게 되자 코미는 특수 거울 제작업체로 사업을 전환했다. 이어 미러블 생산에 도전했지만 대기업에 밀려 실패했다.

고미야마 사케 코미 사장은 “미러블의 실패로 독자적인 방식이 아니면 곧바로 타사가 모방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후 어떻게 하면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시장을 개척해서 소비자를 만족시킬 것인지를 생각하게 됐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코미는 표면이 평평하지만 블록거울과 동일한 넓은 시야를 가진 세계 최초의 제품 ‘FF(Fantastic Flat) 미러를 개발했는데 이 제품은 다른 거울에 비해 1/3 수준으로 가볍고 면적은 3배 정도 넓어 항공기 내부 부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여객기 객실 승무원 전용 거울인 ‘CC(Cabin Crew)’ 미러는 크기 3*5cm, 두께 2mm의 초소형으로 탑재기기 확인과 화장 수정용으로 승무원 사이에서 인기를 모았다.

1996년 코미의 도난방지용 거울이 판매원 감시용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내용의 책이 출간되고 이는 코미 제품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혔다. 이 일로 고미야마 사장은 영업보다는 제품 효과의 확인이 더욱 중요하다는 교훈을 체득했다.

고미야마 사장은 “대부분 고객만족(CS)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나는 이용자 만족(US)이 가장 우선시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미의 거울을 구매하는 고객의 대부분은 설비 관련 판매 대리점이나 시공업자로, 실제 사용하는 이용자가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용자에게 도움이 되는 제품이 아니면 시장에서는 살아남지 못한다”고 술회했다.

코미는 ‘스토리도 자산’이라며 자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발행하기도 했다.

고미야마 사장은 “코미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회사’이다. 일이 아무리 바빠도 과거의 경위와 교훈을 남겨 조직 안에 축적해 가는 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다”라고 밝혔다.

스즈키 양말은 쌀겨 성분이 들어간 섬유로 제작한 ‘쌀겨 양말’로 업계 불황에도 승승장구했다. 쌀겨 양말의 가격은 800~1,200엔으로 2016년 기준 누적 판매량 약 30만 켤레를 기록했다.

스즈키 양말은 1958년 어린이 전용 양말 제조기업으로 출발, 1987년에는 축구용 스타킹 OEM 생산을 시작했다. 이 제품으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스타킹을 수주해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업계 불황에도 생존했다.

스즈키양말이 쌀겨 양말을 만들게 된 것은 ‘쌀겨를 양말에 적용하면 발도 매끈해지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스즈키 카즈오 스즈키 양말 사장은 현미 정미 후 버려지는 쌀겨가 아깝다고 생각하고, 초등학교 시절 쌀겨를 이용해 교실 바닥을 청소하던 기억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해 쌀겨 양말의 개발에 들어갔다.

그러나 쌀겨에 포함된 유분 때문에 섬유에 접착시키는데 실패했다. 실패 속에서 답을 찾았는데 유분이 항산화 작용과 보습 효과가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1년여간의 연구 끝에 2005년 쌀겨 양말 제작에 성공했지만 세탁 후 성분이 약해지는 단점 때문에 발매를 연기했다. 그래서 레이온에 쌀겨 성분을 포함시킨 ‘쌀겨 섬유 SK’를 개발하고 2006년에 쌀겨 양말 ‘걸어다니는 쌀겨주머니’를 출시했다.

이 제품으로 큰 성공을 거둔 스즈키 양말은 목도리, 장갑 등 쌀겨 제품 시리즈를 잇달아 개발했으며, 이 쌀겨 제품 시리즈는 2011년 일본 아토피협회 추천상품으로 등록됐다. 스즈키 양말은 최근 발 부종이 있는 고령층을 겨냥해 조이지 않는 양말을 개발했다.

스즈키 카즈오 사장은 “회사가 잘 나갈 때야말로 미래의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라며 “변화에 대한 체질화로 자기 혁신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피 대상에서 꿈의 기업으로 – 노사쿠>

노사쿠는 3D 업종의 대명사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한 사례이다.

1985년 결혼과 함께 주물 제조를 시작한 가츠지 노사쿠 사장은 하루 18시간씩 18년동안 현장에서 기술을 습득했다. 어느 날 공장 견학을 온 학부모가 아이에게 “너도 공부 안 하면 저런 일을 하게 될거야”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이 일은 노사쿠가 변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주물 제조는 덥고 습한 작업 환경, 1000도씨 이상 고온의 쇳물, 낮은 임금 등으로 대표적인 기피 직종이었다. 가츠지 노사쿠 사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데 힘썼다. 과거 하청생산에서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생산체제를 변화시켜 기술력을 높였다. 기술력의 향상은 품질 향상은 물론 거래 만족도의 상승으로 이어졌으며 결국에는 수익 구조 개선이라는 성과를 낳았다.

노사쿠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자체 브랜드의 개발에 나서 ‘놋쇠 풍경’이라는 제품을 개발해 첫 해 판매량이 3만개를 돌파하는 성과를 거뒀다. 부딪힐 때 청명한 소리가 나는 놋쇠의 특성에 집중해 제품을 개발한 것이 주효했던 것이다.

또 새로운 소재로 ‘주석’에 주목했다. 주석은 강한 항균 작용으로 술이나 음식의 맛을 향상시키고 보관 기간을 연장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유연한 성질’ 탓에 식기로 만들 경우 모양이 찌그러지고, 자르거나 깎는 가공이 곤란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노사쿠는 주석의 이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구부러지는 건 구부려서 사용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99.9% 주석으로 만든 주물 용기인 ‘카고(KAGO)’를 개발했는데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변형이 가능해 호평을 받았다. 또항균 작용이 강해 숟가락 등 유아용품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가츠지 사장은 ‘카고’를 앞세워 2010년 프랑스 국제 인테리어 박람회 ‘메종 에 오브제(MASON & OBJET)’에 참여했다. 관심을 끌긴 했으나 신규 계약에는 실패했다. 일본 판매 상품을 그대로 내보인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프랑스 유명 디자이너 실비 아마르와 협업해 ‘실비 라인’ 시리즈를 론칭했다. 이 제품으로 프랑스 호텔, 레스토랑 등의 납품에 성공하고 해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해 2014년에 이탈리아 밀라노 매장을 오픈했다.

<맑은 날에도 우산을! – 슈즈 셀렉션>

슈즈 셀렉션(Shu‘s selection)은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우산 제조기업이다. 종업원 30명의 슈즈 셀렉션은 2015년DP 약 1억2천만개 규모를 형성한 일본 우산 시장에서 2천만개를 판매해 시장점유율 17%를 차지했다.

슈즈 셀렉션은 1986년 하야시 히데노부 사장이 도쿄 주택가에 우산공방을 창업한 것이 시초였다. 우산살 갯수를 2배로 늘린 고품질 우산을 개발해 성공했다. 하지만 장마가 끝나자 판매량이 급감하며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맑은 날에 우산을 판다‘는 것을 회사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갖고 싶어서 사게 되는 우산‘을 만드는데 전념했다.

우선 디자인을 개선해 색상과 문양을 화려하고 다양하게 제작했다. 이 회사의 대표 브랜드인 ‘워터 프론트(Water front)’의 대표 상품인 ‘포켓 플랫’은 색상이 모두 250종에 이른다.

또 우산 크기를 다양화했다. 5단 접이식으로 전체 길이가 16cm에 불과한 ‘수퍼 포켓 미니’, 우산살과 살을 포개서 넣는 방식으로 중량 150그램의 초경량 제품 ‘펜 호소’, 직사각형 형태로 접히도록 설계하고 두께가 2.5cm에 불과해 휴대가 용이한 ‘포켓 플랫’ 등이 그것이다.

슈즈 셀렉션은 약국, 서점, 역 구내 매장 등 새로운 판매망을 구축하고 묶음(Assort) 판매 방식을 채택하는 등 혁신적인 전략을 구사했다. 특히 묶음 판매 방식은 24개, 36개, 48개 단위로 묶어 판매하는 것으로 인기 색상과 비인기 색상을 조합해 제품 간 판매 격차를 축소하는데 기여했다.

하야시 히데노부 사장은 “매력적인 우산을 결정하는 승부수는 품질, 디자인, 가격의 적절한 균형이다. 양품박리(良品薄利)인 셈이다. 상품은 ‘그림의 떡’이 아닌 항상 ‘진짜 떡’이어야 한다. 손에 쥐어봤을 때 높은 품질과 싼 가격에 만족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소비자의 기대에 어긋난 적이 없다는 신뢰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익은 그 다음 문제이다”라고 밝혔다.

슈즈 셀렉션의 우산은 700엔에서 1,000엔의 가격대로 일반 접이식 우산 가격의 1/4이다. 또 스테인레스 소재 및 UV 코팅 원단을 사용해 품질 면에서도 아주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슈즈 셀렉션은 ‘이익’보다는 ‘품질’을 우선하는 기업으로 명성이 높다. 낙진으로 고생하는 가고시마현 주민들을 위해 개발한 돔 형태의 투명 우산 ‘사쿠라지마 파이어’, 토야마현의 폭설과 강풍을 견디기 위해 강화 플라스틱을 사용한 고강도 우산 ‘토야마 썬더’ 등이 그 대표적인 상품이다.

슈즈 셀렉션은 사장이 신상품 아이디어를 내면 사원들이 자발적으로 팀을 구성해 운영한다.

◆4개 사례의 공통분모 “기존 제품 및 기술 개선으로 ‘본업 사수 경영’” = 지금까지 설명한 4개 사례의 공통분모는 기존 제품 및 기술의 개선으로 ‘본업 사수 경영’을 했다는 점이다.

본업사수 경영은 역사적으로 배양된 ‘노렌’을 지키겠다는 일본 고유의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한 분야에 까다롭게 얽매여 일말의 타협도 용납하지 않고 몰두하는 ‘고다와리’ 성향이 함께 빚어낸 결과이다.

고다와리(拘り)는 사전적으로 특정한 기호에 대한 집착이나 유별나게 좋아한다는 것으로, 그 정확한 의미는 얽매이는 것 같지만 성급하지 않고 대충 끝내지 않는 까다로움이다.

고다와리 경영이란 절대 양보할 수도 타협할 수도 없는 기업 고유의 강한 생각을 경영에 반영하는 것이다. 생존을 넘어 진화하며 성장하는 일본 강소기업에는 틀림없이 ‘무슨무슨 고다와리’가 있다. 그 무슨무슨 고다와리는 소재에 대한, 연구에 대한, 혁신에 대한, 사람에 대한, 시장에 대한, 제조방법에 대한, 서비스 방법에 대한 고다와리일 수도 있다.

노렌(暖簾)은 자신의 상호가 그려진 무명천이다. 일본의 상점, 가게, 음식점 입구에 걸려있는 노렌에는 신용중시 사상이 담겨 있다. 고객과의 신용을 상징하는 노렌은 일본 기업의 경영방식을 대변한다.

노렌은 회계학에서는 브랜드, 노하우, 고객과의 관계, 종업원의 능력 등 무형의 고정자산을 뜻한다. 일본의 어느 면 요리 상점 창업자가 2015년에 타계하면서 300명 가까운 제자에게 로열티 없이 ‘노렌’을 내어줘 화제가 된 바 있다.

일본 사회에서 노렌을 내주는 건 ‘장사의 영혼’을 상속하는 행위이다.

교토부는 개청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편찬한 ‘노포와 가훈(老舖と家訓)에서 노렌의 의미를 △신용의 상징 △투지의 상징 △사람과의 화합의 상징으로 정의했다.

오사카시가 시제(市祭)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펴낸 ‘노렌’에서는 노렌을 △영속성의 심볼이며, 경영이념의 표명(기업은 지속하는 것이 사명이며 목적) △오랜 기간에 걸친 신용의 축적 △이노베이션에 의한 생존경쟁의 원천 △화합과 단결의 경영 △사회적 책임이라고 했다.

변화는 성장의 증거이다. 지금은 기업이 원하든 원치 않든 상관없이 주체적 변화가 요구되는 시대이다. 변화의 관측은 주관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해야 한다. 주관을 중시하면 자사에게 불리한 변화는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장수기업은 고유의 까다로움과 무형의 자산으로 본업사수 경영을 했으며, 목표가 아닌 목적이 있는 기업을 지향했다. 그래서 강한 기업이 됐다.

<박시현 기자> shpark@it-b.co.kr

영림원 CEO포럼에서 강연된 내용은 아이티비즈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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