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호 교수님

  국민대학교 경영대학 남영호 교수 

 

‘그런데 행운의 여신이 찾아왔다. 인터넷이 탄생한 것이다.’ 지난번 호의 마지막 단락은 다시 음미해 볼만하다.

인터넷이라는 행운이 미국경제를 다시 글로벌파워로 올려놓는데 일익을 하였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1990년대 말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인터넷 Dot.com 열풍이 순식간에 대한민국에까지 불어 닥친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Cisco라는 네트워크기술 기업이 탄생하고, DB관리 전문기업인 Oracle, 앱스토어를 창시한 Apple, 그리고 Google, FaceBook 등 무수한 인터넷 관련기업들이 탄생하였다. 현재 인구에 회자되는 4차 산업혁명 (일명 데이터 혁명)도 인터넷이 센서, 인공지능, Big Data 기술과 결합하여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다. 인터넷이라는 행운의 여신이 우연히 나타나서 홀연히 미국을 살린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로 미국이 만들어 낸 것인가? 만약 만들어 냈다면 누가 만든 것인가? 우선 인터넷의 탄생에 대하여 좀더 살펴보고 이어서 Dot.com 열풍 및 이어지는 데이터혁명의 주역이 누가인가에 대하여 조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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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미국과 구소련 간의 냉전 체제의 산물이다. 소련과의 핵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군사전략의 일환으로 탄생한 것이다. 전쟁 시에 통신은 매우 중요하다. 통신이 두절되면 전쟁의 승패는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1960년대 미국 국방부 고등계획국에서는 핵전쟁 등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통신 네트워크를 연구하였다. 그 결과 새로운 통신 네트워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첫째, 적이 공격할 중앙 본부 (center)가 없어야 한다.

둘째, 적의 공격으로 연결선이 끊어지더라도 연결이 되어야 한다.

첫 번째 조건은 손자병법에 나올 만한 이야기이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병법이 최상이다.’ 본부가 없다면 적의 공격이 무력화된다. 그런데 두 번째 조건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연결이 끊어져도 연결되어야 한다. 하! 오묘한 부처님 설법 같은 문장이다. 물론 연결이 가능한 방법은 있다. 안 끊어진 다른 길로 돌아가면 된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이 Internet의 통신방법이다. 전문적 용어로 TCP/IP 방식이다. 이 방식을 간단히 설명하면 모든 컴퓨터는 각각 고유한 주소 (IP 주소)를 가지고 있어서 통신내용물이 이 주소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네트워크 상에서 트래픽이 적은 길을 찾아서 주소지로 가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가다가 길이 끊어져 있으면 다른 길로 돌아가면 된다. 물론 길이 하나밖에 없다면 문제이다.

현실적으로 태평양에서 베트남으로 들어가는 해저케이블이 최근 몇 년 동안 자주 끊어져서 해외와의 통신이 안 되는 사례가 빈번히 일어났다. 그것도 월드컵 시즌에 끊어지는 바람에 베트남 국민들의 원성을 산 적이 있다. 참고로 해저 케이블을 끊는 주범이 상어라고 하는데 아직 왜 상어가 케이블 끊는 행위를 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러한 TCP/IP방식은 국방성이 개발하여서 군사용으로 사용하다가 1980년대 드디어 민수용으로 전환하였다. 1986년에 미국연구재단 (NSF: National Science Foundation)이 이 통신방식을 채택하였다. 엄청난 예산을 가지고 전세계의 학계, 연구계를 지원하는 NSF가 사용하면서 게임은 끝났다. 소위 NSFNet이 탄생하였고, 이 재단에서 연구기금을 받고자 하는 전세계 기관은 NSFNet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TCP/IP를 사용해야만 했다. 드디어 TCP/IP가 실제적 표준이 되었고 “Internet” (대문자 I)이라는 고유명사가 탄생하였다.

이러한 물리적 인터넷통신망이 탄생하고 이용자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월드 와이드 웹 (WWW)의 세가지 규칙 (http, HTML, URL)이 나타나자 이를 활용하는 기업들이 우후죽순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스마트폰을 개발한 Apple, 인터넷 쇼핑의 선도자 Amazon과 검색엔진의 대명사 Google이 나타나면서 ICT산업의 판도가 미국 실리콘밸리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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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탄생하기 전부터 많은 네트워크들이 존재하였다. 통신회사들이 만든 사설 네트워크로서 가입자들에게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부가가치망, 즉 VAN (value-added network)들이 많이 있었다. 이러한 시스템은 등록한 사용자만 이용할 수 있고, 또한 통신 기록이 남으므로 시큐리티 면에서 우수하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VAN과의 통신이 불가능하다. 인터넷은 이러한 문제를 일시에 해결한 것이다. 개별 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근거리 네트워크 (LAN)을 연결하는 원거리 네트워크인 인터넷을 통하여 어디든지 연결이 가능하게 되었다. 모든 네트워크를 다시 연결하는 네트워크 즉, network of networks가 탄생한 것이다.

만약에 인터넷이 없고 각기 다른 프로토콜을 가진 여러 VAN들만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은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물론 VAN을 모두 연결하면 되지만 이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필자가 1995년도에 겪은 일화는 VAN간의 연동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필자는 대통령비서실의 정보화촉진반이라는 특별기획단에 근무한 적이 있다. 필자에게 떨어진 임무는 은행 VAN과 우체국 VAN을 연동하는 것이었다. 서울에 근무하는 자식이 시골에 사는 부모님께 돈을 부치는 것이 불편한 상황이었다. 자식이 은행에서 돈을 부치면 부모님은 은행이 있는 도시까지 나가야 한다. 시골에는 우체국이 도처에 있어서 부모님이 돈을 찾기가 편하지만, 자식은 도처에 있는 은행이 더 편한 것이다.

필자에게 임무가 주어지기 전부터 수해 동안 은행을 총괄하는 금융결제원과 우정사업본부 간의 협상이 이루어졌지만 매년 무산되었다. 금융결제원이 우정사업본부에게 막대한 가입비를 요구하였다. 우체국 입장에서는 자신도 상당한 규모의 고객을 가지고 있는 우체국망을 가지고 있어서 은행망에게 꿀릴 것이 없는데도 가입비를 내라고 하니 협상이 진행될 리 없었다. 그런데 은행망 입장에서는 33개 은행의 고객을 고스란히 이전하는 효과가 있으니 당연히 가입비를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수개월 간의 중재 노력 끝에 결국 은행망과 우체국망이 연동되었다. 1995년 7월 드디어 은행과 우체국 그리고 농협, 수협 간의 계좌이체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면 다시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누가 이러한 인터넷 혁명을 일으킨 것인가? 미국 국방성, NSF, VAN사업자. 이들은 틀림없이 인터넷 탄생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인터넷을 활용하는 기업들은 어떻게 동시에 갑자기 나타난 것인가? 그리고 애플, 구글, 오라클, 야후, 이베이 등 제 1세대 인터넷 기업의 창업자들은 누구인가? 굴지의 기업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었는가? 그리고 덧붙여서 대부분의 인터넷기업은 어쩌다가 실리콘밸리에 몰려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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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의 해답은1969년의 역사적 사건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969년 여름에 세가지 중대한 사건이 순차적으로 발생하였다. 첫째, 인간이 달에 첫발을 내디딘 역사적 해이다.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였다. 7월 20일은 미국의 위대함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날이었다. 전세계가 TV생중계를 보면서 환호하였다. 그 반면 미국의 반대쪽 아시아는 애도의 물결 속에 있었다. 그해 9월 2일에 베트남의 국부인 호찌민이 서거한 것이다. 베트남은 더욱 더 단결을 하였으며, 미국은 점점 더 베트남전이라는 구렁텅이로 빠져 들고 있었다.

미국의 주류 세력이 달 착륙을 통하여 최강 미국을 만끽하면서 아시아의 조그만 국가와의 전쟁에 엄청난 자원을 쏟아 붇고 있을 때 기성 문화에 저항하면서 반전 운동을 벌이던 그룹이 있었다. 바로 히피이다. 히피(Hippie)는 기성의 사회 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 자연으로의 회귀 등을 주장하며 탈사회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히피는1960년대 샌프란시스코, LA 등의 청년층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긴 머리에 맨발이나 샌들을 신고 다녔으며 다양한 색깔의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또 마리화나, LSD 그 밖의 약물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탈사회적 사상을 표현하였다. 특히 유명한 록 그룹 Beatles는 노래로써 히피 운동의 확산을 도왔다. 히피들은 마리화나 몽롱함 속에서 달 착륙을 조소하고 있었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기성세대들의 무시와 따돌림 속에서 미국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 하였다.

1969년 여름에 이런 히피들이 미국의 주류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유명한 Woodstock 페스티벌이다. Woodstock 페스티벌은 1969년 8월 15일부터 3일간 뉴욕주 Woodstock에서 벌어진 록 콘서트이다. 주류 미국인들은 비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히피들이 촌 구석에서 자기끼리 먹고 떠들고 마시고 놀다 헤어지는 정도로 생각했고, 따라서 언론의 조명도 받지 못 했다. 목장을 임대해서 임시로 만들어진 무대를 중심으로 40만명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폭우로 인하여 진흙탕이 된 목장을 가득 메우고 반 주류의 음악과 마약 속에 빠져서 광분하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평화롭게 사흘을 보낸 이들은 더욱더 동료의식을 느끼며 틀에 박힌 주류 문화와 다른 자유분방하며 이색적인 자신만의 문화에 심취해 갔다. 사실상 히피는 미국의 지배 집단에 해당되는 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 가정 출신들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안락한 삶을 살아가던 중산층의 자녀들이 그들의 부모 세대에 대항하고 기존과 다른 새로운 문화를 구축하려 하였다.

1975년 전쟁이 끝났다. 미국이 참패하였다. 우울한 정치 뉴스 속에서 일본의 산업 침략이 시작되면서 더욱 더 우울해 진 미국 사회였다. 히피도 우울하였다. 반대하던 것이 다 사라졌다. 더 이상 전쟁도 없고, 저항할 물질주의도 무너졌다. 히피운동의 동력도 떨어졌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은 갈 곳이 없었다. 직장 경력도 없고 대학 교육도 대충 받다가 중퇴한 젊은이에게 일자리를 줄 리가 만무하였다. 히피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고 세간의 주목 밖으로 밀려났다. 이들은 슬그머니 히피 운동의 중심지인 샌프란시스코 근처로 스며들었다.

무직에 자기 고용 밖에 할 수 없는 이들은 방구석에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이 때 나타난 것이 개인용 컴퓨터, PC이다. PC에 인터넷이 연결되면서 이를 활용할 응용SW들의 수요가 폭발하였다. 시스템 SW, 통신 프로그램, 오피스 SW, 이메일 시스템, 데이터베이스, MRP, Groupware들이 급하게 필요하였다. 1980년대말 드디어 전직 히피들의 세상이 온 것이다. 은둔하면서 최상의 SW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이들이 취업 기회, 창업 기회를 만난 것이다. 방구석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을 사업화 하면서 샌프란시스코의 근교인 실리콘밸리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IT 신화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 들이 바로 애플 창업자인 Steve Jobs와 Wozniak인 것이다

애플의 창업자 Steve Jobs & Steve Wozniak

 

nam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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