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회 영림원CEO포럼]“한국의 새벽, 한국의 인물, 한국의 성공(조선 창조경영의 도전자들)”

“한국 대기업 후예들 어디로 가고 있는가”

소설가 고정일 동서문화사 대표 영림원CEO포럼서 ‘한국의 새벽, 한국의 인물, 한국의 성공’강연


소설가 고정일 동서문화사 대표가 6일 제122회 영림원CEO포럼에서 ‘한국의 새벽, 한국의 인물, 한국의 성공(조선 창조경영의 도전자들)’을 주제로 강연했다.
국내 어느 주간지에 ‘창조경영의 도전자들’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근현대사 인물 25명의 창조경영 이야기를 연재했던 고 대표는 이번 강연에서 “재벌의 2~3세대들이 탐욕에 빠져 창업자들이 피땀 흘려 쌓은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면서 “조선의 거상 임상옥이 남긴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말을 명심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물에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사사로운 이익보다 정의를 생각하자는 뜻이다.


◆조선의 거상 ‘이용익과 이승훈’에게 배운다 =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인생의 성공 비결을 묻는 조사에서 20~30대의 절반 이상은 인맥이, 60~70대의 80%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사회는 세대 간 견해 차이도 크고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부 자체에 분노하기 보다는 부당하게 쌓은 부에 분노하며,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삶이 더 가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이를 조선경영 민본사상의 핵심인 ‘재물은 물과 같아서 누구도 막을 수 없으며, 장사는 사람이며 사람은 곧 장사다’라는 경제경영 철학으로 되새겨본다.
조선시대는 양반계급사회로 상업과 장사를 천시했다. 한말에 이런 관념을 깬 인물이 조선의 거상 이용익, 이승훈이었다.
이들은 이보다는 의를 중시하고, 재물보다 사람을 남기는 상인의 도를 걸었다. 장사는 경제 뿐 아니라 정신 및 문화 활동의 매우 중요한 토대이다.
일찍이 이용익과 이승훈의 경제경영 철학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 경제가 있게 됐다.

◆“이보다는 의를, 재물보다 사람을 남기는 상인의 도를” = 이용익은 천출이었다.
등짐장수로 방방곡곡을 떠돌며 시장 바닥에서 발로 익힌 세상 물리로 몸을 일으켜 한말의 정계와 재계를 쥐락펴락하는 최고 관직에 오른다.
봉건 사회 끝 무렵 근대경제와 실물경제를 꿰 뚫어보는 안목과 식견으로 현대 경제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고 근대공업과 교육 발전에 이바지했다.
이용익은 함경북도에서 종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보부상으로 전국을 다니다가 민씨 집안의 민영익을 만나고, 임오군란 때 민비를 서울에서 300리 떨어진 장호원으로 탈출시키는 공로를 인정받아 민영익의 식객으로 들락거리며 정계에 들어섰다.
정계 입문 이후 인삼과 금광의 전매화로 왕실 재정을 튼튼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용익의 등장으로 왕실 재정이 튼튼해지자, 일본은 이러다가는 합방이 늦어질 것이라고 생각해 이용익을 일본에 압송해서 죽이려고 했다.
이용익은 일본으로 끌려갔다. 당시 일본에는 명치유신에 참여한 한 사람의 후손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이용익과 대화를 하다가 죽이기 아까운 인물이다, 오히려 우리 편으로 만들어서 일본이 중국과 러시아로 나아가는데 활용하고자 했다.
이렇게 살아남은 이용익은 일본에 남았는데, 일본 전 지역에 학교가 세워지고, 출판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는 것을 목격하고, 조선도 이렇게 나아가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육과 문화가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이용익은 나라의 돈이 아니라 개인 돈으로 인쇄기계와 서적을 구입했다.
조선으로 돌아와서는 인쇄출판사 보성사를 차리고, 지금의 고려대학교 전신인 보성학원을 설립했다.

◆“성공 비결은 뜻이 정의롭고 변화하지 않아야” = 그 후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프랑스와 러시아로 가서 도움을 청했는데 실패하고,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 친일세력이 보낸 자객에게 총탄을 맞고 중상을 입고 이르쿠츠크에서 사망했다.
이용익은 “교육과 경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독립할 수 없다”는 유서를 남겼다.
남강 이승훈도 장사로 큰 부를 축적한 인물로 서적 출판, 교육 등에 헌신했다.
그가 세운 오산학교는 애국사상의 요람지로 이광수, 함석헌, 유영모, 조만식 등이 여기서 배출됐다. 3·1 운동 때에는 기독교 대표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고, 이후 동아일보 사장을 지냈다.
“내 육신을 화장하지 말고 무덤도 만들지 말고 해부해 생체 실험 도구로 써라. 이것이 나라에 이바지하는 내 마지막 일이다”라고 이승훈은 유언했다.
이용익과 이승훈은 장사로 번 큰 돈을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했던 빛나는 인물이었다.
두 인물에게서 배우는 정신적 또는 물질적 성공의 비결은 지망하는 뜻이 정의롭고 일정하면서도 오로지 변화하지 않는데 있다.
사람들이 그 사업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외곬으로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지 성공의 길이 험악해서 만이 아니다.

◆“재벌 2~3세들의 탐욕이 문제” = 이렇게 식민지 통제 경제의 폭풍 속에서도 끝까지 조선 상인의 신조를 꿋꿋이 지켜 나갔던 기라성 같은 상재들이 있었다.
해방 이후에는 이승만과, 박정희, 그 불굴의 산업화 정신을 꽃피운 경제인들이 나와 현대 한국 경제 성장의 주역이 됐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이 있다. 오늘날 재벌 2~3세들은 창업주들이 심혈을 바쳐 쌓아올린 업을 절절하고 올바르게 간직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창업주들이 깨달았던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이치를 2~3세들은 모르고 있다.
이를 제대로 안다면 문어발이 되어, 돈만 된다면 골목 구멍가게까지 거침없이 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사업 정의로 귀족 노조를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2~3세들이 물 불 가리지 않는 탐욕에 빠진다면 창업자들의 공든 탑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날은 생각보다 빨리 닥칠 수도 있을 것이다.


<박시현 기자> pcsw@bikorea.net

 

영림원 CEO포럼에서 강연된 내용은 ㈜비아이코리아닷넷의 [영림원CEO포럼]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http://www.bikorea.net/news/articleView.html?idxno=1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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