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지식 칼럼] ERP와 내공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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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PM, Voyager Project Team, R&D.

 

태권도에서는 어제 갓 입문한 흰띠가 제일 무섭다고 합니다. 아마 수련하는 멤버 중에서 가장 활기차고 비전에 차 있다는 뜻일 것 같습니다. 저도 며칠 전에 새로운 운동에 입문하면서, 나름 느낀 것이 있었는데, 아마 제 와이프가 보기에 제 언행이 그 흰띠처럼 보였던 것 같습니다.

중국 무술에 특히 내공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마침 TV에서 추석 특집으로 꾸민 프로그램에서 내공의 뜻을 풀이하는데 무술을 수련한 년수라고 하길래, 무언가 특별한 과정이 있는가 하고 듣던 저에게는 의외였습니다. 제가 종사하는 업종의 언어로 하자면 경력에 가까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 갑자의 공력이라고 하면 60년의 수련을 뜻한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 참석한 Cloud 기술 관련 강좌에서, 세계적으로 권위가 있으신 국내 한 교수님의 말씀 중에 Opening 멘트로, 최신의 Cloud 기술이 정립되기 위해서는 지난 수십년의 기술의 여정이 필수적인 요건이었고, 그 중에 하나도 빠트릴 것이 없다라는 말씀을 듣고 공감하였습니다. 제가 특히 공감했던 이유는, 그 많은 분야 중에 중 한 분야라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수재가 아니라면, 각 분야마다 10년 (5년 이해, 5년 실전) 정도의 공력이 필요할 것 같았고, 그나마 각 분야에서 공력을 쌓을 기회가 있는 것 자체가 진기한 경험일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무협 소설에서 탁월한 기재를 가진 주인공이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게 되고, 그리고 그 절벽 중간에는 동굴이 있어야 하며, 그 동굴 안에는 일세를 풍미하던 고수가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그런 기연이 필수 사항으로 등장하던, 그 시나리오의 필연성이 이해가 될 것도 같습니다.

제가 일하는 ERP 분야는 사업적인 측면에서 볼 때 진입 장벽이 매우 높은 분야로 생각됩니다. 특정 고객을 위한 시스템 구축 컨설팅 서비스 프로젝트를 할 때는 분업화되어 IT 전문가, 업무 전문가, 시스템 구조 전문가, Web 전문가, Mobile 전문가, 디자인 전문가, 보안 전문가, DB 분석 전문가 등 다양한 인력들이 모여서 협업으로 일을 하는데, 이때 통합 관리를 하는 PM (Project Manager)의 역할이 절대적이며, 대개의 경우는 PM의 역량에 따라서 성과가 좌우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ERP라는 Package를 개발하는 일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일단 프로젝트에서와 같이 요구사항을 정확히 전달해 주는 고객 담당자가 없으며, 패키지는 다양한 산업의 속성을 수용하는 역량을 품고 있어야 하는데, 바다와 같이 넓고 깊고 어둡기도 한 업무에 대해서, 쌓아온 내공이 없다면 패키지는 졸작으로 끝날 것입니다. 또한 혼자가 아닌, 적어도 몇가지 분야의 핵심적인 기술과 업무의 통찰력 분야에서 고수 수준의 경지에 올라 있는 동반자가 없이는 아예 시스템 설계가 불가능하며, 투입되는 전문가들이 협업을 하더라도 서로의 분야에 대해서도 상당한 수준의 이해가 되어있지 않으면 소통이 어려우니, 그 필요한 구성원들이 모인다는 것 자체가, 무협에서 주인공이 절벽에서 떨어지다가 동굴을 만나는 것과 비슷한 경우일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추석 특집 중국 무협 다큐멘터리 TV에서, 한 당대의 고수가 나와서 어쩌면 이 세상 어딘가에 과거의 무술 고수가 터득한 비급이 숨겨져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실소와 함께 상당한 생각의 괴리를 느꼈습니다만, 오죽하면 TV 에서, 그런 말을 했을까 생각하니,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한 고충과 깨달음의 어려움을 이해는 할 것 같았고, 왜 고수들은 백발일 수 밖에 없는가 이해가 될 것 같았습니다.

BI (Business Intelligence) 분야에서 Magic Quadrant 상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Analytics 솔루션 제공 업체가 배포하는 홍보 자료에서 보면, 결국은 업무와 고객에 대한 이해가 가장 핵심 역량이며, Salesman이 고객에게 다가갈 때 무엇에 대해 무슨 말로 접근할 것인지, 고객 기업의 Context에 대한 소통 역량이 가장 우선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스템의 관리를 4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서 기술 메타, 비즈니스 메타, 운영 메타, 사용 메타 영역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보고, 저 나름대로 생각하기를, 요즘 Hot한 사항인 CX (Customer Experience) 혹은 DX (Digital Experience)를 구현하기 위해서 운영 메타, 사용 메타를 표면화 한 것 같다는 추측을 하였습니다.

사용 메타의 Data 수집 분석을 위해서는 IoT, 기술이 필요할 것이고, 운영 메타를 통하여 고객과의 대화를 리드하기 위해서는 Machine Learning, Big Data, AI 기능을 통하여 사용 기업의 성향과 포트폴리오 분석 자동화 가능으로 고객의 요구 사항과 Pain Point를 미리 예시하면서 더욱 민감하게 고객 만족도를 추구해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의 ERP 시스템이 포괄적으로 제공하던 Data ETL (Extract, Transform, Loading) 기능은 더욱 세밀하여 지고, 기존의 업무 관리 주기는 과거의 월 결산 주기에서, 특히 B2C 산업에서는 오전/오후로 일 단위를 둘로 나누어서 관리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으며, 업무의 계획 대비 실적 관리를 근간으로 하는 ERP 시스템은 이러한 기술의 변화와, 엄청나게 짧아진 Data 주기를 포용하여, 바다처럼 흘러가는 산업의 흐름과, 강물처럼 소용돌이 치며 짧아져 가는 기업의 운영 주기와, 거기에 맞추어 적응해 가야하는 기업의 담당자와 경영진의 생체 리듬에 맞추어 갈 수 있도록 빠르게 진화되어 가야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기술의 등장은, Cloud 시대를 앞서서 맞이하며, 업무 시스템의 운영 메커니즘, 즉 업무의 구성과 운영 원칙과 프로세스의 결에 따라, 충실하게 업무 지식의 내공을 쌓으며, 동시에 소프트웨어 공학의 원칙에 충실하게 시스템 패키지의 기반을 쌓아온 전문 업체에게는, 한 호흡을 쉬며 재정비하는 기간을 거치면서, 곧 차별화와 기회의 시간을 맞게 될 것입니다.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지금의 Cloud 시대가 오기까지, 과거로부터의 여정에서 쌓아온 소프트웨어 기술과 업무 지식은 하나 빠짐없이 필연적으로 쌓아 왔어야 할 기둥으로서 내공의 바탕이 되며, 새로운 기술은 그 내공을 더욱 빛나게 할 도구가 될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자원은, 역시 내공을 가진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신기술의 등장에 비하여서, 그렇게 쉽게는 바뀌지 않는 기업의 문화와 업무 체제와 사람들 사이에서, 번쩍이는 신기술과 소프트웨어 공학과 업무 지식과 경험을 묶어서 어떻게 잘 갈무리할 것인지, 이를 위해 필요한 내공을 간직한 고수를 얼마나 많이 간직하고 있으냐 하는 것이, 당장의 먹거리가 되는 프로젝트의 수주보다도, 내공을 패키지로 아우르고 녹여내는 역량으로서 핵심 성공 요건이 되겠습니다.

최근에 글로벌 업체를 포함하여 유독 인사관리 시스템이 자주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협 영화에서 보면 많은 고수들이 더 강한 상대와 마주하였을 때, 어깨 위에 손을 얹거나 하는 모습으로 내공을 모아서 대응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기술과 지식을 아우르는 내공의 통합 관리 역량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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