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있는 음악실] 6월, Brahms intermezzo Op.118-2


중학교 3학년 때 제주도 친척 집에 갔습니다.
초여름 어느 날 데려가 주신 해안도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뒷문으로 나가니
하늘빛 밤 바다에 파도가 부드럽게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고요함과 역동, 어둠과 찬란함의 연속을 온 몸으로 느끼며 한 동안 넋이 나가 있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아름다움과 어울리는 곡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지난 달 슈만 부부의 사랑이야기를 기억 하시나요?

이 이야기에서 가지치기를 해보겠습니다. 남의 연애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으니까요.

슈만 부부에게 자신이 작곡한 곡을 보여주기 위해 찾아온 청년이 있었습니다.
슈만 부부는 이 청년의 음악적 천재성에 감동했고, 함께 살 것을 제안합니다.
이후 세 사람은 끊임없이 교류하며 인간적인 애정과 신뢰, 서로의 예술에 대한 돈독한 공감을 갖게 됩니다.

부부의 아이들에게는 다정한 삼촌, 슈만에게는 음악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누는 예술적 동지,
그리고 클라라에게는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다정한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이 청년은 바로 요하네스 브람스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브람스를 매력적으로 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는 잘생김입니다. 

브람스는 완벽주의자이며, 순수하고 학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뛰어난 재능과 인품에 미모까지 지닌 클라라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브람스는 14살 연상인 클라라에 평생동안 일종의 플라토닉한 연정을 품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친한 동지이자, 스승이었던 슈만의 아내였기에 브람스는 그 마음을 존경, 혹은 경애로 표현하며 자신을 타이르고 창작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영화 [클라라] 속 세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다 세 사람 사이에 결정적인 사건이 생깁니다.
슈만의 정신병이 악화되어 라인 강에 투신한 것입니다.

당시의 라인 강

슈만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브람스는 깊은 상처를 받은 클라라와 그녀의 아이들을 보살핍니다.
슬픔을 함께하고 공감을 나누며 사랑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결국 슈만은 사망했고, 브람스는 미망인이 된 클라라에게 자유롭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오히려 전보다 더욱 침착했으며, 불타오르던 정열은 예술적 영감으로 승화되었습니다.

클라라는 브람스 일평생 사랑한 여인이자 뮤즈였고, 그가 만든 음악 중 상당수는 그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소개 드릴 곡 또한 클라라에게 헌정된 곡입니다.
작품번호 118번 여섯 개의 피아노 소품 중 두 번째 곡인 인터메조(intermezzo, 간주곡)입니다.

 

Brahms Intermezzo Op.118 No.2 in A major
 

이 모음곡은 1893년 브람스의 말년에 쓰여진 것으로,
그 중 두 번째 곡 인터메조는 가장 사랑받는 피아노 소품 중 하나입니다.

피아노 치는 노년의 브람스

1896년 클라라가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브람스는
“나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상실했다.” 라고 합니다.

그로부터 약 1년 후 64세를 일기로 클라라의 뒤를 따르듯 세상을 떠납니다.

 

제가 이 곡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0년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어느 연주회였습니다.

정열적인 피아노 협주곡을 마치고 시작된 고요하고 따뜻한 연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뜨겁고도 시린 느낌의 이 곡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가 됐습니다.
이후로도 김선욱은 이 곡을 앵콜곡으로 자주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 멋진 청년은 2014년에 유부남이 되었습니다…
 

브람스는 청년 시절부터 유명하고 인기가 많았기에 재정적으로 여유로웠지만 본인은 검소한 생활을 하며 친척, 주변인들이나 가난한 젊은 음악가들을 도우며 살았다 합니다.
내성적이고 무뚝뚝했지만 주변 사람을 잘 챙기며, 산책을 할 때에는 주머니에 사탕을 넣고 나가 아이들에게 나눠주곤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순수하며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완고한 완벽주의자가 만든 음악,
브람스의 음악을 듣고 브람스라는 사람의 인간미를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한편, 2014년에 방영된 JTBC드라마 밀회에서도 이 곡이 하나의 소재로 쓰였습니다.

극 중 선재(유아인)는 사사하는 교수의 아내인 혜원(김희애)과 음악적으로 교감하며 연정을 품게 됩니다.

피아니스트 데뷔 무대에 오르던 날, “니가 젤 잘 보이고 젤 잘 들리는 곳에 있어”라고 격려하는 혜원에게 선재가 답합니다.
“만약에 앵콜 받으면 이거 칠게요.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다 생각하고 그런 줄 아세요”

이어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치고 연주한 앙코르곡이 인터메조였습니다.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평생 사랑한 브람스처럼 어떠한 조건 하에서도 혜원을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소재가 된 것입니다.

 


혜원이 선재를 생각하며 고뇌에 잠기고 선재의 연주가 깔립니다.
사운드는 음원을 사용하였지만, 유아인은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대역을 쓰지 않고 오랜 시간 연습하여 직접 피아노를 연주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음악이 고된 삶에서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참고자료
창원문화원

이미지 출처

밤 바다 사진
Robert Schumann 
Clara Schumann 
Johannes Brahms
영화 클라라 스틸 컷
피아노 치는 브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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