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있는음악실 대문

 

 

2011년 여름, 경기도 문화의 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어린 나이에도 차원 높은 소리의 질과 견고함, 뛰어난 해석을 선보였던 그는 2015년 세계 3대 콩쿠르인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합니다.

이렇게 검증된 실력뿐 아니라 겸손하고 진중한 인성, 맑은 소년 같은 외모의 조성진은 기존 클래식 팬을 넘어 대중으로부터 사랑받으며 아이돌 급의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국내 연주회 티켓은 오픈만 하면 1분 안에 매진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월 전국 투어 리사이틀이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조성진의 실황을 듣지 못한데다 프로그램 구성이 좋아서 연주를 보러 가려 했으나, 티켓 오픈 시간에 예매 시스템에 접속했음에도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좌석이 사라지더니 결국 서울, 부산, 전주, 대전 티켓팅에 전부 실패하게 됩니다.

 

이선좌

 

지금까지 어떤 클래식 공연 예매 때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 당황한 저는 전략을 바꿔 일본 투어를 노렸고
투어 일정 중 가장 남쪽 지역인 기리시마 공연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티켓 오픈일에 맞춰 홈페이지에 접속했으나 일본 현지 휴대폰 번호 인증이 필요하다 하여 공연장 측에 직접 연락해 우여곡절 끝에 좋은 자리를 예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월 20일 어머니와 함께 조성진 리사이틀 관람을 겸한 3박 4일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kirishima international concert hallKirishima international music hall(Miyama Conceru)

 

기리시마는 국립공원 동네라 자연환경이 훌륭했고, 공연장 또한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한 건축물로 숲과 캠핑장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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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투어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Beethoven Piano Sonata No.8 Op.13

Beethoven Piano Sonata No.30 Op.109

Debussy Images Ⅱ

Chopin Piano Sonata No.3 Op.58


쇼팽 소나타 3번은 이번 투어 때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선보인 연주라 영상이 없습니다.
크리스티안 치메르만의 연주를 추천 드립니다.

 

연주는 명불허전이었습니다.

조성진은 이미 테크닉은 뛰어 넘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이라 해도 연주가 특정 시대와 음악가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조성진은 놀라울 만큼 넓은 스펙트럼을 깊이 있게 소화하며 예술적인 경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공연장을 찾은 관객의 반 이상은 남녀노소 할 거 없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한 관객들이 공연장에 빽빽이 앉은 것을 보니 괴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공연을 보다가 공연장 공기가 안 좋아서 잠깐 목이 간지럽다고 느낀 순간에 알게 됐습니다.
마스크 착용은 일종의 공연 관람 에티켓이었습니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일본인들은 기침이 나오는 것을 방지하고 혹여 기침이 나오더라도 주변에 주는 피해를 최소화하려던 것이었습니다.
쾌적한 공연 환경을 위해 스스로 주의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문화는 우리나라 관객들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정규 프로그램이 끝나고 관객의 열광적인 커튼콜을 받은 연주자는 환호에 화답하듯 앙코르 무대를 선보입니다.
앙코르 곡으로 무엇을 할 지는 무대에 오른 사람 밖에 모르기에 내가 좋아하는 곡이 연주될 때의 기쁨은 연주회에서 얻는 또 하나의 재미입니다.

조성진은 지난 달 예술의전당 연주에서 위 프로그램이 끝난 후 앙코르로 쇼팽 발라드 1,2,3,4번을 쳐줘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보통 리사이틀은 2부로 진행되는데 쇼팽 발라드 전곡을 연주하는 경우, 이는 보통 한 부로 구성될 만큼 어렵고 시간도 30~40분 가량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지난 예술의전당 공연은 “3부 리사이틀”로 칭해질 만큼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번 기리시마 공연에서는 앙코르 곡으로 드뷔시 달빛, 드뷔시 골리웍스 케이크워크, 쇼팽 폴로네이즈 영웅을 연주했습니다.

 

Debussy the moonlight from suite Bergamasque

Debussy Golliwog’s Cakewalk from Children’s Corner

Chopin Polonaise No.6 Op.53 “Heroic”

 

연주가 끝나고 사인회가 있었습니다.
사인회에서는 사인만 받을 수 있었고, 사진 촬영 및 악수는 금지되었습니다.
사진도 찍고 싶고 악수도 하고 싶었지만 빠른 진행과 혹시 모를 테러 위험을 줄이기 위한 방침이니 기꺼이 그리고 애달피… 받아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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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얼빠진 표정에 주목하신 어머니는 사인회가 끝나고 동영상을 찍어 주셨는데 조성진이 왼손에는 제가 쓴 엽서를, 오른손에는 제가 건넨 간식거리를 잡고 있는 장면이 찍혔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뒷모습에서 아쉬움이 뿜어져 나오는 듯합니다.

 

좋은 연주를 듣고 나와 저녁의 찬 공기를 맞으면 뜨겁게 동요했던 감정에 찬물이 끼얹어지는 듯합니다.
그때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한동안 여운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번 연주도 그랬습니다.

고전음악은 한편으로 정신 건강에 해롭습니다.

 

7년 전만 해도 마음만 먹으면 들을 수 있던 조성진의 소리는 이제 웬만큼 빠르지 않으면 마음을 더 단단히 먹고 비행기를 타고 가야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만큼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고 그래서 우리나라 클래식 대중화의 선두주자인 스물 다섯의 젊은 거장은 말합니다.

 

“저는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보수적일 수 있지만 클래식의 대중화가 클래식 음악의 본질을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 힘쓰시는 분들이 많아서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한편으로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다른 의견들도 존중합니다.

다만 저는 클래식의 대중화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클래식화 되길 바랍니다.”

 

 

seongjin

 

 

 

참고자료
조성진 인터뷰 내용
 

이미지 출처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kirishima international music hall
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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