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프로클럽 김미*

 

 

어릴 적 동화책을 부모님께서 읽어주실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책들을 읽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들을 공부하기도 하고, 친구들이 재미있다고 이야기하는 소설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의 내용이 궁금해 읽어보기도 했다. 그 수많은 책들을 읽어보면서 난 단 한 번도 작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작가의 이름 정도 만 알지 그 작가가 어떤 인생을 살았으며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또 그 작가에게 어떤 숨어있는 이야기가 있는지 같은 것 따위는 한 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목차를 보고 조금 당황스러웠었다. 내가 아는 작가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내용이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책장을 넘기기가 조금은 두려웠다. 하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을수록 난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작가와 기자가 나누는 인터뷰 형식의 내용이 읽기 불편할 수도 있고, 자칫 지루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작가들의 인터뷰 내용을 읽고 있으니 마치 이 작가를 내가 원래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고, 그 작가의 마음과 생각과 상처들을 대하고 나니 그 작가가 어떤 작품을 썼는지가 궁금해 졌고, 그 작품을 이런 마음으로 썼겠구나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여러 명의 작가들의 인터뷰가 있다. 한명 한명이 다 특색이 있고, 사연도 다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나의 마음에 와 닿은 사람은 레이먼드 카버이다.

카버는 워싱턴 주 동쪽에 있는 야키마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제재소 직원이었고, 어머니는 식당 종업원이었다. 그의 부모님들은 사는 게 몹시 힘들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신경안정제를 계속 드셨고, 아버지는 위스키를 계속 드셨다. 그 분들이 정신력이 약해서 도피처가 필요했는지 아님 하루하루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 힘들어서, 고단한 삶을 견뎌낼 무언가가 필요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님이 그런 약이나 알콜에 의존하는 모습이 자식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는 카버가 나중에 알콜중독자가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카버의 아버지는 술에 위안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책도 읽으시고 이야기도 잘 해주시는 분이셨다. 카버가 작가가 된 것도 어릴 때 아버지가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카버는 정말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되었다. 카버가 18살, 아내가 16살 때 아이를 가졌다고 하니 만약 우리나라에서 있었다면 집안 망신에 정신 나간 짓을 했다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한 번씩 TV를 보면 중, 고등학생이 임신을 해서 아이를 버렸다는 기사가 방송되기도 한다. 물론 그 중에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의 의무를 회피하려고 한다. 카버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어린 나이였지만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밤에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의 아내 또한 일을 하면서 아이도 키우고 집안일도 했다. 카버의 글이 처음으로 잡지에 실린 때는 그가 홈볼트 주립대학 학부생이었을 때다. 그는 정말 흥분했고, 기뻐했던 것 같다. 나도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상을 받았을 때 엄청 기쁘고 내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 느낌보다 훨씬 크겠지만, 그래도 카버의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젊은 시절에 카버는 단편소설이나 시를 많이 썼다. 하지만, 그가 장편소설을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2-3년씩 걸리는 장편이 아니라 빨리 쓰고 빨리 돈을 받을 수 있는 글을 써야 했다. 그렇다고 형편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 모든 상황들이 카버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그는 많이 우울했다고 한다. 아마 왜 자기한테는 행운도 여유로움도 생기지 않는지 왜 자신한테는 마음 편히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장소도 허락되지 않는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나도 한 번씩은 예쁜 침대와 책상이 있는 내 방에서 부모님이 주시는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카버처럼 인생이 고단하고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에게도 조금 더 행운과 여유로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는데 아무것도 나아지는 것이 없고 여전이 일상이 고단하다면 많이 슬플 것 같다. 카버는 그런 슬픔을 더 큰 노력으로 이겨내기보다는 술에 의존해 버렸다. 그의 아버지가 위스키를 마셨듯이 그도 술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술이라는 것은 참 무서운 것이다. 처음에는 카버가 술을 마셨으나, 그가 술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술이 카버를 삼켜버렸다. 어느 순간 카버는 자신이 일상 행동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두려웠고, 술을 끊었다. 그래도 알콜 의존증을 이겨내는 것을 보니 카버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지 않았다면 자신이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들면 자신을 놓아버린다. 그게 자신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사랑한다면 늘 자신에게 용기와 기회를 주어야 한다. 내 스스로 나를 높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나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는 나의 가치를 알아주어야 한다. 내가 나를 가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그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나를 내려놓을 수는 없다. 카버는 잠시의 흔들림은 있었지만, 결국 자신을 소중하게 다뤘다. 그는 정신을 차렸고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의 삶도 평화로워 졌다. 그가 작품을 쓰는 방식은 초고를 빨리 쓰고 고치는 작업을 수십 번 하는 방식이다. 나는 처음에 잘 써서 될 수 있으면 내가 쓴 글을 다시 고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카버는 초고를 빨리 써서 뼈대를 잡아 놓고 세세한 부분은 계속 덧 대고 고치면서 이야기를 다듬어 간다. 그건 아마 카버의 성격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다. 그의 글 쓰는 공간을 보면 책상위에 잡다한 물건이 하나도 없고 정말 심플함 그 자체이라고 한다. 정리정돈도 엄청 잘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약간은 세밀하고 완벽함을 요하는 성격일 것이다. 그래서 다시 보고 다시 보면서 혹시라도 실수하거나 부족한 부분이 없도록 메꾸고 채워나가는 것 같다. 나는 카버랑은 성격이 많이 다르다.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 아마 그런 부분일 것이다. 나는 완벽하지도 않고 깔끔하지도 않다. 공부할 때 책상위에 책들이 널려 있어도 나는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 있지 않으면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는 않다. 여자가 더 깔끔해야 한다고 하시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 할 것과 해야 할 것이 많은 세상을 살면서 조금은 자신에게 너그러운 것도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좋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왜 나는 카버에게 가장 끌렸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아마 그가 책임감이 강하고 자신을 끝까지 지켜냈다는 점이 좋았던 것 같다. 내년에 고등학교를 진학해야 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든다. 미래가 불안하기도 하고, 어느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은 결정인지 혼란스럽고, 내가 내린 결정이 나를 더 힘들게 할까봐 걱정스럽다. 이제까지는 많은 부분들을 부모님이 결정해 주셨고 도와주셨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부분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아마 내가 나이를 더 먹으면 먹을수록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고 감당해야 하는 부분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좋은 선택도 있을 것이고, 잘못된 선택도 있을 것이다. 좋은 결과도 있고, 좋지 않은 결과도 있을 것이다. 좋지 않은 결과를 대했을 때 비굴하지 않고 그 부분들도 책임을 지고, 나를 지켜낼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조금은 넘어지고 쓰러질 때도 있겠지만, 나를 사랑해서 다시금 일어서서 나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나 스스로에게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것이 카버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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