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모르는 중국의 모습”

김명호 성공회대 교수 영림원CEO포럼에서 ‘중국 인물들의 도전정신과 리더십’ 강연


김명호 성공회대 교수는 2일 제119회 영림원CEO포럼에서 ‘중국 인물들의 도전정신과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번 강연에서 김 교수는 “중국인이 더럽고 게르다는 우리의 인식은 일제 식민통치 기간의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며, 실제로는 민첩하고 실용적이다. 그리고 중국은 모방을 좋아하지만 모든 것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라고 밝혔다.

◆우리의 중국에 대한 오해 = 우리 조상들은 대대로 중국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단절 기간이 있었다.
그것은 중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꼽히는 1949년 10월 1일 사회주의 정권의 수립부터이다. 이 때부터 과거 중국의 모습을 완전히 뒤집고 新 중국으로 변모했다.
등소평이 집권하고 나서는 신 중국에서 다시 옛날 중국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흔히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라고 얘기하는데 틀린 말이다. 중국식 사회주의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며, 중국식 자본주의가 맞다.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보는 잘못된 시각을 바꿔야 한다. 중국 우화에 장님 코끼리 만지기 이야기가 있다.
누구는 코만, 누구는 다리만 만져 놓고 그것이 코끼리의 본 모습이라고 서로 우기는 내용이다. 중국을 보면 볼수록 이만한 비유가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중국에 대한 시각은 왜곡돼 있다. 일제 식민통치 기간에 빚어진 교육 때문이다.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발발하고 중국과 본격적인 전쟁에 들어가면서 중국인을 게으르고, 더럽고, 비겁하다고 매도했다. 중국을 비하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때부터다.
그러나 중국인은 동작이 느리지 않고 민첩하다. 옛 것을 잘 바꾸지 않으려는 보수적인 성향도 강하다.
우리나라는 고려와 조선 왕조가 500여년이나 유지한 사실을 두고 자랑한다. 중국은 25개 왕조가 있었는데 200년 이상 유지한 왕조는 많지 않았다.
어느 중국 지인은 어떻게 한 왕조가 500년이 넘도록 지탱할 수 있느냐고 묻더라. 이는 대체 세력이 전혀 없었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개방사회를 겪어보지 못했다. 고집이 세고, 새로운 것의 수용을 주저하며 모방에 대해 폄하한다.
그런데 모든 것의 출현은 모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중국인은 모방으로부터 시작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를 좋아한다.
중국 기업 ‘소나’는 일본의 ‘소니’를 모방했는데 상품의 생긴 것은 똑같으면서도 가격은 소나가 저렴했다.
어느 중국인이 일본에 여행가서 소니를 보고 소나와 똑같네 라고 했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김 교수가 1980년대 말에 만난 중국 인민일보 사장은 소시지를 보여주면서 한국에도 이런 것이 있느냐, 있으면 중국에서 수입해 먹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모든 것을 중국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잘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중국인들이 꼽는 이상적인 정치가 ‘장개석’ = 대만의 철혈 통치자였던 장개석이 요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천안문 광장에 모택통의 초상화가 걸려 있지만 중국인들은 이상적인 정치가로 장개석을 첫째로 꼽는다.
1975년 장개석이 사망하자 중국 대륙에서는 장개석을 항일전쟁과 국공합작의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칭송하고 조기를 게양했다.
장개석의 아들 장경국이 1988년 사망할 때는 중국 정부는 대륙인들의 대만 현지 조문을 독려하고, 천안문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대만을 향해 절을 하기도 했다.
중국과 대만은 1950년대에 서로 엄청난 포격전을 벌이며 싸웠는데, 중국의 이러한 모습은 우리의 사고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1989년 6월 4일 일어난 천안문 사건 당시 중국인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사건이 발생하자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천안문으로 몰려들었다. 분신자살이니 단식 투쟁과 같은 얘기들이 나왔다.
단식자들이 최후의 만찬을 하고 단식에 들어갔지만 불과 이틀 후에 포기했다. 분신자살은 한 건도 없었다.
극단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중국인들의 속내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중국인들은 몸을 부딪치는 스포츠를 싫어한다. 중국이 축구를 잘 하지 못하는 이유다.
중국은 태평양 전쟁의 전승국이었는데 홍콩은 처칠의 입김으로 영국 식민지로 편입됐다.
영국은 중국에게 홍콩 주재 총영사관을 개설하라고 했는데 장개석이 거절했다. 홍콩은 중국 땅인데 우리 땅에 영사관을 세운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논리였다.
우리나라는 장자 상속이 당연하지만 중국은 자식들이 똑같이 나눠 가진다.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유리컵도 깨서 나눠 가질 정도의 사고를 갖고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 작업에 대한 우리의 비판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중국은 한족이 많은 나라이지만 한족이 지배한 왕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북방 기마 민족이 거의 중국을 지배했다. 그런데 중국을 지배한 북방의 기마 민족들은 모두 한족에 동화되어 버렸다.
이것이 바로 중국이 직접 정벌을 하지 않고도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고구려가 중국을 지배했을지라도 결국에는 중국에 동화됐을 것이라고 보는 게 중국의 시각이다.
김일성이 모택통과의 대화에서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은 옛날 우리의 영토였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러자 모택동은 “네 말이 맞다. 그런데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 옛날 우리 황제들이 그런 것이다. 지금 내가 너희에게 그 영토를 주면 감당하겠느냐”면서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했다는일화가 있다.

◆모방을 좋아하고 실용적인 중국인 = 중국 문화혁명 시대에 홍위병들이 들어가지 못한 지역이 있었는데 절강성 ‘온주’라는 곳이었다.
온주는 밀감으로 유명한 고장으로 흉내내기를 좋아했다. 1980년대에 온주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집집마다 공장을 두고 짝퉁을 만들더라. 주희는 논어의 “학이시습지..”에서 학을 흉내 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새가 엄마의 나는 것을 흉내 내어 언젠가는 나는데 바로 이게 학이라는 것이었다. 중국의 개혁 경제는 처음에 서구 시장 경제를 모방해 시작했지만 이제는 중국식 고유 경제체제를 만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
중국인들은 매우 실용적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1원을 주고 두부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보내는데 그 아이가 1원을 다주고 그냥 두부만을 사오면 한심한 놈이라고 지적받는다.
두부에 흠이 있다고 억지로 따져 좀 더 싸게 사거나 사탕 하나라도 덤으로 받아야만 한다. 이게 중국인들의 모습이다.
세상사는 미완성이다. 중국 사람들은 모임에서 소설 홍루몽(紅樓夢) 얘기하기를 좋아한다. 각 도시마다 홍학(紅學독)이라며 독립적인 학파를 만들어 연구할 정도이다.
홍루몽의 저자는 원래 남경의 대부호였는데 집안이 몰락하자 북경 교외에 거주하면서 구걸하며 살았다.
구걸하면서 문 앞에서 노래하고 시를 읊어줬다 이 소식을 들은 중국 문단의 어느 사람이 이 홍루몽의 저자가 사는 집에 가보니 원고가 쌓여 있었다.
이 원고를 출간한 것이 바로 중국 최고의 명저로 꼽히는 홍루몽이었다.
그런데 홍루몽은 저자가 그 내용을 완결하지 못한 채 죽어 미완의 작품으로 남았다. 그래서 나중에 작가들마다 너도나도 끝 부분을 더해서 완결판을 썼는데 그게 수천개나 된다.
홍루몽이 제대로 끝을 맺었으면 이렇게 생명력이 길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은 미완성이다.


<박시현 기자> pcsw@bikorea.net

 

영림원 CEO포럼에서 강연된 내용은 ㈜비아이코리아닷넷의 [영림원CEO포럼]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http://www.bikorea.net/news/articleView.html?idxno=1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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