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Letter: ‘3·1운동의 정신뿐 아니라 나라가 왜 망했는지도 되새겨 봐야 합니다(2017.03.01)’

3·1운동의 정신뿐 아니라 나라가 왜 망했는지도 되새겨 봐야 합니다

2017.03.01


오늘은 3•1운동을 기념하는 삼일절입니다.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후 맞은 첫 번째 삼일운동 기념일 1946년 3월1일에 민족 진영과 좌파 진영이 따로 기념식을 열었다고 합니다. 이듬해엔 서울 한복판에서 충돌해 대규모 유혈 사태로 번졌고 이것이 찬탁·반탁으로 확대되며 남북 분단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최근에 매 주말마다 열리는 대규모 탄핵 찬반 집회를 보면서 섬뜩한 전율이 느껴지며 나라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도 양측 모두 가장 큰 규모의 군중이 모인다고 선전하는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선열들의 나라 사랑과 민족 자결 정신을 기리고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날에 남북으로 갈라진 남쪽에서만도 모자라 이렇게 분열된 나라 모습을 다시 보이고 있다는 것이 더 한심한 것입니다.

3•1운동의 정신을 폄훼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나라를 빼앗긴 후 독립을 요구하는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라를 빼앗기지 않게 하기 위한 다짐과 행동으로 이끄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19세기 말의 한반도의 정황이 작금의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정황과 그리 다르지 않기에 또 다시 굴욕적인 국가적 수치가 재현되지 않게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다시 영광스러운 조국을 만들어 가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 같습니다.

조선 중기에 두 차례나 일본에 이어 청나라의 침략으로 나라가 거의 망하기 직전까지 갔었던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고, 부국강병과는 하등 상관없는 사변 논쟁을 일삼으며 유혈로 얼룩진 당쟁을 일 삼았던 조선의 사대부들의 모습과 요즈음의 정치권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왠 일일까요?

사실은 일본 근대화 성공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메이지 천황과 고종이 같은 해에 태어났고 왕으로 즉위한 것은 고종이 3년 빨랐다는 측면에서 보면 19세기 말에 조선도 성공적인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던 마지막 시간적 기회는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의 근대화인 문명 개화를 앞두고 지배층은 크게 세가지 유파로 나뉘어 서로를 반대하고 헐뜯는 어리석은 행보를 보였습니다. 서구열강과 일본과 중국의 치열한 침략 야욕 속에 둘러싸여 있던 난세에 근거 없는 도덕적 자만심과 서양을 야만으로 간주하며 문명개화를 반대했던 최익현을 중심으로 하는 위정척사파- 유교적 문화를 수호하고(衛正) 그 이외의 종교와 사상은 모두 사악한 학문이라 하여 배척하는(斥邪) 파-에 휘둘려 개항을 늦추고 새로운 문물을 배우는데 실기를 함으로써 나라의 힘을 기르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안타깝습니다.

김옥균을 중심으로 하는 급진개혁파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감복하여 내각책임제 및 의회의 도입 등 일본의 ‘문명개화론’을 수용하는 것이 조선의 자주독립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하며 온건개혁파마저 ‘수구사대당’이라고 몰아붙이며 ‘3일 천하’로 끝난 유혈정변 갑신정변 후 일본으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이들은 일본의 ‘조선 개조론’을 앞세운 침략 야욕에 동조하는 꼴이 되어버린 헛된 개혁을 좇았던 것입니다.

조선의 마지막 영의정 김홍집을 중심으로 하는 온건개혁파는 ‘동도서기론’- 동양의 전통적인 사상과 가치관은 지키면서 서양의 기술과 기기(器機) 등은 받아들이자는 주장-을 기치로 내걸고 부국강병을 강력하게 추진하였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3차에 걸친 갑오 개혁을 이끌면서 조국의 근대화에 전력을 다하였으나 고종과 이완용을 비롯한 친러세력들은 아관파천 후 자신들의 일탈 행위를 합리화 차원에서 단발령 등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최대한 이용하여 그 죄를 김홍집을 비롯한 5 대신들에 대한 포살령으로 돌려 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였습니다.

고종을 배알하러 갔다가 연행되어 잡혀 가던 중에 백성들에 의해 돌로 무참히 타살된 김홍집은 탁월한 개화사상가로 대한제국의 초대 총리로써 정무 능력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탁월했다고 합니다. ‘일국의 총리로서 동족에게 죽는 게 천명‘이란 말을 남기고 비명에 간 그의 사후 조선조는 혼미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일제에 병탄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국강병을 이룬 국가만이 번영하고 국민들에게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게 할 수 있습니다. 허약한 나라의 국민들이 평안하게 잘 산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항시 불안 속에 먹고 살 것을 걱정하며 살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강병은 항상 부국이 먼저 이루어져야 이룰 수 있기에 부국강병이라 하지 강병부국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과거엔 대부분의 국가의 인구가 농업에 종사하고 살았기에 부국을 이루기 위해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일을 열심히 하게 하는 농본 정책 위주로 장려되었습니다만 산업화 이후에 대부분의 국가의 부는 기업들로부터 창출되기 때문에 국가의 주요 정책이 기업 활동을 어떻게 장려할 것인가가 되어야만 합니다. 기업의 기를 꺾고 기업으로부터 더 거둬내서 표를 위한 선심을 쓰는 등의 정책 방향은 국가의 부를 허약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빈국약병으로 가게 되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永林院의 존재의 목적을 ‘고객 기업이 경영을 더 잘하게’로 정한 것은 정말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고객 기업들이 경영을 더 잘 하게 해서 우리나라의 부국을 이루는 일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Y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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