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회 영림원CEO포럼]“대혼돈의 시대: 기업경영에 대한 시사점“

“대혼돈의 시대, 대한민국이 살 길은?”

정구현 KAIST 교수 제127회 영림원CEO포럼 강연


정구현 KAIST 경영대학 교수가 2일 제127회 영림원CEO포럼에서 ‘대혼돈의 시대와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정 교수는 “소득 불균형의 악화가 세계의 대혼돈을 낳은 가장 큰 원인이며, 이를 해결하려면 미국이 주도하는 ‘규칙 기반의 세계 질서’의 회복이 필요하다”라면서 “특히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일본 등 추종 모델이 사라진 마당에 이제부터는 스스로 모델을 만들어 대혼돈의 시기를 헤쳐 나가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혼돈의 원인은? = 1990년대는 세계의 역사점 전환점이었다. 그때부터 25년~3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또다른 역사적 전환기에 휩싸여 있다.
대혼돈의 핵심 원인은 2가지이다. 첫째는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득 불균형이 악화됐다는 점이며, 두번째는 중국의 성장으로 세계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현상의 배경은 소득 불균형에서 찾을 수 있는데 트럼프가 그만둬도 소득 불균형이라는 이 근본 원인은 계속 남아 문제가 될 것이다.

세계 대혼돈의 증거는 5가지이다.

첫째, 1990년대에 냉전 시대를 끝내는 중요한 사건이 많이 일어났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 독일이 통일됐으며, 소련(USSR)이 해체됐다. 1993년에는 유럽연합(EU)의 출범으로 유럽 단일 시장이 형성되고, 그해 우루과이라운드가 끝났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되고,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다.
한국은 1987년부터 지금까지 민주화와 정보혁명을 거쳐 13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92년 펴낸 ‘역사의 종언’이라는 저서에서 “1990년경 냉전이 끝나고 공산권이 몰락하면서 세계 체제 경쟁은 끝났으며, 서구식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보다 더 좋은 제도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주장과 달리 세계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시리아, 이집트, 리비아, 이라크 등 중동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으며,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로 서구 자본주의의 약점을 노출하고, EU와 일본은 쇠락하고, 중국이 급성장하며 새로운 패권 국가로 등장했다.


◆대혼돈의 증거들, ‘유럽공동체 해체 위기, 세계 경제 장기침체…’= 둘째, 근대 세계 질서의 뿌리는 단일 국민국가(nation-state)였다. 1648년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으로 국민국가들의 주권에 기반한 국제질서가 형성됐다.
그런데 1957년 국민국가를 뛰어넘는 초국가가 탄생했는데 바로 EU였다. 28개국이 모여 하나의 연방을 구축하고 19개국은 유로로 통화를 통일했다. 그러나 2010년 그리스 재정이 파탄나고, 2016년 영국이 EU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하면서 유럽공동체는 해체 위기에 놓여 있다. 1957년 시작된 EU의 대장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현상은 연결돼 있다. 성인층의 박탈감이 이런 현상을 낳았는데 그 현상의 배경은 소득불평등의 악화에 있다. 미국의 경우 백인 성인층의 박탈감이 트럼프 현상을 낳았으며, 유럽의 성인층들은 이민의 자유로 인해 일자리 위협을 받고 있다.

셋째, 세계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9년째 침체에 빠져있다. 재정 확대로 공황은 피했으나 OECD 국가의 채무는 30% 가량 급증했다. 제로 금리가 8년째이고 미국, 일본, 유럽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에도 투자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2012년부터는 세계 교역의 증가율이 둔화하고 있다.

넷째, 중국은 세계 경제의 골칫거리이다. 중국 경제의 향방에 따라 세계 경제는 금융 위기로 침체할 것인지 아니면 중국이 소프트 랜팅 후 세계적 강자로 부상할 것인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국은 2010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으며, 2013년부터는 세계 1위의 무역대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2016년 중국의 국내총생산은 약 11조달러였으며,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는 6.5%이다.
그런데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점차 둔화하고 있으며, 소비와 서비스 주도로 경제 구조가 바뀌고 있다. 소비의 경제 성장 기여도는 2011년 62.8%에서 올해는 70.3%로 추정된다. 산업별 성장 기여도는 3차 산업이 3.9%로 2차 산업의 2.5%보다 더욱 크다.
중국은 기업 부채로 인한 은행위기와 외환위기의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외환보유액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3조달러대를 유지하다가 2017년 들어 3조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다섯째, 한국은 저성장, 저물가 시대로 진입했다. 문제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배워야할 선생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미국과 일본을 쫓아갔지만 이제 누구를 쫓아야할 지 모델이 없어졌다. 우리 스스로 모델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왜 대혼돈은 왔으며 언제 시작되었는가? = 세계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 왜 대혼돈은 왔으며 언제 시작되었는가? 그 뿌리는 자유무역의 퇴보에서 찾을 수 있다.
자유무역의 퇴보는 이미 2000년부터 시작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선진국 경제의 모순을 극명하게 노출시켰다. 중국의 성장은 2001년 WTO 가입으로 가속화되었으며, 2010년에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의 대혼돈은 21세기 들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2016년에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으로 더욱 가시화됐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현상의 핵심 원인은 미국 서민층 특히 백인 고졸의 좌절감과 분노 때문이었다. 자유 무역으로 일자리를 뺏기고 불법 입국자가 일자리를 위협하는데 분노를 느낀 것이다.
미국의 소득 분배는 1980년경부터 악화됐다. 특히 미국 중산층의 2013년 소득이 1989년보다 후퇴할 정도로 중산층 소득이 감소했다. 생산성은 증가했지만 임금 상승은 그만큼 이뤄지지 않았다. 1948~2011년에 생산성은 240.9%가 늘었지만 임금은 107.8% 상승에 그쳤다. 대졸자의 시간당 급여도 2000년~2013년에 남자는 19.24달러에서 19.15달러로, 여자는 17.82달러에서 15.29달러로 감소했다.
대혼돈의 배경에는 1980년대초 이후 벌어진 정보혁명과 글로벌화의 급진전, 자유시장경제의 확산 등도 있다. 정보혁명은 국제생산 분업을 촉진해 일자리가 선진국에서 중국으로 대거 이동했으며, 글로벌화에 따라 미국 제조업 종사 노농력이 1980년 1900만명에서 2012년에는 1100만명으로 감소했다. 자유시장경제는 노조의 약화와 자본가 중심의 경제 정책을 야기했다.
자유무역은 항상 강자의 논리였는데 선진국들은 자유무역이 선진국에 더 이상 유익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다. 1990년~2015년에 가장 성공한 나라는 중국, 가장 실패한 나라는 일본이라는 시각이 있다. 트럼프와 미국의 정서는 중국이 더욱 성장해 패권 국가로 부상하는 것을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대혼돈의 근본 원인은 미국의 약화 때문이다. 현재 세계 경제는 1914년~1945년과 유사한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다. 문제의 핵심은 세계 질서를 유지할 역량과 의지가 있는 패권 국가가 부재하거나 약화됐다는 사실이다.


◆2030년까지 세계경제는 어떻게 될까? = 앞으로 2030년까지 이 대혼돈은 어떻게 전개될까. 그 변화 요인은 3가지이다.

첫째, 고용축소형 기술변화이다.
세계 각국 경제의 최대 과제는 일자리 창출인데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 감소가 전망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16년 내놓은 보고서에서 향후 5년 사이에 기술변화로 인해 새로 생기는 일자리보다 없어지는 일자리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선진국 등 15개국에서 710만개의 일자리가 소멸하는 반면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210만개라고.
무인 매장은 일자리 감소의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아마존이 추진하고 있는 무인점포인 아마존 고(Amazon Go)의 경우 운영 인력이 기존 80명에서 6명으로 줄게 된다. 롯데그룹은 올해 7~8천개의 세븐일레븐 매장 중 10개를 무인 편의점으로 시험 운영하기로 했다. 미국의 경우 무인매장시스템이 확대되면 계산원 약 350만명의 일자리가 소멸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두번째 변화요인은 소프트/사이버 세상의 등장이다.
2017년 2월 기준 세계 시가총액 10위권 기업 가운데 인터넷 및 온라인 회사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등 5개이다. 온라인 소비의 증가에 따라 오픈라인 회사나 가계의 매출은 감소하고 있다, 휴대폰 자체에 통신 기능 외에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카메라, 녹음기, 라디오, 사전, 책과 같은 많은 상품의 소비도 줄어들고 있다.

세번째는 ‘규칙 기반의 세계 질서’ 회복 여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규칙 기반의 세계 질서’는 전쟁 방지와 경제 성장에 기여했다. 하지만 미국의 리더십 상실 위기는 규칙 기반의 세계 질서의 위기를 초래했다.
향후 10년 안에 세계경제는 일자리 전쟁의 국면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제4차 산업혁명이 성공하려면 정부와 사회의 지지가 필요한데 일자리 상실을 줄이기 위해 정부의 시장 개입이 증가할 가능성도 있어 제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과 일자리 세계대전의 관계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주목된다.


◆“일자리 세계 대전 벌어진다” = 앞으로 2030년까지 미국의 리더십을 중국이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리더십의 공백 상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얘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경제는 일자리 대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펼쳐질 일자리 전쟁에서 한국은 생산가능인구는 감소하고, 노동 시장의 2중 양극화하는 두가지 특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일자리 유지 대책으로 근로시간 단축, 근로안식년제 도입 등이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기본소득제도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일자리 전쟁 시대로 접어들면 사회 계층은 일하는 부자, 일하는 노동자, 노는 부자, 노는 빈자 등 4개층으로 나눠질 것이다. 일자리가 귀해지면서 회사들의 직원 채용이 매우 투명하고 공정해지고, 승진이나 평가도 제대로 되어 진정한 실적주의가 제도화될 것이다.

<박시현 기자> pcsw@bikorea.net

 

영림원 CEO포럼에서 강연된 내용은 ㈜비아이코리아닷넷의 [영림원CEO포럼]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http://www.bikorea.net/news/articleView.html?idxno=16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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