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으로써의 -Way

2014.9.1

영화 ‘명량’이 1,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에서 상영한 영화 중에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나도 가서 봤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대보다 감흥이 덜 했습니다. 실제 더 감동스러웠던 사실들 ? 백의종군으로 옥에서 풀려난 이후 정말 아무 것도 없는 빈손에서 해전사상 최고의 성과를 이루어내 가는 과정이나 억울한 옥살이와 사형을 면한 직후에 백성과 국가를 위해 묵묵히 죽음의 길을 선택한 한 인간으로써의 위대한 면모 등-이 부각이 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국민의 관심이 이처럼 집중적으로 쏠리는 것은 그만큼 지금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상황이 전쟁 못지 않게 위중한 상황이라 느끼고, 이 난국을 해결해 갈 국가 차원의 리더십을 필요로 하다는 것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명량해전’에서 우리가 패했다면 조선도 망했고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란 얘기도 있을 만큼 정유재란 당시의 전황은 위태로웠던 시기였슴에 틀림없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명장으로서의 리더십은 신뢰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나왔던 탈주범의 목을 효수하는 장면 에서 보았듯이 어떤 상황이건 이순신 장군은 정직하고 원칙에 충실했습니다. 출장 갈 때 지급받은 쌀에서 남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도로 가져와 반납했고, 발포 만호로 있을 때는 상관이 거문고를 만들기 위해 관청의 오동나무를 베려 하자 이를 단호하게 저지했다고 합니다.

 

훈련원 봉사(종8품)로 근무하며 군의 인사행정을 담당할 때 그의 상사인 병조정랑(정5품) 서익(1542~1587)이 자신의 친지를 참군(정7품)으로 승진시켜 달라고 청탁을 했습니다. 이순신은 “서열을 건너뛰어 진급시키면 당연히 진급해야 할 사람이 진급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불공평한 인사 조치는 법을 위반하는 것이므로 서류를 작성할 수 없습니다”라며 거절했습다. 이에 앙심을 품은 서익의 모함으로 이순신은 1582년 1월 관직을 잃었습니다.

  장군의 올곧은 성품 탓에 윗사람에게 미움을 샀으나 부하들과 백성들은 장군을 진심으로 신뢰했습니다. 1597년 장군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백의종군하는 사이 우리 수군은 일본에 참패해 거의 없어질 처지였습니다. 이후 다급해진 선조는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했는데 빈손으로 수군을 재건해 기세등등하게 침투해 오는 대규모의 일본 수군을 막으라는 셈이었던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병력·배·무기·군량 등에서 역사상 가장 초라한 해군사령관’으로써 일본군의 추격을 피하면서 군사를 모았습니다. 이순신이 나타나자 도망갔던 군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의 호응도 뜨거웠습니다. 이순신을 따르면 살 수 있다는 믿음이 더욱 깊어져 피란민들은 명량까지 따라왔습니다. 피란민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식량과 옷을 갖고 와서 우리 수군을 도왔고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웠습니다. 군민이 하나가 됐기에 장군은 기적과 같은 명량대첩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께서 그간에 쌓아왔던 신뢰가 없었다면 감히 명량해전을 시도할 준비조차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역시 개인이건 조직이건 신뢰는 가장 큰 자산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 리더십의 두 번째 가치 항목은 바로 ‘목적을 중시하며’에 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난 후 백의종군을 하면서 전쟁에 나서고 싶은 기분조차 안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군께서는 오로지 이 나라 이 백성들을 참화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그 목적 하나 외에는 나머지 모두가 덜 중요한 것들이기에 다 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영화 속 장면이 바로 ‘必死卽生, 必生卽死’란 연설로 전 군민에게 싸워야 할 목적을 호소하는 장면이었던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항상 군량을 걱정하여 백성들을 모아 둔전을 경작하게 하고, 고기를 잡게 하고 소금을 굽고 질그릇을 만들게 한 뒤, 이를 시장에 내다 팔아 양식으로 바꾸어오게 했다고 합니다. <선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이순신은 명량해전 이후 고하도를 거쳐 고금도로 진을 옮긴 뒤에도 둔전을 많이 일구고, 물고기와 소금을 팔아서 군량을 넉넉히 마련함으로써, 몇 달 되지 않아 군사의 기세가 산중의 호랑이마냥 크게 떨쳤다고 합니다. 아마 이러한 일들은 바로 장군께서 백성들에 대한 사랑과 궁극적으로 그 삶을 평안케 하고자 하는 것이 가장 큰 장군의 ‘삶의 목적’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냐는 생각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단연 압권이었던 장면이 바로 다들 두려워 왜선과의 접전을 회피하고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있을 때 선두 기함 홀로 울둘목의 초입으로 나아가 외롭고 힘든 싸움을 지휘했던 장군의 모습에서 ‘주도적인 삶’의 전형을 보여 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장군은 매일 밤 겨우 서너 시간 자고 일어나서 사람들을 불러들여 날이 밝을 때까지 의논하는 일이 많았고, 이따금 손님이 와서 함께 술을 마신 날도 새벽닭이 울면 반드시 일어나 혼자서 문서를 보기도 하고 혹은 전술을 궁리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또 거북선을 만들고, 일본의 조총을 입수하여 총통의 성능을 개량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이는 등 장군께서는 항상 부지런하고 솔선수범하고 연구하는 ‘주도적인 삶’의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명량해전에서 발휘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의 실체는 바로 이 세 가지 가치 항목인 ‘신뢰를 바탕으로’, ‘목적을 중시하며’, ‘주도적인 삶’이었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정신이 힘이 되어 12척의 함선으로 333척의 왜선을 물리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전의 승리를 일궈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바로 이 ‘永-Way’ 정신을 바탕으로 Aisa No.1의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Y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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