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 속의 IT 기술] 일본 문화와 SW 산업의 궁합

  국민대학교 경영대학 남영호 교수 

 

지난 번 칼럼의 “Great 1969”는 미국의 IT 굴기 (崛: 산따위가 불쑥 일어날 굴 起: 일어날 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萬事는 人事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쓸모 없던 히피족이 미국의 굴기를 이끌었다. 히피들의 자유분방하고 기존 질서를 무시하는 가치관이 새로운 산업을 만들었고 실리콘밸리를 일으켜 세웠다. 표에 있는 통계만 보아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 즉 시가총액 1위부터 5위까지가 우리가 잘 아는 미국 기업들이다. 2011년과 2017년을 비교해 보면 더욱더 실감나게 미국의 IT굴기를 느낄 수 있다. 2011년에 에너지, 금융산업에 속한 미, 중, 영의 글로벌 기업들이 상위권을 버티고 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17년에는 완전히 다른 판이 되었다. Apple, Google, Microsoft, Amazon, Facebook 등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업이 완전히 점령하였다. 거기에 중국의 거대 기업인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덧붙여서 제 4차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나서고 있다.

그런데 이 표를 다시 보자. 제조강국인 일본과 독일이 빠져있다. IT기업만의 순위에서 독일의 SAP가 10위 안에 들어 있지만 일본 기업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히타치 (Hitachi)가 20위 정도에 위치하지만, 히타치는 SW를 기업에 설치해주는 산업인 IT서비스업을 위주로 운영되는 기업이므로 같은 반열에 놓기가 어렵다.

일본의 자동차산업, 기계•로봇산업, 정밀소재, 화학소재산업의 기술력은 세계를 리드하는 반면 IT 산업에는 명함도 못 내민다. 일본은 왜 IT산업에 약한가? 일본이 기술 흡수에 노력을 게을리 하였던가? 아니다 무지 노력하였다. 그러나 실패하였다. 하드웨어에서는 하도 잘 베껴서 카피캣(copycat)이라는 별명을 가진 일본이 IT기술, 특히 SW의 기술 흡수에 실패하였다. 그러면 왜 일본 기업은 SW에 약한 것인가? 본 고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답을 찾는 과정에서 易地思之로 우리의 현실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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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글로벌 SW 기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정보서비스산업협회 (JISA) 간부에게 혹시 필자가 모르는 잘나가는 SW기업이 있는지에 대하여 문의를 한 적이 있다. 이 분 대답이 걸작이다. 자신도 일본산 SW제품을 잘 모르지만 개발자들이 있기는 하단다. MJS (Made-in-Japan SW)이라는 단체가 있는데 워낙 활동이 미미하여서 단체의 정식명칭은 모른다고 한다.

그러면 왜 일본에는 SW기업이 없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답은 SW개발의 근무강도가 높아서 회피하는 것 아닐까이다. 즉 야간작업을 밥 먹듯이 하고, 주말도 없이 수,목,금,금,금 하는 업의 특성 때문에 젊은이들이 회피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프로그램 개발이 적성에 맞는다면 몰라도 밤늦게까지 컴퓨터와 씨름하는 직업을 좋아하는 젊은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추측은 조금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SW개발업이 갑의 횡포, 소위 갑질 속에서 시간을 다투며 몰아치면서 개발을 하기 때문에 주말도 없는 것이지 제대로 개발을 한다면 그렇게 악조건이 아닐 것이다. 실리콘밸리 SW개발자들이 악조건 속에서 개발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 대답은 일본 SW산업의 현황을 설명하는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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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nformation Technology) 또는 ICT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산업을 거시적으로 보면 두 개로 쪼갤 수 있다. HW와 SW이다. HW는 컴퓨터, 단말기, 통신장비 등 실체를 가지고 있는 IT 제품이다. 그 반면 SW는 정보를 처리하거나 HW를 움직이는 로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로직은 컴퓨터 언어의 조합이며, 이를 프로그램 또는 소스코드 (source code)라고 한다.

SW를 다시 쪼개면 IT서비스, 임베디드 그리고 패키지 SW의 세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IT서비스를 흔히 SI (system integration) 라고 한다. 고객의 요청에 따라 설계를 하고, 설계에 맞추어 HW와 SW 를 조합하여서 (integration) 원하는 요구조건을 만족시키는 시스템 (system)을 만들어 주는 활동이다. 건설업처럼 건축자재는 외부에서 구매한 후 건물을 지어주는 산업이 SI산업이다. 삼성SDS, LG CNS, SK C&C 등이 우리나라의 SI기업이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기업 산하에 굴지의 SI기업을 가지고 있다.

둘째, 임베디드 SW (embedded SW)는 우리가 일상에 쉽게 접하는 휴대폰, TV, 세탁기, 비행기, 엘리베이터 등의 제품 안에 내장된 전자장치 중에서 HW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임베디드 SW는 과거에는 간단히 산업용 기기를 제어하는 데 그쳤으나, 최근에는 멀티미디어 처리와 같은 점차 복잡한 기능을 구현하고 있다. 우리들이 임베디드 SW기업을 잘 모르는 이유는 휴대폰, 자동차, 가전제품 생산기업들이 직접 개발을 하거나 하청을 주기 때문이다.

셋째, 패키지 SW (packaged SW)는 단어 그대로 ‘포장되어진’ (packaged) SW이다. 상품으로 완성된 독립형 SW를 구매해 바로 사용할 수 있다. 오피스, 운영체제(OS),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전사적자원관리(ERP) 등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SW가 패키지 SW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SAP 등 글로벌 기업들의 주력 제품 역시 패키지 SW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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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마지막 소개한 패키지 SW 개발면에서 매우 허약하다. IT서비스업, 임베디드SW산업에서는 글로벌하게 활동하는 기업들이 제법 있다. 왜 일본은 패키지SW산업에서는 맥을 못 추나? 필자는 10여년 동안 일본의 SW산업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일본은 SW산업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하에서 그 이유를 설명해 보겠다.

패키지SW개발이라는 것은 매우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다. 우선 고객의 요구에 맞추어 SW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즉 오더 메이드 (order-made) 소프트웨어 개발 단계이다. 오더 메이드를 통해서 만들어진 SW를 일반적으로 솔루션 (solution)이라고 한다. 다시 유사한 주문이 들어오면 이 솔루션을 가지고 새로운 요구에 맞게 변형시켜서 고객에게 제공한다.

많은 솔루션 SW기업들의 로망은 솔루션을 패키지로 만드는 것이다. 솔루션 기업의 주된 수입원은 개발자의 인건비이다. 즉 하루 벌이 품팔이 장사이다. 그 반면 패키지 기업은 라이선스 장사를 한다. 무한 자기 복제하면서 라이선스를 벌어들인다. 그러나 패키지화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기능 면에서, 품질 면에서 문제가 없어야 한다. 솔루션 단계에서는 기능, 품질에 조금 문제가 있어도 고객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만, 패키지에서는 그러하지 않다. 따라서 패키지화 한다는 것은 많은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는 패키지SW를 개발하는 기업이 매우 적다. 패키지SW기업들은 제품이 안정화되기 전까지 매우 높은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 갤럭시 노트 7의 폭발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제품이 안정화되었어도 업그레이드 시키는 순간 다시 새로운 안정화 단계에 들어가기 때문에 다시 위험한 사업영역으로 들어간다. 일본인들은 리스크를 싫어하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개발업을 회피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환영받는 직업이 아닌 것이다. SW개발이라는 것은 지도없이 험악한 산을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사업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을 제대로 알지 못 한다면 길을 잃을 수 있고, 심지어는 돌아올 수도 없을 것이니 처음부터 오르지 말자는 것이다.

일본의 위험기피/꼼꼼 문화의 단면을 이야기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우리 속담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라는 속담이 있다. 일본에서는 이 속담이 이렇게 바뀐다고 한다. “돌다리를 두들기고 두들겨서 결국 무너진다.” 일본인들은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도 불안해서 건너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계속 두들기다가 결국 무너뜨리고 만다.

일본 기업인들의 머리 속에는 하드웨어적 사고가 가득 차 있어서 품질이 완전하지 못한 제품을 출시한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고 한다. 전자, 기계산업에 익숙한 기업인들은 제로 디팩트 (zero defect)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출시 전에 완벽한 100% 품질에 도달해야 한다. 그 반면 SW는 제품의 속성 상 일단 80~90%의 품질수준에서 출시를 하고 난 후 지속적인 하자수정을 통하여 완벽을 향해 간다. 패치 (patch)작업을 통해서 버전을 올리면서 제품의 품질을 올리는 것이 소프트웨어적 사고방식이다. 일본의 위험회피형 문화가 SW산업을 약화시키는 것은 수긍이 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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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캣 (copycat)이란 혁신기업이 먼저 열어 제친 시장을 보고 기회를 노리다가 냉큼 기술을 베껴서 시장점유율을 꿀꺽하는 기업을 뜻한다. 그래서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1980년대의 SW산업의 태동기 때 일본 기업은 왜 카피캣의 기질을 발휘하지 못 하였는가? 즉 실리콘밸리에서 애플, SUN,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새로운 운영체제 (OS), 새로운 솔루션 등을 개발할 때 NEC, 후지쯔, 히타치 등 일본 컴퓨터 메이커들은 왜 카피캣질을 하지 못 했는가?

대답이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필자는 이 또한 일본경영이 SW와 궁합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도시바, NEC는 일찌감치 컴퓨터를 제조하였다. 1950년대 중반에 컴퓨터 제조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컴퓨터는 껍데기만 있는 것이고 여기에 지능을 집어넣는 SW가 중요하다. 도시바, NEC가 이러한 사실을 왜 몰랐겠는가? 따라서 이런 기업들은 당연히 1990년대에 실리콘밸리로 가서 SW 개발자를 찾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를 돌리는 운영체제(OS)를 위하여 도시바는 실리콘밸리에 현존하는 최고수를 찾아서 고용 계약을 하고 직원화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최고수에게 운영체제SW를 개발해달라고 고용계약을 하는 순간 도시바는 실수한 것이다. 첫째, 이 직원이 운영체제를 완성할 즈음에는 이 직원은 더 이상 실리콘밸리의 최고수가 아닌 것이다. 지난 호에 히피의 재등장에서 언급했듯이, 1990년대에 무수한 자기고용 개발자들이 조용히 방구석에서 SW를 개발하고 있었다. 이러던 차에 일본 유수기업이 자기 동료와 덜컥 고액의 연봉계약을 하였다. 자기고용 개발자들은 더욱 분발하면서 성능이 더 좋은 OS를 만드는 경쟁에 뛰어들 것이다. 그리고 최고수가 바뀔 것이다. 이 도시바의 직원은 더 이상 실리콘밸리의 최고수가 아닌 것이다. 어쨌든 도시바는 이 직원이 만든 OS를 자신의 컴퓨터에 탑재해서 시장에 내놓을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SW 세계에서는 최고가 독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사실상 표준 (de facto standard)이라고 한다. 표준에는 법적 표준과 사실상 표준이 있다. 법적 표준이란 전기용품과 같이 법규에 의하여 표준이 정해진다. 그 반면 사실상 표준은 업계에서 다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표준이 된다. 점차적으로 표준 이외의 규격, 방식을 가진 제품은 시장에서 도태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런데 도시바가 탑재한 OS는 사실상 표준이 되지 못 하는 것이다. 결국 도시바 컴퓨터에서만 사용하다가 슬그머니 없어지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자유경쟁체제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아담 스미스 (Adam Smith)의 ‘보이지 않은 손’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누가 표준을 달성할지 모른다. 단지 시장이 성숙되고 많은 사람이 사용하기 시작할 때 표준이 결정되고 이 표준이 시장을 독식하는 것이다. 일본 기업은 이러한 자유경쟁에 익숙하지 못하다. 확실하게 보이는 손이 작동하는 시장에 익숙하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지금도 미쓰비시 계열, 마루베니 계열 등 자신의 계열 안에서만 표준으로 군림하는 SW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비표준 제품을 들고 세계 시장에 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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