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회 영림원CEO포럼

“민주주의 이념에 기초하고 시스템적 사고로 인간 존중의 경영을 해야”
최동석 한양대 교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인간존중 경영” 주제 강연

“민주주의 이념에 기초해 헌법의 기본정신을 받들어 시스템 사고를 통해 인간존중의 경영을 해야 한다”
최동석 성균관대학교 교수 겸 최동석인사조직연구소 소장이 5월 8일 열린 제96회 영림원CEO포럼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인간존중 경영”을 주제로 강연하면서 맺은 결론이다. <인간의 이름으로 다시 쓰는 경영학>이라는 저서에서 “인간은 자원이 아니다.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고 사람을 우선시 하는 새로운 경영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던 최 교수는 이번 강연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민중이 스스로 지배하는 민주주의에서 인간 존중의 경영을 해야 생산성은 향상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강연 내용.

 

우리나라, 열심히 일하는데 왜 생산성이 낮을까? = 독일 유학 시절 도전 과제가 있었다. 한국 사람은 열심히 일하지만 생산성이 낮은 반면 독일 사람은 답답하고 놀기만 한 것 같은데 생산성이 높은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가 그것이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한문을 배우는 것처럼 서양에서는 라틴어를 배운다. 라틴어로 된 유명 문구 중 “Unus pro omnibus, omes pro unos”가 있다. 영어로 “One for all, all for one”이다. 우리말로는 “한사람은 모든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모든 사람은 한사람을 위해 헌신한다”는 뜻이다. 이는 서양의 정신사와 사상사의 근간을 이루는 명구이다. 앞의 한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뒤의 한사람은 사회적 약자를 의미한다. 우리도 이런 정신을 실현해야할 것이다.
돈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돈에 대한 올바른 정신이 필요하다. TV나 신문에 나오는 얘기의 모든 것이 돈과 관련되어 있다. 극단적으로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애기할 정도이다.
인류의 삶은 두 가지 이념이 지배했는데 하나는 자본주의이며, 또 하나는 민주주의이다. 자본주의는 자본을 추구하며, 민주주의는 인권을 추구한다. 인권은 인간다운 삶이다. 사람들은 이 두개의 이념이 공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착각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으며, 상호 배타적이다. 물과 기름 격으로 결코 결합할 수 없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 둘의 비빔밥을 만들 수는 없다. 그런데 이 둘이 양립하지 않을까 하고 헷갈려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지식인조차도 이를 얼버무리고 있다.

 

돈이 모든 것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은 ‘미신’ = 언젠가 어느 강연회에 참석했는데 그 때 연사로 나온 국내의 내로라하는 대학의 어느 총장이 하는 말이 모두 돈 애기였다. 돈이 없어서, 시설이 부족해서 대학 발전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지도자들이 이래서야 하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모든 것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미신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시장은 항상 효율적이다”라는 믿음이 있다. 자본시장과 주식회사는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미국식 주식회사와 유럽식 주식회사는 그 운영 형태가 완전히 다르다. 우리나라는 미국식 주식회사를 모방했다. 미국은 주식회사형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따르고 있다. 매출에서 원가를 뺀 이익이 자본가에게 돌아간다. 이를 두고 너무 당연한 것이 아닌가? 라고 한다. 이런 현상이 1~2년 정도이며 별 문제가 아니지만 수 백년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의 양분이 이뤄진다. 칼 마르크스는 이를 간파한 경제학자이며 철학자였다. 영국 BBC는 “칼 마르크스는 소크라테시 이후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며, 2위와 압도적인 격차를 보였다”고 했다.

 

“자본주의ㆍ시장경제ㆍ자기책임의 삼각체제는 ‘악마의 맷돌’” =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모든 것을 민영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민영화(privatization)는 곧 사유화이다. 이런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 이런 식의 자본주의가 지속되면 양극화가 심화되고, 하층 계급은 극심한 불안 상태에 빠진다. 상위 0.1% 사람과 하위 99.9% 사람으로 구별된다.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이런 현상이 이미 가속화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그 솔루션으로 자기 책임의 원리를 강조한다. 경쟁이 불가피한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자기 계발을 부추긴다. 그런데 자기 계발이라는 게 자기 착취이다. 세상에서 자기 계발서가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는 미국이며, 한국은 그 다음이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 자기책임과 더불어 굳건한 삼각형 체제로 운영된다.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이를 ‘악마의 맷돌’이라고 지칭했다. 이 악마의 맷돌에 걸려들면 엄청난 문제가 발생한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는 미국에서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충격적 진실을 밝히면서 돈 없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현실을 고발한다. 또 2011년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작품상을 수상한 ‘인사이드 잡’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경제 및 경영학자, 정부 고위 관료, 투자은행 등 삼각 편대가 서민에게 사기를 친 사건으로 진단한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인사이드잡 만큼 적나라하게 표현한 영화는 없다.

 

“민주주의가 되면 소득도 늘리고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 = 앞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고 했다. 시민(민중, 인민)이 스스로 지배하는 민주주의 이념을 토대로 인간을 존중해야 생산성이 향상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이다.
우리나라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반드시 공화체제를 채택해야 한다. 공화주의는 공공의 것(public thing)이다. 헌법에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채택했다는 것은 헌법에서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는 얘기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사실 민주주의가 되면 소득도 늘리고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 왜 그럴까?
민주주의는 시장경제를 반대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시장이 항상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라는 믿음으로 시장의 역할을 줄이려고 한다. 이런 믿음을 사회적 시장경제라고 일컫는다. 사회적 시장경제에서는 효율성을 따지지 않는다. 사회는 사회적 경제 또는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며, 국가는 3무 정책으로 개입한다.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매출에서 원가를 제외한 이익은 이해관계자에게 돌아가며 조합원이 그 혜택을 누린다.
이런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은 양극화를 해소한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이런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왜 미국만 쳐다보고 있으며, 유럽의 사회적 경제 모델을 채택하지 못하는지 아쉽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 등 3무 정책은 국가의 기본적 책임” = 사회적 시장경제를 실현하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국가의 기본적인 책임 영역을 정하고 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원가주의 거래)이 그것이다. 백성이 주인이 되려면 교육이 필수이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는 외국인들에게도 무상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저는 박사학위 취득 때까지 무상으로 교육을 받았다. 이런 사회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아이러니하게 학생들이 대학에 가려고 하지 않으며 공부하기를 싫어한다는 점이다. 공부 밖에는 할 게 없는 학생들이 대학에 간다. 일각에서는 독일의 무상교육을 두고 돈이 많으니까 그런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데 웃기는 개소리이다. 독일은 2차 대전에서 패전 후 독일 초대 수상이 된 아데나워는 민주주의 사상을 고민하였다. 백성이 주인인 민주주의에서 무상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헌법에 무상교육을 규정하였다. 돈 없으면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
무상의료는 돈이 없어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국가는 의무적으로 아픈 사람을 치료해줘야 한다.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지성인들이 이런 무상의료를 생각해 냈다. 의료기관의 영리 추구는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다. 사람을 치유하는 것은 거룩한 일이다.
무상주택은 공짜로 주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원가로 공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도 생애에 걸쳐 분납하면 된다. 이런 무상주택 정책에서는 집값이 폭등할 이유가 없으며 부가가치 수단으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민주주의, 사회적 시장경제, 국가책임의 삼각체제는 ‘천사의 맷돌’”= 민주주의는 주인의식을 길러주며, 사회적 시장경제는 상호부조를 일깨우고, 국가책임은 기회 균등을 보장한다. 민주주의, 사회적 시장경제, 국가책임의 삼각체제를 ‘천사의 맷돌’이라고 말하고 싶다. 민주주의는 천사의 맷돌이 지속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실현해온 유럽의 국가들은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OECD 페이스북 2013 에디션에 따르면 1인당 소득 1위에서 12위까지가 모두 유럽 국가들이다. 모두 천사의 맷돌을 돌리고 있는 국가들이다. 이 가운데 2위에 랭크된 스위스를 주목해보자. 스위스는 가진 것이라고는 사람뿐인 나라이다. 그럼에도 2013년에 1인당 8만불의 소득을 기록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One for all, all for one” 정신을 지켜오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4대 강대국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다. 인구 800만명 중 65%는 독일어, 25%는 불어, 기타는 이탈리아어와 원주민 언어인 로만어를 쓴다.
스위스는 과거 정말 가난한 나라였다. 26개의 칸톤으로 구성된 스위스는 각 칸톤이  상호 협력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데 유럽 전쟁 시에 스위스 국민은 용병으로 전쟁에 참여해 돈을 벌어야만 했다. 칸톤은 스위스의 주를 뜻한다. 스위스인은 용병으로 전쟁에 참여했지만 뛰어난 헌신 정신을 발휘했다. 그래서인지 현재 로마 바티칸의 근위병의 가격 조건은 스위스 국적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스위스의 부의 원동력은 One for all, all for one 정신” = 1789년부터 1948년까지 60년 간은 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였다. 1789년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해이며, 1848년은 공산당선언이 발표된 해이다. 혁명은 국가 간의 엄청난 싸움을 불러 일으켰으며, 스위스는 이 시기에 벌어진 전쟁에 용병으로 참가했다. 용병으로 참전한 스위스 청년들은 조국으로 돌아와 부모를 설득한다.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 26개 칸톤이 협력하자”는 것이었다. 1848년은 스위스가 헌법을 만든 해이다. 이 해 스위스 연방을 만들었는데 민주공화국이었다. 스위스의 공식 국호는 Schweizerische Eidgenossenschaft이다. Schweizerische는 스위스 지역 사람을, Eid는 선언, 맹세를 genossenschaft는 협동조합을 뜻한다. 스위스는 국가가 아니라 조합인 셈이다.
스위스에서는 누구 한 사람이 권력을 갖지 못하는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7명의 의회 의원이 26개 칸톤을 나눠 다스린다. 이들 7명이 돌아가면서 대통령을 맡는데 임기는 1년이며, 아무런 실권은 쥐고 있지 않으며, 회의 진행 사회자로서 역할을 할 뿐이다. 그리고 어느 한 정당이 모든 것을 다 결정하지 못하고, 좌, 우, 중도 성향의 정당들이 골고루 섞여 균형있는 정치를 하고 있다.

 

민주주의=권력의 평등화 = 민주주의는 군력의 평등화이다. 이 점에서 스위스는 모범적인 국가이다. 스위스는 연방정부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는데 논의가 일단 합의하면 절대 어기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한 목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그릇된 결정을 하면 어떻게 할까? 스위스에서는 일반 시민이 청원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놓았다. 10만명이 청원하면 국민투표를 하여 50%를 넘으면 법이 발효된다. 이처럼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나라가 있을까?
유럽인들은 은퇴하면 어디에서 살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부분이 스위스를 꼽는다. 민주주의 원칙으로 부강, 평온, 안전,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평등화라고 했는데 스위스는 공동 의사 결정을 하고 있다. 2명 이상이 문서에 사인해야 효력이 발생한다. 나치 시대에 겪은 뼈저린 경험에서 교훈을 배운 것이다. 이는 미국식 주식회사 운영 방식과는 너무 다른 것이다. CEO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으며 항상 합의해 공동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스위스에는 유명한 지도자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마지막 지푸라기와 시스템적 사고 =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인 원인은 국가재난구조의 지휘체계 붕괴 때문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구조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시스템적 사고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사태가 다시 반복될 수 있다. 왜 그러한가? 마지막 지푸라기(the last straw)라는 말이 있다. 낙타가 사막을 건너면서 매우 지쳐있었는데 낙타의 등에 지푸라기 하나를 얹히자 낙타가 주저앉았다는 얘기다. 주인은 지푸라기가 문제였다며 지푸라기를 탓하고 야단을 친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 역시 마지막 지푸라기 즉 희생양을 찾아서 처벌할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사고 경험에서 오는 교훈을 잊어버리고, 사고 예방을 위해 조직을 키우고, 조직운영시스템은 개선되지 않고 흐지부지되며, 공무원의 수동적인 업무 태도는 오히려 강화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는 시스템적 사고가 결여된 까닭에 앞으로 빚어질 수 밖에 없는 일을 예상해본 것이다.
시스템적 사고의 3가지 차원이 있다. 첫째, 조직의 존재 목적을 정의해야 한다. 이를테면 정부의 존재 목적은 헌법에 정해진 대로 모든 국민이 인간적인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의료기관의 존재 목적은 고통 받는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며, 교육기관의 존재 목적은 재능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며, 기업의 존재 목적은 미국식의 이윤추구가 아니라 유럽식으로 이해 관계자에게 이익을 돌려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다.
둘째, 조직 구성원의 직무 존재 목적을 정의해야 한다. 직무 존재 목적은 성과 책임이다. 최고 경영자의 직무 존재 목적뿐만 아니라 CFO, 임원, 본부장, 팀장의 직무 존재 목적이 있다. 셋째, 성과 책임을 완수하는 실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영림원 CEO포럼에서 강연된 내용은 ㈜비아이코리아닷넷의 [영림원CEO포럼]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http://www.bikorea.net/news/articleView.html?idxno=1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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