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원문

ERP만 20년, 영림원 권영범 대표의 ‘결심’

영림원소프트랩(이하 영림원)은 국내 대표적인 전사적자원관리(ERP) 소프트웨어 회사다. 1997년 처음 K-SYSTEM이라는 ERP 제품을 국내 최초로 출시해, 20년 동안 이 제품을 발전시켜왔다. 영림원의 권영범 대표는 대한민국 ERP 소프트웨어 업계의 산 역사라고 불려도 무방할 것이다.

권영범 영림원소프트랩 대표

영림원과 권 대표가 처음부터 ERP 사업을 했던 것은 아니다. 영림원은 1993년 설립됐는데 처음에는 주로 메인프레임 기반의 업무 시스템을 다운사이징 하는 사업을 했다. 그러나 용역 비즈니스의 한계를 깨닫는 것은 오래걸리지 않았다.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통신바둑 K2 등 윈도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유통시장이 붕괴되면서 이 사업은 수익성 있는 비즈니스로 존립하기 어려웠다.

권 대표는 1995년 10월 C/S(Client/Server)형 경영관리 패키지를 개발에 목숨을 걸자고 다짐했다. 영림원 ERP의 출발점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진행하던 동일교역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기회를 잡았다. 개발하던 소프트웨어를 현장에서 테스트할 기회를 잡았고, 무리한 패키지 개발에 어려워졌던 자금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 결과 1997년 K-SYSTEM이 세상에 선보였다. 윈도 기반의 2티어 시스템이었다. 정확한 것은 따져봐야 하겠지만 권 대표는 “국내 최초의 ERP 제품”이었다고 회상했다.

그 다음 과제는 규모가 큰 기업도 K-SYSTEM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 “국내 ERP는 소기업 전용”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권 대표는 대기업도 사용할 수 있는 국산 ERP를 만들고 싶었다.

기회는 롯데제과에서 잡았다. 1999년 롯데제과가 Y2K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들어갔는데 영림원이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2티어, 4GL 기반의 시스템을 3티어 비주얼베이직 기반으로 변경했다.

권 대표는 “이 프로젝트에서 다시는 SI(시스템통합)성 프로젝트, 연합군 방식의 프로젝트는 안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됐지만, 대기업 계획 생산 물류 시스템을 실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쌓은 경험은 2000년에 출시된 K-SYSTEM 2000 버전에 녹였다.

SI성 프로젝트는 안 한다는 결심을 했지만 영림원은 이후 롯데칠성 프로젝트를 한 번 더했다. 웹 열풍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랫폼 구조 변경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영림원은 이 프로젝트 PM을 맡으면서 새로운 기술을 적용할 기회로 삼았다. ASP.NET과 C#으로 기반 기술을 변경했다. 이 경험은 역시 2004년 출시된 K-SYSTEM 3.0에 반영됐다.

이처럼 영림원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제품의 기반 기술을 변경해왔다. 이는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소프트웨어 기업의 경우 대부분의 최초의 기반 기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데 주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영림원은 제품의 기반 기술과 아키텍처를 바꿔가면서 기술 흐름에 맞춰왔다. 서비스지향아키텍처가 등장하면 K-SYSTEM을 서비스 중심으로 재설계 했고, ERP를 넘어 분석 소프트웨어로의 확장을 꾀하기도 했다. 클라우드 제품도 이미 출시해서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다.

권영범 대표는 최근 커다란 결심을 하나 했다. 더이상 좁은 국내 시장에서 경쟁하지 말고 국내 각 ERP 소프트웨어의 장점을 모아 해외에서 공동으로 승부를 볼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결심이다. 그 결과 자사 클라우드 ERP 를 솔루션이 아닌 플랫폼으로 제공하는 전략을 수립했다.

지금까지는 영림원의 비즈니스 모델은 스스로 개발한 제품 프로세스를 고객들에게 공급하고, 컨설팅 등 고객이 좀 더 잘 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권 대표는 클라우드 시대에 이와 같은 전통 비즈니스 모델에 한계를 느꼈다. 해외 시장 개척 등 새로운 발전을 위해서는 플랫폼 비즈니스로의 전환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영림원은 23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영림원소프트랩과 동반 선장에의 초대’라는 행사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영림원은 국내 다른 ERP 업체들에게 ‘동반자’가 되자고 제안했다. 영림원의 K-SYSTEM 클라우드 서비스가 플랫폼이 되고 국내 산업특화 ERP 업체들이 이 플랫폼에 프로세스만 덧붙여 고객에 제공하자는 것이 영림원의 제안이다.

특정 산업에 특화된 소규모 ERP 소프트웨어 회사의 경우, 최신 기술에 대응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특정 산업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는 가지고 있지만 기술 기반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회사들이 클라우드와 같은 최신 트렌드에 발맞추기는 쉽지 않다. 클라우드가 대세가 되면 고객들로부터 외면 받을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림원은 클라우드 기반 K-SYSTEM을 오픈 플랫폼으로 제공한다. 다른 ERP 기업들은 영림원 ERP 위에 산업별 프로세스만 얹어 자신의 고객에 판매할 수 있다. 그저 비즈니스 프로세스만 개발했는데 클라우드 기반의 ERP를 새로 개발한 것이나 마찬가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영림원은 다른 기업들이 오픈 플랫폼 위에서 쉽게 프로세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K스튜디오라는 툴도 제공한다. 영림원은 이렇게 판매된 수익을 9대 1로 나누자고 제안한다. 전문 ERP개발사가 9, 영림원이 1이다.

영림원 기반기술연구소 안상규 소장은 “전문 ERP 회사들은 K스튜디오를 가지고 비즈니스 로직만 개발하면, 그 자체로 클라우드 ERP가 된다”면서 “영림원과 함께 하면 클라우드로 가장 쉽게, 가장 빨리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 대표는 “재사용을 극대화 해서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의 이점을 함께 누리자”면서 “좁은 국내 시장에서 경쟁한다고 다투지 말고 세계 시장, 특히 저희가 집중하는 아시아 시장에서 힘을 합치자”고 강변했다.

권 대표는 “클라우드는 사람이 직접 가지 않아도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실크로드”라면서 “저희가 가는 길에 ‘동반자’들은 숟가락만 하나 더 얹으면 된다”고 덧붙였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Comments

comments